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도 ‘빵 터트린’ 미국 할머니···뮤지컬로 돌아온 ‘미세스 다웃파이어’

선명수 기자

동명 영화 뮤지컬로 재탄생···브로드웨이 초연 후 한국 첫 상륙

말맛 살린 각색, 유쾌한 연출 돋보이는 ‘가족 뮤지컬’

8초 만에 할머니서 아빠로 변신하는 '퀵 체인지'도 관전 포인트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샘컴퍼니 제공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샘컴퍼니 제공

성우로 일하다 지나친 ‘애드리브’로 직장에서 해고된 다니엘은 이혼 후 양육권을 잃는다. 열다섯 딸에게서도 “철 좀 들라”는 소리를 듣는 철부지 아빠지만, 세 아이와 매일 함께하고 싶은 그는 특단의 ‘꼼수’를 떠올린다. 사업으로 바쁜 아내가 아이들을 돌볼 보모를 구한다는 소식에, 백발의 가사도우미가 되기로 한 것. 그는 분장실을 운영하는 친형 프랭크와 그의 동성연인 안드레를 찾아가 자신을 ‘완벽한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컨셉은 뭘로 할까? 리더십있고, 친근하고 열정적이고 자상한데, 마지막으로 카리스마까지 있는…” (안드레)

“딱 이런 언니들이네! 힐러리 클린턴, 오스카의 윤여정, 프리다 칼로, 마더 테레사, 마지막은 프레디 머큐리!” (프랭크·안드레)

1993년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동명 원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202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한 라이선스 공연이다.

‘최초의 뮤지컬’의 탄생을 유쾌하게 그린 코미디 뮤지컬 <썸씽로튼>의 창작진인 존 오페럴과 웨인·캐리 커크패트릭 형제가 극본과 음악으로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이란 점에서 이 작품이 선사할 건강한 웃음 코드 역시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에겐 친구 같은 아빠지만 아내에겐 무신경한 남편이며, 이혼 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아슬아슬한 ‘이중 생활’을 시작한 철부지 아빠의 좌충우돌 ‘변장 쇼’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말맛 살린 각색, 한국 관객 웃음 부르는 현지화 전략

다웃파이어로 변장한 다니엘은 영락 없는 백인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딘가 친숙하다. 원작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설정들이 공연 내내 터져나온다.

이번 공연은 원작의 판권을 가져오되 무대나 의상, 대사 등을 현지에 맞게 각색할 수 있는 ‘논 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됐다. 여장을 부탁하는 다니엘에게 특수분장사인 형 프랭크가 ‘오스카의 윤여정 룩’을 제안하는가 하면, 다니엘이 아이들을 위해 유튜브를 보며 요리하는 장면에선 느닷없이 ‘셰프 백’이 등장해 짙은 충청도 사투리로 조리법을 알려준다.

‘셰프 백’과 요리사 ‘램지’가 영상 밖으로 나와 정신없이 요리를 가르치던 장면은 뜬금없이 튀어나온 10초짜리 전립선 약 광고로 중단된다. 광고에 분노하는 다니엘에게 이어지는 안내 멘트는 “프리미엄을 구독하세요”. 객석에서 공감 섞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화제가 된 ‘우영우 인사법’, ‘셰프 백’과 ‘램지’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유명 영어학원 등 공연 곳곳에 숨겨진 웃음 포인트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샘컴퍼니 제공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샘컴퍼니 제공

박민선 프로듀서(스튜디오선데이 대표)는 지난달 열린 프레스콜에서 “관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우리 관객들이 즉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상징을 사용해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논 레플리카’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동연 연출도 “한국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면서도 원작의 품위를 지키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번역가와 배우, 창작진 모두가 쉽지 않은 고민을 거쳤다”고 말했다.

공연 중 18번 ‘퀵 체인지’…루프머신 활용한 즉석 '쇼' 등 볼거리 풍성

공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다니엘의 ‘퀵 체인지(quick-change)’다. 주연 배우들은 대사와 노래를 하며 아빠 다니엘과 할머니 다웃파이어를 오가는 ‘변장 쇼’를 벌이는데, 러닝타임 165분 동안 무려 18번의 퀵 체인지를 선보인다. 다웃파이어에서 다니엘로 변신하는 데는 단 8초가 걸린다. 컴퓨터그래픽(CG) 없이 관객들 앞에서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특수분장을 선보이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다.

주름진 노인의 얼굴을 표현하기 위한 마스크는 영화 <기생충> <헤어질 결심> <부산행>과 드라마 <킹덤> 시리즈 등의 특수 분장을 맡았던 스튜디오 셀에서 제작했다. 다니엘 역을 맡은 배우 정성화는 “무대 위에서 변장하는 장면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연습했고 이 장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의상팀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분장쇼’ 외의 볼거리도 풍부하다. 방송국 청소부로 취직한 다니엘이 텅 빈 스튜디오에서 루프 머신을 이용해 랩과 비트박스를 선보이며 즉석에서 쇼를 하는 장면은 관객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정체를 들킬까 불안해 하는 다니엘의 심리를 강렬한 음악과 기하학적인 영상으로 구현한 넘버 ‘유브 빈 플레잉 위드 파이어(You’ve been Playing with Fire)’ 역시 강렬한 연출이 돋보인다. 이 장면을 주도하는 법원 연락관 ‘완다’ 역의 박준면·김나윤 배우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도 관객 환호를 부르는 대목이다.

양육권 쟁탈기 넘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이야기로 확장

‘이혼 가정의 양육권 쟁탈전’이라는 뻔한 소재를 넘어 가족이란 공동체의 다양한 존재 방식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미덕이다. 부부의 재결합만이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이혼 이후 가족의 새로운 미래 역시 다룬다.

“이미 필드에서 검증받은” 다웃파이어 할머니의 모습으로 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다니엘은 부모의 이혼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한 아이의 사연에 “사랑이 있는 한, 가족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거야”라고 말해준다. 프랭크·안드레 커플의 입양 등 새 ‘가족의 탄생’을 축하하며 막을 내리는 공연은 추석 연휴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뮤지컬’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웃음과 호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다니엘과 다웃파이어를 오가며 재치있고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는 주연 배우들의 힘이다. 오랜만에 뮤지컬에 복귀한 임창정을 비롯해 정성화, 양준모가 다니엘을 연기한다. 공연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11월6일까지.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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