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이병이야' 포장지 속 플라스틱병···소비자 속이는 ‘그린워싱’ 주의보

김서영 기자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9월 28일 글로벌 스타벅스 50주년을 기념해 특별 디자인이 적용된 다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하는 ‘리유저블컵 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 연합뉴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9월 28일 글로벌 스타벅스 50주년을 기념해 특별 디자인이 적용된 다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하는 ‘리유저블컵 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 연합뉴스

“성공적인 마케팅이긴 하나 환경 운운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김모씨(30)는 스타벅스가 지난 9월 28일 진행한 리유저블컵(다회용컵) 행사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그날 스타벅스는 50주년을 맞아 환경보호 명목으로 하루 동안 일회용컵 대신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다회용컵에 음료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당일 스타벅스 매장엔 이 컵을 구하기 위한 줄이 늘어섰고 온라인에는 ‘득템’에 성공했다는 후기가 넘쳐났다.

예기치 못한 반발은 ‘그린워싱’이란 키워드로 나타났다. 다회용컵의 소재도 결국 플라스틱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 담당 활동가는 “다회용컵은 대부분 폴리프로필렌(PP) 소재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또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하는 모순된 행태”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코로나19로 텀블러도 안 받아주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수요를 만들어낸 것 같다. 스타벅스가 그동안 앱 주문으로 영수증 출력을 줄인 것, 종이빨대로 전환한 것은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다회용컵은 MD 판매(기획판매)의 연장선에 있는 그린워싱”이라고 말했다.

■그린워싱이 뭐길래

그린워싱(Green Washing)은 친환경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친환경이 아닌 활동을 의미한다. 친환경으로 과장하거나 속였다는 점에서 ‘위장환경주의’, ‘위장 친환경’, ‘녹색 거짓말’ 등으로도 번역된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과 맞물려 과거보다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다.

지난 4월엔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아모레퍼시픽)가 그린워싱이란 비판을 받았다. 문제가 된 상품은 ‘페이퍼 보틀 리미티드 에디션(종이병 한정판)’이었다. 종이로 된 포장지에 ‘안녕, 나는 종이병이야(Hello, I am Paper Bottle)’라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로 안쪽엔 플라스틱병이 있었던 것이다. 포장지를 종이로 만들어 플라스틱병의 분리배출을 용이하게 한다는 의도였지만, 홍보했던 것처럼 ‘종이병’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린워싱의 핵심은 겉과 속,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그린워싱을 다룬 책 <위장환경주의>는 “(기업들은) 스스로 불러일으킨 파괴임에도, 자신들이야말로 그러한 파괴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며 환경운동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업들이 친환경, 공정무역, 지속가능성 등의 키워드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환경보호에 기여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은밀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대표적으로 공정무역 커피와 지속가능성을 내걸었으나 실제로는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알루미늄 캡슐과 캔을 수십억개 제조하는 네스프레소와 코카콜라, ‘바다에서 건져낸 쓰레기로 섬유를 만든다’며 의류 소비 주기를 줄이는 H&M과 자라 등 패스트패션 업계가 꼽힌다. 대규모 해양오염을 초래한 정유회사와 토양오염의 주범인 축산업계도 그린워싱을 논할 때 단골로 언급된다. 독일 저널리스트인 저자 카트린 하르트만은 “대기업은 고객에게 양심이라는 부가가치도 판매한다. 고객들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때 그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마치 환경을 보호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인데, 이런 태도를 일컬어 ‘그린워싱’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 지난 4월 6일 올라온 이니스프리 그린워싱 비판. 작성자는 “매장에서 친환경패키지 신제품이라고 판촉을 해서 다른 걸 사려다가 이걸 선택한 거였는데요. 이런 사기성 짙은 제품인 줄 알았다면 안 샀을 것”이라고 했다.  / 페이스북 갈무리

페이스북 페이지 ‘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 지난 4월 6일 올라온 이니스프리 그린워싱 비판. 작성자는 “매장에서 친환경패키지 신제품이라고 판촉을 해서 다른 걸 사려다가 이걸 선택한 거였는데요. 이런 사기성 짙은 제품인 줄 알았다면 안 샀을 것”이라고 했다. / 페이스북 갈무리

그린워싱이 주로 기업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쓰이긴 하지만 정부도 종종 그린워싱의 주체로 지목된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선 지난 9월 30일 국민참여분과 종교위원들(4대 종단)이 일괄 사퇴했다. 이들은 “2050 탄소중립시나리오와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가 탄소중립이라는 근본 목적에 충분하지 않은 수준으로 만들어진다. (종교위원 등 민간위원 참여가) 그린워싱·절차적 정당성 확보 도구로 이용된다”고 주장했다. 상충하는 분야별 이해관계 때문에 논의가 진척을 거두지 못하고, 정부 측의 의지가 의심되는 상황을 두고 탄소중립을 앞세운 ‘그린워싱’이라 표현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페이퍼 플랜’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안팎의 우려가 반영돼 있다. 이들은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듯했다. 2009년 이후 10여년 동안 정부는 직무유기를 해온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기후변화에 대비한다고 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것 등이 정부의 그린워싱 사례다.

