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슈퍼카 디자인의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

안광호 기자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상식을 뒤엎는 ‘각과 쐐기’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과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고성능의 희소성까지 갖춘 ‘슈퍼카’ 디자인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초의 슈퍼카로 알려진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비롯해 쿤타치, 디아블로 등 수많은 역작들을 만들어냈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이자 출생년도(1938년)가 같은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와 더불어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간디니는 1965년 이탈리아 카로체리아(Carrozzeria·디자인과 생산 능력을 갖춘 오랜 전통의 소규모 자동차 공방) 베르토네(Bertone)에서 근무하면서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쥬지아로의 후임으로 베르토네에 입사한 간디니가 이듬해 내놓은 첫 작품이다.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람보르기니 미우라. 쥬지아로의 후임으로 베르토네에 입사한 간디니가 이듬해 내놓은 첫 작품이다.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디자인 신화 베르토네 입사…15년간 미우라 등 역작 배출

오랜 전통의 자동차 디자인 신화를 만들어낸 베르토네는 프랑코 스칼리오네(Franco Scaglione)와 조르제토 쥬지아로 같은 거장들을 배출한 곳이다. 간디니는 이곳에서 1980년까지 15년 동안 몸담으며 여러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쥬지아로의 후임이자 수석 디자이너로 입사한 간디니는 이듬해 첫 작품으로 람보르기니의 수작 미우라(Miura)를 내놓는다. 미우라는 엔쵸 페라리에 수모를 당한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Ferruccio) 람보르기니의 야심작이기도 했다. 미우라의 성공은 당시 ‘페라리(Ferrari)를 넘어서겠다’는 람보르기니 창업자의 목적을 실현시켰다.

람보르기니 미우라.〈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람보르기니 미우라.〈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미우라의 원래 이름은 ‘P400’이었다. P는 ‘포스테리오레’(Posteriore)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뒷쪽’을 뜻한다. 엔진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미우라는 페루치오가 직접 명명한 것으로, 투우(싸움소) 중 최고 종자라는 뜻이다.

신생업체 람보르기니가 슈퍼카를 제작한다는 얘기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 전문가들은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게 봤다. 특히 당시만해도 보편화되지 않은 V12 미드십 엔진(midship engine·엔진이 운전석 뒤에 위치하는 형태)을 얹은 슈퍼 스포츠카에 대한 부담은 람보르기니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인 간디니에게도 크나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미우라에 대한 평가는 예상을 뒤엎었다. 우아한 곡선의 차체와 90도에 가깝게 누운 헤드램프, 리어펜더 앞의 공기 흡입구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모양새였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남성의 상징으로 대변된다.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1970~1980년대 슈퍼카 라인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람보르기니 쿤타치. 남성의 상징으로 대변된다.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1970~1980년대 슈퍼카 라인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미우라·쿤타치 등으로 람보르기니와 자신의 위상 확인

325마력의 최고시속 280㎞을 뽑아내는 미드십 엔진으로 기동성을 높인, 공공 도로 주행 가능한 스포츠카는 이내 페라리 등 경쟁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미드십 엔진의 호평으로 람보르기니를 무시했던 페라리를 포함해 주요 메이커들은 이후 미드십 엔진 방식을 잇따라 채택하며 람보르기니와 간디니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람보르기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투우 배지도 이때부터 본격 사용됐다.

간디니는 미우라에 이은 또다른 성공작을 내놓았다. 바로 남성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람보르기니 쿤타치(Countach)다. 미우라와는 정반대의 직선을 강조한 수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1970~80년대 슈퍼카 라인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쿤타치는 승하차를 돕도록 설계된 경사진 측면 유리창의 ‘시저스 도어’(scissors door)라는 상하 개폐식 출입문을 달았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람보르기니 쿤타치. 〈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베르토네를 나온 후 1990년 1월 몬테카를로에서 공개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Lamborghini Diablo)는 직선적인 디자인으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사람들 이목만 끌려고 만든 디자인”이라는 영국의 TV 프로그램 탑기어(Top Gear)의 진행자 제레미 클락슨의 혹평도 나왔다.

간디니는 슈퍼카의 거장으로도 불리지만 콘셉트카나 일반 자동차의 디자인에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72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된 ‘850 스파이더’의 후속 모델 피아트 X1/9가 대표적이다. 앞바퀴굴림(FF)방식인 피아트 128의 일부 부품을 적용했다. 특히 피아트 X1/9은 스포츠카이면서도 가격이 저렴해 젊은이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는 등 당시 세계 스포츠카 시장의 대박 상품으로 이름을 남겼다.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출시될 당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상반된 평가들이 많았다.〈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출시될 당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상반된 평가들이 많았다.〈출처 : 폭스바겐코리아〉

각과 쐐기 형태서부터 BMW 5시리즈 등 보편적인 디자인까지

1970년대 후반 국내에서도 판매된 피아트 132(외국에서는 피아트500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는 당시로서는 고급형 세단의 상징이라 할만큼 호평을 받았다. 피아트 132는 우리나라에서 조립돼 생산되기도 했다.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세계박람회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엑스포(Expo)67도 대표작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차에는 1960년대에 뛰어난 성능과 가벼운 무게로 인기를 얻었던 알파로메오의 V8 DOHC 엔진이 장착됐다. 엑스포67의 디자인은 3년 후 몬트리올(Montreal)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됐다.

피아트 X1/9. 소형 스포츠카이면서 가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모았다. (cc) Wikipedia at Karrmann.

피아트 X1/9. 소형 스포츠카이면서 가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모았다. (cc) Wikipedia at Karrmann.

같은 해 공개된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Lancia Stratos Zero)도 간디니의 대표작 중 하나다. 훗날 자신이 디자인하게 된 람보르기니의 쿤타치를 연상시키는 이 차는 심플하고도 각이 뚜렷한 디자인으로,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우주선의 형체와도 닮았다.

피아트사가 마세라티를 인수한 이후 첫번째 모델인 4세대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도 1994년 간디니의 손에 의해 탄생됐다. 2800㏄ 배기량에 트윈터보 V6 엔진을 채택해 최고출력 284마력, 최고속도는 260㎞에 달했다.

간디니의 디자인철학은 각과 쐐기가 주를 이루는 형태의 디자인으로 묘사된다. 쿤타치나 스트라토스 제로처럼 힘있는 직선미가 일품인 차들이 있는가 하면 유려한 곡선으로 전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미우라나 정통적인 3박스구조의 세단 BMW 5시리즈(1세대)와 같은 보편적인 디자인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 기이한 형태의 콘셉트카로 간디니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cc) Wikipedia at Alfone45.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 기이한 형태의 콘셉트카로 간디니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cc) Wikipedia at Alfone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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