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있으면 연극공연 배달됩니다” 극단 ‘간다’3인방

이 극단의 이름은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다. 이름 지을 때 후보 중에는 ‘공연배달서비스 퀵’ ‘간다 콜’ ‘서비스하자’도 있었다. ‘공연’이라는 글자만 없으면 배달업체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이 이름엔 나름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공연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공연을 서비스하겠다’는 게 저희 생각이거든요. 괜찮죠? 정말 이름 하나는 고민해서 지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뿌듯한 듯 이름 자랑을 하는 ‘간다’의 3인방, 민준호(30·상임연출 겸 배우), 이재준(29·연출 겸 배우), 김지현(26·배우)을 만났다.

“관객있으면 연극공연 배달됩니다” 극단 ‘간다’3인방

세 사람은 지난 11일부터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추민주 작·이재준 연출)’를 공연 중이다. 보습학원 강사인 정태와 미영이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내용의 이 극은 줄거리만 보면 뻔하지만 입에 착 달라붙는 대사와 생동감 넘치는 연기, 재치 있는 연출로 특별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특히 ‘칠판’ 하나로 연애의 무대를 다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빛난다. 출연 배우는 남녀 두 사람뿐. 80분 동안 장면은 열여덟번이나 바뀌고 장소도 10곳이나 등장하지만 오직 ‘칠판’ 하나로 잦은 장면의 전환을 멋지게 표현했다. 선물도 노트북도 칠판에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했고, 뿌연 차창에 연인의 이름을 쓰는 장면도 하얀 분필로 손글씨를 썼다. 올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작품상과 연출상, 여자연기상을 받았고 아르코 송년 프로그램작으로 선정됐다.

연출을 맡은 이재준은 “연극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대본 그대로 세트 다 만들고 화려하게 할 거면 뭐하러 연극을 만들겠어요. 영화나 드라마로 보면 되죠. 연극은 화려한 무대나 기술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거잖아요. 그럴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줘야죠.” ‘정태’를 연기한 민준호도 “돈을 들이면 칠판이 더 깔끔해질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뮤지컬에서 노래가 풀어주는 부분을 연극에서는 이런 아이디어, 개념이 풀어가주는 거죠. 돈 들여도 상상력이 안 보이는 무대는 소용없어요.”

‘간다’는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들이 모여 만들었다. 24살부터 32살까지 10여명이 모여있지만 단원, 비단원의 구분이나 특별한 규율은 없다. 연기 오디션도 따로 없다. 잘 어울리고 밤새 게임하면서 놀 수 있으면 그만이다. 정기모임도 기억하기 좋으라고 ‘삼땡(3월3일), 육땡(6월6일), 구땡(9월9일), 십이땡(12월12일)’으로 얼마 전에 정했다. 김지현은 “누구라도 ‘내가 간다’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간다 사람’”이라고 했다. 민준호는 “체계가 폭력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우린 아무도 (능력에) 순위를 매기지 않아요. 막내도 얼마든지 더 오래된 배우보다 잘할 수 있거든요. ‘늦게 들어왔으니까 몇 년 꿇어라, 우리 극단은 이렇다’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죠.” 그는 “재준이가 제일 힘든 게 아마 ‘간다스럽게 하라’는 말이었을 것”이라며 “다들 노는 것 같으면서도 ‘내일은 네가 뭘 만들어오나 보자’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연출, 배우 구분없이 세 사람이 마음껏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다. 이재준은 “준호 형은 정말 세심하게 연구하고 아이디어가 많아 크레파스 같고, 지현이는 감이 좋아 즉각적으로 잘 받아치는 도화지 같은 배우”라고 평했다.

‘간다’는 창단작인 ‘거울공주평강이야기’로 2004년 7월부터 전국을 돌았다. 어디든 가야 하기 때문에 무대 세트도 봉고차 이스타나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폭 150㎝, 높이 170㎝)여야 한다. ‘그 자식 사랑했네’의 칠판은 높이가 5㎝가 초과돼 연출가는 다른 단원들로부터 “초보티낸다”는 핀잔을 들었다.

이들은 다음해 초 ‘간다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미발표작을 포함해 7작품을 “쏟아낼” 생각이다. 요즘 이름 때문에 또 고민하고 있다. “‘간다간다 쑝간다’ 어때요? 우르르 간다? 뻑간다? 인터뷰하다 보니까 기획 회의가 됐네….”

〈글 장은교·사진 이상훈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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