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인플레 시대

백반도, 소주도 안 오른게 없다…식당주인 “손님 더 안 올까 두렵지만 방법 없어”

김은성 기자

 매출 줄었는데 식자재 값·인건비 올라

“대출로 버티지만 월 250만원 가량 적자”

 배달 수수료 부담에 음식값 인상 고민도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이용”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은 그나마 있는 고객도 줄어들 것을 우려해 가격 인상을 망설인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부딪쳤다’고 입을 모은다.사진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명동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은 그나마 있는 고객도 줄어들 것을 우려해 가격 인상을 망설인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부딪쳤다’고 입을 모은다.사진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명동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58)는 올해 2월 초 백반 가격을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인상했다. 손님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식당 매출만 빼고 다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24일 기자와 통화에서 “코로나19 이후 식자재 가격이 평균 15% 이상 오르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를 반영했다”며 “쓸 수 있는 대출을 다 받아서 버티고 있지만 월 평균 250만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해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를 전후로 모든 것이 다 올랐다. 4500원이던 계란 한판은 어느새 6500원이 됐고 삼겹살(한근)은 1만2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올랐다, 3만5000원이면 사던 오징어(한상자)는 이제 4만5000원을 줘야 한다. 인건비라도 줄여보려고 박씨는 배달과 서빙 등 주방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직접 한다. 그나마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에는 몸이 아픈 박씨의 어머니도 식당에 나와 일을 돕는다.

박씨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힘들어 서민들이 물가 인상에 예민하다 보니 가격을 올린 지 한 달도 안됐는데 매출이 20% 가량 빠졌다”며 “대출 만기는 돌아오는데 기름값, 소주값마저 계속 올라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탁상행정으로 (외식) 가격 고시를 하기 보다는 인건비를 낮추는 등 물가가 오르는 이유부터 제대로 파악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모씨(45)는 요즘 소주값을 45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김씨는 “적자 행진에 울고 싶은데 (하이트진로의) 소주 출고가 인상이 뺨을 때린 겪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소주값은 굉장히 민감한 품목으로 통상 출고가가 올라도 바로 인상하지 못한다. 안 그래도 고객이 없는데 (가격 인상에) 더 안 올까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라면서도 “가계들이 모두 한계에 달해 누가 먼저 올릴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씨의 호프집도 ‘매출만 빼고’ 다 올랐다. 요리에 쓰는 식용유(18ℓ)는 1년 전 3만3000원에서 4만8000원으로 약 45% 올랐다. 술안주로 많이 나가는 소시지(한팩)는 같은 기간 4400원에서 5100원으로, 나초치즈는 1만8000원에서 2만2000원으로 올랐다. 그는 “앞으로 (서울)강남 상권에서는 5000원대부터 소주값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영업 제한이라도 풀어주면 숨통이 트여 그나마 물가를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2월3일 점심시간 서울의 한 식당가에서 시민이 칼국수 가격이 1만원으로 표기된 식당 간판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2월3일 점심시간 서울의 한 식당가에서 시민이 칼국수 가격이 1만원으로 표기된 식당 간판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에서 대게집을 운영하는 이모씨(46)는 배달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가 가장 부담스럽다. 이씨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반토막이 나자 지난해부터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결제액의 10% 이상을 플랫폼에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되지만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배달앱들이 단건 배달 할인 행사를 끝내고 배달비를 올리면서 매출이 늘수록 수수료도 증가하는 구조가 됐다”며 “플랫폼으로 인한 물가 인상(배달비)을 혼자 부담할 수가 없어 음식 값에 부과할지 말지 고민 중에 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인건비도 부담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서빙이나 주방보조 등 힘든 일을 기피해 중국교포나 외국인노동자를 구하고 있는데 하루 인건비(8시간)가 10만원을 넘는다”며 “코로나19로 이마저도 구하기 힘들 때는 웃돈을 얹어줘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월2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개한 62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12개 품목)의 2월 3주차 판매가격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중 16개 업체가 전월보다 가격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25%가 한달 새 대표 메뉴의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조사 대상 품목은 죽, 김밥, 햄버거, 치킨, 떡볶이, 피자, 커피, 자장면, 삼겹살, 돼지갈비, 갈비탕, 설렁탕 등이다. 품목별로는 죽(4.0%), 햄버거(1.1∼10.0%), 치킨(5.9∼6.7%), 떡볶이(5.4∼28.7%), 피자(3.2%∼20.2%) 등이 전월 대비 인상됐다.

프랜차이즈 업체 뿐만 아니라 동네식당들도 가격 인상을 결정하거나 고민하고 있다. 주요 식자재에 소주 가격까지 줄줄이 오르니 식당들이 버틸 수가 없다. 하이트진로가 지난 23일부터 ‘참이슬’ 등 소주 제품의 출고가를 7.9% 인상하자 롯데칠성음료도 3월5일부터 ‘처음처럼’ 병 제품 가격을 7.7% 올린다고 밝혔다. 국내 두부 시장 1·2위를 달리는 풀무원과 CJ제일제당은 올해 2월 두부 제품 가격을 7∼8% 인상했다. 포장김치 가격도 올랐다. CJ제일제당이 ‘비비고’ 김치의 가격을 5% 올린 데 이어 대상은 3월에 ‘종가집’ 김치가격을 7% 가량 인상한다. 가정용 식용유·카놀라유·올리브유의 가격도 3월에 10~15% 올라갈 예정이다.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은 그나마 있는 고객도 줄어들 것을 우려해 가격 인상을 망설인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부딪쳤다’고 입을 모은다.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손님들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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