연극 ‘그자식 사랑했네’

소극장 연극은 이런 맛이다. 기발하고 재치 있고 생기 넘치는 기운이 가득하다.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추민주 작·이재준 연출)’는 칠판 두 개로 ‘연애의 무대’를 다 보여준다. 칠판은 보습학원 강사인 미영(김지현)과 정태(민준호)가 서로를 ‘발견’하는 배경이었다가, 들어갈 때는 따로지만 나올 땐 손을 잡고 나오게 된다는 ‘전설의 대학정문’으로 열리고 닫힌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침대 장면은 ‘칠판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고, 미영이 손글씨로 정태의 이름을 부를 때는 기꺼이 투명한 창문이 되어준다.

[객석에서]연극 ‘그자식 사랑했네’

간결한 무대연출은 그저 기발한 데서만 끝나지 않는다. 썼다가 지워도 뿌옇게 남는 분필자국은 지웠다 믿어도 지워지지 않는 ‘연애의 기억’과 똑 닮았다. 익숙하고 편안해 보이던 청록색은 어느 순간 속을 알 수 없는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다 다투고 헤어지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지만, 이 작품이 반짝이는 건 남과 여의 차이를 섬세하게 포착한 데 있다. 여자가 우는 이유는 모르는 채 ‘운다’는 형상만 보는 남자, 신나게 옛날이야기를 떠드는 남자를 보며 ‘나와의 일도 저렇게 예쁘고 착하게 기억해줄까’ 걱정하는 여자.

객석의 반응이 유난했던 건 미영과 정태의 이야기가 연애 유경험자들의 기억 한 구석을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다만, 극을 미영의 관점에서 풀어나가기 때문에 여성관객은 “맞아 맞아!”를 연발하고, 남성관객은 ‘뜨끔’하기 쉽다. 실감나는 연애수업을 듣게 된 관객들은 내내 몸이 앞으로 기울어 있었다.

작가는 “상대가 망설이고 있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 준 사람, 그래도 그런 사람이 가끔씩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바보대표’ 미영은 덧셈도 뺄셈도 없는 결론으로 사랑을 덮는다. “그자식 사랑했네”라고. 22일까지 대학로 아트홀 스타시티. 8월 1~2일 밀양연극촌.

〈장은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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