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에서 찾은 ‘수소경제’ 힌트

주영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7일 인천 서구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투자 예정지에 전시된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7일 인천 서구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투자 예정지에 전시된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수소연료전지를 중심으로 한 수소 활용 측면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됐다. 생태계도 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됐다. 유럽과 미국 등은 수소 생산에 주목하고 있다.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P2G 프로젝트는 대부분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캐나다, 호주, 일본, 미국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처럼 화석연료가 풍부한 나라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적용한 블루수소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만든 뒤 이때 나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빈 가스전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가격 경쟁력과 실효성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크지만, 2050년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제로)을 위해 있는 걸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발전 분야에서는 연료전지 발전과 함께 기존 LNG 가스터빈을 개조한 수소 혼소 및 전소, 암모니아·석탄, 암모니아·LNG 혼소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 ‘1 1 1’ 프로젝트

미국은 대규모 투자로 미국 전역에 4개 이상의 수소산업 허브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80억달러(약 9조5000억원)의 연방정부 예산을 지원해 수전해 장치 기술 향상과 상용화, 청정수소 생산과 운송·저장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목표는 그린수소와 블루수소를 합한 청정수소 가격을 2020년 1㎏당 5달러에서 2026년 2달러로 낮추는 것이다. 예산 규모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75억달러)보다 크다. 블루수소와 연계된 탄소포집·활용 부문 예산(87억달러)을 합치면 그 의미가 더 커진다.

수니타 사티야팔 미국 에너지부 수소·연료전지기술국장은 지난 9월 14일 열린 ‘수소경제와 한국의 수소기술 심포지엄’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에너지 장관에게 기후위기를 해결할 결정적 기술들의 개발에 속도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모든 분야가 혁신을 요구하는 만큼 단일한 기술이 해법이 될 순 없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수소를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6월 가진 ‘수소 프로그램 연례 평가회의’에서 10년 내로 청정수소 가격을 1㎏당 1달러로 만들겠다는 ‘1 1 1’ 목표도 세웠다고 소개했다.

미국 정부의 수소 예산안은 수소 생산을 위해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천연가스와 석탄발전, 원전을 이용하는 것까지 허용했다. 다만 천연가스, 석탄발전은 탄소포집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수소 활용도 자동차 등 교통부문과 전력, 민간·상업용 시설 등으로 다양화했다. 윤창원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유럽의 전략은 확실히 그린수소 쪽에 무게가 크게 실렸지만 미국은 자신들이 가진 셰일가스 등의 천연자원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수전해 시설 구축하는 유럽

유럽연합과 독일은 그린수소 생산을 늘리고, 산업 전반에서 수소 사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수소생태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독일은 지난해 6월 발표한 국가수소전략에서 수소생산 1위국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수전해 기술 활성화에 나섰다. 내수를 우선 확대한 후 세계 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국내 생산량으로는 수요를 다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자국의 그린수소 생산기술을 수출하고, 이를 활용해 해외에서 생산한 그린수소를 도입하는 전략을 짰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7월 발표한 수소전략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수전해 생산시설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최소 6GW에서 시작해 2030년 최소 40GW를 설치하는 안이다. 수소생산에는 2050년까지 238조~6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수소 저장과 운송, 충전소 등에는 86조원을 투자한다. 수소 사용을 철강·화학 등 산업용으로 확대하고 수송용 수요도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5년부터 주요 도로 150㎞마다 수소 충전소 설치를 의무화했다.

수소전략 예산이 집행되면서 독일과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에서는 그린수소 프로젝트가 다수 시작됐다. 스페인의 경우 안달루시아 지역 4개 풍력단지를 인근 태양광과 연계해 수전해 생산시설로 개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전력 생산 패턴이 달라 상호보완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린수소 생산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영국, 노르웨이와 공동으로 북해가스전을 이산화탄소 저장소로 활용하는 천연가스 이용 블루수소 생산 기술의 실증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해외 수소 생산기지 확보 나선 일본

일본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수소에 주목하고 오래전부터 수소 생산기술을 쌓아왔다. 일본의 전략은 독일과 비슷하다. 앞선 수소 생산기술을 수출해 해외와 공동으로 청정수소를 개발하고 수입하는 전략이다. ‘신에너지·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NEDO)’가 연구개발·국제협력의 중심에 있다. 수소액화 플랜트, 암모니아 공정, 액상유기수소저장체(LOHC) 등 수소 저장 기술과 해상운송에서도 선두 그룹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액화수소 운반선을 만들어 호주에서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브루나이에서는 LOHC에 기반을 둔 수소저장·추출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다.

일본은 수소 생산·저장·운송 관련 상용화나 실증사업 규모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다. 한끝 차이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 연구개발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김창희 한국에너지공과대학 교수는 “몇년 전만 해도 NEDO에서 우리를 초청해 함께 수소 관련 기술을 발표했는데 이젠 우리를 초청하지도 않고, 우리가 초청해도 오지 않는다”면서 “반도체 산업처럼 한국이 빠르게 추격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조업 국가로 에너지 소비가 많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외 수소 도입을 추진하는 일본의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석유 메이저가 시추 기술로 패권을 장악했던 것처럼 해외에 수소 생산공장을 지을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장종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수소연료전지연구센터장은 다만 일본을 벤치마킹해도 해외에서 수소를 들여오는 것과 국내에서 생산하는 비율을 정하는 문제는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고민할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또한 장 센터장은 “해외에서 수소를 들여와도 그 수소가 화석연료 기반이냐, 재생에너지 기반이냐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면서 “도덕적 차원을 떠나 향후 환경 이슈와 맞물려 원산지 증명이 필요한 상황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린수소 기술을 개발하면서, 그 기술을 이용해 해외의 그린수소를 도입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장 센터장은 “한국은 각종 화학산업과 조선 등 중공업을 비롯해 기반기술이 전부 수소와 궁합이 잘 맞아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면서 “정부에서 장기 전략을 갖고 여러 기업이 상호보완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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