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문양’ 남은 대한제국 마지막 문관대례복 첫 발견

이기환 선임기자

실물로는 확인 안된 1906년 양식

양복점 주인의 제보로 다시 빛 봐

무궁화로 대한제국 정체성 반영

1906년 제작된 대한제국 마지막 문관대례복 앞·뒤 모습.  한국맞춤양복협회 제공

1906년 제작된 대한제국 마지막 문관대례복 앞·뒤 모습. 한국맞춤양복협회 제공

그동안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던 대한제국 마지막 서구식 문관대례복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근대복식사 전공자인 이경미 한경대 교수(의류산업학과)는 10일 “1980년대부터 한국맞춤양복협회에 전시된 복식을 조사한 결과, 대한제국이 1906년 12월 칙령 개정 이후 제작한 문관대례복(국가의 의식 때 착용하는 옷)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한제국은 국제 외교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1900년 4월17일 서양식 문관대례복에 대한 규정을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04~1905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 수정했다. 이 중 1900년과 1904~1905년 양식은 더러 존재하고 있지만 1906년 양식은 이완용과 송병준의 사진과 도식으로만 파악했을 뿐 실물은 확인되지 않았다가 이번에 찾은 것이다.

발굴 경위도 흥미롭다. 맞춤양복협회 감사를 지냈고, 양복점을 운영 중인 이정근씨(구천양복점 대표)가 이 교수의 ‘개화기 복식’ 관련 방송대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협회에 전시 중인 유물과 비슷한 사진이 나오자 혹시 하는 마음에 제보하면서 ‘실물’이 확인됐다. 이씨는 “이 대례복은 1989년 한국맞춤양복협회 회관을 건립할 때 1000만원을 들여 구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협회에서는 어떤 유물인지 모른 채 회의실 한편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발굴된 문관대례복은 칙임관(정1~종2품의 최고관리)의 것으로 판단된다.

이 교수는 “1906년에는 전면에 무궁화 금색 표장이 생략돼 디자인이 간소화됐는데, 일본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의 대례복과 전반적으로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제복의 탄생>(2012년 민속원)에서 1906년 대례복 개정이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이 박탈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식민지화가 용이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대례복 개정에 개입된 게 아니냐”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서구식 대례복에는 영국 참나무, 일본 오동처럼 나라를 대표하는 문양이 들어갔는데, 대한제국은 무궁화를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발굴된 대례복에도 등의 위아래와 양쪽 호주머니, 소매와 목선에 무궁화가 장식됐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가 되면 대례복의 형태는 같지만 문장만 무궁화에서 오동으로 바뀐다”고 밝혔다. 비록 복장은 작위를 받은 일본식 대례복과 같은 형태지만 무궁화 문장만은 1900년(광무 4년)의 규정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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