■그린워싱, 어떻게 알아보나

그린워싱은 단순히 ‘소비자를 속였다’, ‘혼란스럽게 했다’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린워싱 문제에서 흔히 인용되는 캐나다 테라초이스(글로벌 친환경 기업)의 분류를 보면, 그린워싱은 상충효과 감추기, 증거 불충분, 유해상품 정당화 등 7가지 종류로 나뉜다. 이번 스타벅스 다회용컵 마케팅의 경우 ‘친환경적 일부 속성에만 초점을 맞춰 전체적인 환경 여파 숨기기’인 상충효과 감추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니스프리 종이병도 마찬가지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증거가 불충분한 내용을 제시했을 경우엔 증거 불충분에 해당하며, 친환경적인 요소를 환경에 해로운 상품에 적용해 본질을 속인 경우(유기농 담배 등)는 유해상품 정당화가 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기업의 활동 하나하나를 그린워싱으로 판단해 제재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제조과정이 아닌 마케팅 분야에서의 그린워싱은 기업의 ‘의도’가 정말 친환경에 반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는 점에서 처벌이나 규제를 적용하기가 한층 까다롭다. 녹색제품 인증이나 ‘환경성’이란 용어 사용처럼 제품 표시나 광고에 적용되는 것은 법적 기준도 있고, 도용하거나 속인 자체로 문제가 되지만 마케팅은 그렇지 않다. 이번 스타벅스 다회용컵의 경우만 보더라도 스타벅스는 “2025년까지 전 매장에서 일회용컵을 없애겠다는 목표로 가는 과도기적 행사”라고 해명한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고객들이 다회용컵을 들고 다녀서 일회용컵, 플라스틱컵을 아예 안 쓰는 것이다. 다회용컵은 텀블러와 똑같다. 다회용컵 하나가 일회용컵을 50개, 100개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환경 의도에서 비롯된 행사임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종이병이야' 포장지 속 플라스틱병···소비자 속이는 ‘그린워싱’ 주의보

■그린워싱 견제는 소비자의 힘

결국 그린워싱에 최종적인 철퇴를 내리는 역할은 소비자에게 넘어온다. 그간의 조사를 보면 소비자들은 친환경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9월 펴낸 ‘소비자가 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친환경 소비행동’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 31.6%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기업의 친환경 활동 여부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또한 소비자 셋 중 1명(34.4%)은 5~10% 추가 비용을 지급하더라도 일반 제품보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었다. 0~5%를 더 내겠다는 비율은 19.9%였으며, 15~20% 추가 부담도 16.8%였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과거엔 ‘친환경’을 내세운 일차원적 마케팅이 먹혔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점점 비판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린워싱을 했을 때 시장에서 역풍이 불어 매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혼이 나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단순한 제품보다는 마케팅 활동 영역에서 그린워싱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시장에서 레드카드를 주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소비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기업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린피스는 최근 CJ제일제당, 롯데칠성음료, 동원F&B, 오뚜기, 농심을 대상으로 조사한 ‘식품제조사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들은 “자사가 생산·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종합적인 정보를 소비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친환경적인 대안이 새로운 소비문화로 퍼지려면 기업이 협조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린피스는 “소비자는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을 선택권을 박탈당했다”며 매년 1회 이상 일회용 플라스틱 자료 공개, 사용한 일회용 플라스틱을 최종 처리한 방식 알리기, 플라스틱의 총량과 제품별, 포장별 자료 고지 등을 요구했다.

그린워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위장환경주의>가 지적했듯, 그린워싱은 ‘윤리적 소비를 하고 있다’, ‘착한 물건을 샀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작동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시민들은 자신의 경제적 역할을 ‘소비자’에서 찾은 것 같다. 즉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윤리적 소비’로 자신의 역할을 대체해 여전히 명랑하게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소비자 주권을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린워싱에 대한 홍보 및 교육 방안을 마련하는 등 소비자의 인식을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에서 그린워싱에 대한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들어 국내에서도 향후 소비자 소송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지현영 변호사는 “최종 선택자로서 ‘소비자 주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도록 소비자 주권 운동을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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