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요구 거세지는데...수출 대기업, 재생에너지 조달 어려움

이재덕 기자
제주 탐라해상풍력. 권도현 기자

제주 탐라해상풍력. 권도현 기자

“해외에 있는 주요 고객사들이 ‘RE100’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입찰 등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거든요. 내수만 바라보는 기업이라면 모를까 저희 같은 글로벌 수출 기업들은 재생에너지쪽을 버릴 수가 없어요. 이번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입니다.”(재계 관계자)

정부가 원자력 발전 비중을 확대하는 내용의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한 5일 LG이노텍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며 글로벌 RE100 이니셔티브 가입 신청이 최종 승인됐다고 밝혔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내용의 국제 캠페인으로, TSMC·애플·인텔·SK하이닉스·현대기아차·LG에너지솔루션 등 370여개 기업이 가입했다. LG이노텍은 RE100 목표보다 20년 빠른 2030년까지 에너지 전환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발전을 늘리겠다고 한 날 기업이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발표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면서 “‘재생에너지 전환’과 ‘원전 확대’ 중 무엇이 대세인지는 이노텍의 사례만 봐도 알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경향신문이 만난 대기업 관계자들은 원전 중심의 전력 공급 정책으로 향후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대기업의 A씨는 “이전 정부에서 풍력·태양광 드라이브를 걸었어도 쉽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가 원전 발전 비중을 확대해나가면 기업들의 에너지 전환도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총 21.5TWh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현대제철 등 국내 전자·반도체·철강 분야 11개 기업이 사용한 전력 98TWh의 21.9%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의 임원 B씨는 “많은 기업들이 문재인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등을 보면서 특정 시점을 정해놓고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늘려나가는 계획을 세웠다”며 “새 정부에서 기조가 바뀌면서 RE100 가입 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재생에너지 관련 비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DI 공공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한국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주요 수출 산업 중 반도체는 31%, 디스플레이는 40%, 자동차는 15% 감소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부품을 조달하거나 제품을 수입할 때, 미국·중국·독일 등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화력발전 단가와 같아지는 것) 수준을 달성한 지역의 기업과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 C씨는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고객사들이 한국 공장이 아닌,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달라는 식으로 갈 수도 있다”며 “그렇다고 국내 사업장을 모두 해외로 이전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의 한 임원은 “우리나라 같은 좁은 땅덩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분명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에 원전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나가는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에 실패할 경우, 글로벌 연기금 등의 투자를 받는 일도 어려워진다. 지난 2월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인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은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에게 RE100 가입 등 탄소배출 감축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C씨는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사들이 한국 기업들의 사정을 이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마냥 기다려주지도 않을 것”이라며 “다들 RE100에 가입하는데 우리만 안할 수도 없고, 가입을 하자니 재생에너지 조달이 불가능할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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