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과학을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 과학을 이해하는 것은 오류”

김종목 기자

‘동아시아 과학…’ 등 논문집 2권 낸 김영식 교수

김영식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사진)는 화학공학을 학부에서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화학물리학과 역사학 두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서울대 부임 뒤 화학과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문·이과를 넘나든 독특한 학문 이력을 가진 그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전통 과학사를 연구해왔다.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사이언스북스)와 <유가 전통과 과학>(예문서원)은 김 교수의 그간 연구 성과를 들여다볼 수 있는 논문집이다.

“서양 과학을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 과학을 이해하는 것은 오류”

김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내 주된 학문적 관심은 ‘동아시아 전통 속의 과학’이라는 주제에 향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정치적·사회적·지적 주도층이었던 유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지식과 태도에 관해 주로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고 말한다.

두 권의 책에 나타난 김 교수의 동아시아 과학에 관한 입장은 전통의 그것과는 다르다. <유가 전통과 과학>에서 김 교수는 지난 20~30년간 산업 발전을 이룬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유가 전통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을 찾는 경향을 비판한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시도들은 피상적으로 또한 다분히 감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일거에 모든 것에 답하려 드는 식으로 조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비교사적 관점으로 쓴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에서 김 교수는 비교 과정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양의 과학을 동아시아 문화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화의 과학이 본받고 지향해야 할 모범이자 기준으로 가정하는 오류인데, 그 같은 가정은 동아시아 과학은 물론 서양의 과학에 대한 이해마저 왜곡시켜 왔다.”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가 17~19세기 서유럽이라는 특정 시·공간에 형성된 서구 근대 과학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즉 ‘서구적 진리와 비서구적 오류’의 이분법적 대비를 강화시키는 방향을 비판하는 것이다.

“서양 과학을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 과학을 이해하는 것은 오류”

김 교수는 중국 같은 비서구권 문화에서 서구 근대 과학을 예견하는 듯한 업적을 찾는 연구의 문제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심괄과 주희의 저술에서 화석의 형성에 대한 근대 지질학적 통찰을 읽어내고, 주희의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발견하는 작업들이다. 김 교수는 “과거 문헌에서 현대 과학의 특정한 성과와 비슷해 보이는 단편을 찾으면, 곧바로 근대 과학을 선취한 선구적 업적으로 간주해 찬양했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 과학기술을 한국 자연환경과 사회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변형시켰다는 한국 과학사 연구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유보적이다. 김 교수는 창조적 변형 사례를 인정하면서도 한국 전통 과학 전반의 특성을 대변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김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각 문화권 과학의 사상적·사회적 맥락과 그에 대한 차분한 탐구다. 17~18세기 조선과 중국의 서양 예수회 신부, 관료, 사대부 지식인 같은 다양한 행위자의 선택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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