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전기차 시대, 미래로 가속페달

김준 선임기자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세계 각국이 탄소 제로 정책을 강화하면서 배출가스를 뿜어내지 않는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의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GM 등 완성차 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제작한 모델을 시장에 쏟아낼 채비를 하고 있고, 정보기술(IT) 업계 강자인 애플도 전기차를 선보인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기차는 130년 이상 군림해온 내연기관 차량을 몰아내고 ‘친환경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채택한 전기차 예시도.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채택한 전기차 예시도.현대차그룹 제공

1세대

그때는 몰라본 도전…GM이 만든 EV1

전기차는 동력원을 전기로 하는 차를 말한다. 휘발유나 경유가 연료인 엔진 대신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를 꺼내 전기모터로 구동축과 바퀴를 돌린다는 점이 내연기관 차량과 다르다.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는 1996년 나온 GM ‘EV1’이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 기술이 대거 투입된 EV1은 137마력을 내는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시속 130㎞까지 달릴 수 있었다. 1회 충전 거리도 160㎞로 당시 기술로는 짧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EV1을 질투했다. ‘전기도 석유로 만드니 친환경이 아니다’라는 논리와 정유업계의 반발, 과도한 개발 비용에 따른 부담을 견디지 못한 GM은 결국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EV1 재고를 전량 폐기처분했다.

GM EV1  한국지엠 제공

GM EV1 한국지엠 제공

한동안 시장에서 사라졌던 전기차는 ‘탄소중립’이 지구촌의 공통 화두가 되면서 부활했다. 가장 큰 공헌을 한 업체는 기존 완성차 회사가 아닌 테슬라였다. 2012년 모델 S를 선보인 테슬라는 모델 X와 모델 3를 잇따라 내놓으며 전기차 시대를 열었다. 2013년에는 BMW가 i3를, 2018년에는 GM이 주행거리를 383㎞까지 늘린 볼트 EV를 출시하며 국내에도 전기차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도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현대차 코나 EV 같은 모델이 그것이다.

이들 ‘1세대 전기차’는 충전 비용이 저렴하고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는 전기차 특유의 장점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연기관 차량의 완전한 맞수는 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에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전기차 주행거리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배터리를 구성하는 셀을 많이 탑재할수록 늘어난다. 하지만 셀을 무한대로 장착하기란 불가능하다. 차량이 무거워지고 배터리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다.

이 때문에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 전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가 필요한데, 최근 기술 발전으로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크게 늘었다.

2세대

전용 ‘플랫폼’ 개발해 고성능·모델 다양화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현대차그룹 제공

올해 이후 쏟아질 ‘2세대 전기차’들은 플랫폼을 전기차 전용으로 제작해 1세대 전기차보다 고성능을 발휘한다. 플랫폼은 차량의 골격에 해당하는 핵심 구조물인데, 정교하게 만들어질수록 주행 성능과 안전성, 정숙성, 실내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특히 실내 공간 구성에서 많은 장점이 생긴다. 엔진과 변속기가 빠지고 모터와 배터리가 들어가지만 연료탱크, 드라이브 샤프트, 배기장치 등이 차지하던 공간이 줄어들어 실내 공간을 더 넓힐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 실내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전용 플랫폼은 전기차에 최적화된 설계로 만들어져 이상적인 무게 배분, 저중심 설계가 가능해져 프리미엄급 브랜드의 내연기관 차량과 비슷한 수준의 주행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독일 자동차그룹 폭스바겐은 이미 전용 플랫폼 MEB를 적용한 전기차 ID3를 출시했다. 폭스바겐은 올해 국내 시장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ID4도 내놓는다. GM도 보다 강력한 배터리와 구동체계로 이뤄진 얼티움 플랫폼(BEV3)을 개발, 순수 전기차 라인업 구축을 준비 중이다. 이 시스템은 대형 파우치 형태의 셀을 배터리 팩 내부에 가로 혹은 세로로 배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차량 디자인에 따라 배터리 공간과 레이아웃을 최적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배터리 종류는 50kWh에서 200kWh까지 다양하며, 주행거리도 644㎞(북미 기준)까지 늘어난다. 3개의 전기모터와 연계돼 완충 시 3초 이내에 시속 96㎞에 도달할 수 있다. 전륜구동과 후륜구동, 사륜구동 등 다양한 구동 시스템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얼티움 플랫폼이 최초 적용되는 차는 픽업트럭 허머 EV와 SUV인 캐딜락 리릭이다. 허머 EV는 올해 북미 시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며, 리릭은 내년에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첫 전기차 EV1은 시대를 너무 앞서 개발돼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서 “얼티움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승용차는 물론 상용 트럭, 고성능 퍼포먼스 전기차까지 다양한 모델을 양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도 최근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공개한 바 있다. 이 플랫폼으로 현대차는 올해 첫 전기차 전용모델 아이오닉 5와 제네시스 첫 전기차를 만든다. 기아차가 만드는 전기차 CV(프로젝트명)도 E-GMP를 공유한다. 이 플랫폼 역시 전기차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기모터와 감속기, 인버터, 배터리로 구성된 PE(Power Electric)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PE 시스템은 기존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을 대체하는 장치다.

현대차는 모터와 감속기, 인버터를 일체화해 설치 공간을 줄이고 차량 중량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동일한 배터리로 주행거리를 높이는 기술도 추가됐다. 보다 높은 효율의 전기모터를 사용하고, 모터에서 발생한 열도 기존 수냉 방식에서 냉각 윤활유를 직접 모터 내부에 분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또 실리콘(Si) 전력반도체보다 성능이 뛰어난 실리콘 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를 사용해 효율은 2~3%, 주행거리는 5% 안팎으로 높였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현대·기아차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E-GMP는 충전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800V 충전 시스템을 갖춰 초고속 급속충전기를 이용하면 18분 이내에 배터리의 80%를 채울 수 있다. 현재 급속충전 시스템 전압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400V를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800V 충전 시스템이 보급되고 있다. 금강휴게소에 들러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면 부산까지 가고도 남는 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E-GMP 시스템은 별도 부품 없이도 400V와 800V 모두 충전이 가능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E-GMP는 1회 충전으로 500㎞(국내 기준) 이상 주행할 수 있다”면서 “모터 하향 배치, 낮은 배터리 위치, 적절한 앞뒤 중량 배분, 저중심 설계로 이전 전기차보다 선회 성능이 높아지고 더욱 안정적인 고속주행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3세대

자율주행·주거공간으로 진화하는 미래차

현대차가 LG전자와의 협업으로 제작해 지난해 9월 공개한 개인 맞춤형 미래차의 실내 공간 ‘아이오닉 콘셉트 캐빈’.    현대차 제공

현대차가 LG전자와의 협업으로 제작해 지난해 9월 공개한 개인 맞춤형 미래차의 실내 공간 ‘아이오닉 콘셉트 캐빈’. 현대차 제공

업계는 미래의 전기차가 자율주행 기술과 결합해 이동 수단을 넘어선 주거 공간으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율주행은 제도와 기술 미비로 적용이 더뎌질 가능성이 있지만, 차량 실내 공간은 수년 내에 적잖은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현대차가 공개한 자사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콘셉트 캐빈’을 보면 미래 전기차의 실내를 유추해볼 수 있다.

아이오닉 실내에는 커피머신, 냉장고, 공기청정기, 대형 스크린 등 가전제품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미래의 전기차가 움직이는 아파트나 사무실, 휴식 공간 등 개인 맞춤형 공간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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