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 스타트업 생존전략…신기루 좇기보단 ‘낙타’가 돼야

이윤정 기자

‘기업가치 9조’ 아르고 AI 폐업 등

해외서 주목받던 유망기업들 휘청

국내 투자자도 ‘옥석 가리기’ 나서

네이버·카카오만 ‘공격적 투자’

자본 없이도 버틸 ‘체력’ 중요해져

전문가 “질적 성장에 초점 맞춰야”

세계 경제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스타트업계가 가장 먼저 얼어붙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스타트업을 향한 자금줄이 급격히 말라가고 있어서다. 잘나가던 국내 스타트업들도 휘청거린다.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에 나섰고, 기업들은 보릿고개를 넘길 생존전략 모색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스타트업들이 외부 투자금에만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버텨낼 체력을 길러야 할 때다.

■불안 커지는 스타트업계

27일 스타트업 정보 플랫폼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액은 220억달러(28조7000억원)로 작년 같은달(700억달러)에 비해 7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주목받는 스타트업들마저 폐업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2016년 창업해 기업가치가 9조원에 이르던 자율주행 스타트업 ‘아르고AI’는 지난 10월 말 문을 닫았다. 포드와 폭스바겐으로부터 그간 총 36억달러(약 4조9856억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6년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국내 상황 또한 좋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집행된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5조3752억원으로 집계됐다. 3분기 신규 투자금은 1조252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0.1% 감소했다.

실제로 위기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주목받았던 스타트업 왓챠는 올 초 기업공개(IPO)를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5000억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이용자 감소에 투자 유치마저 실패하면서 매각설에 휩싸였다. 배달대행 업체 ‘부릉’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회원 75만명을 확보한 수산물 당일배송 스타트업 ‘오늘회’는 지난 9월 전 직원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서비스를 축소했다. 유튜버 수백명이 소속된 국내 최대 멀티채널네트워크(MCN)인 샌드박스 네트워크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초기 자금 마련과 시장 진입 단계인 시리즈 A투자보다 3년차 이상의 중·후기 스타트업들의 자금 흐름이 더 좋지 않은 실정이다. 중·후기 스타트업(3~7년차)은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2조2020억원을 투자받았다. 지난해 같은 시점(2조4566억원)보다 투자 규모가 10.4% 줄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중·후기 스타트업에서 매출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추가 투자를 꺼린다”며 “중견 스타트업들은 이미 직원 규모는 100~200명 단위로 고정비용이 높지만 투자금으로 적자 상황을 버티고 있던 만큼 투자가 끊기면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옥석 가리기 나선 투자자들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만 해도 벤처캐피털들이 스타트업들의 재무적 상태와 관계없이 성장 가능성만을 보고 투자했는데, 이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내 양대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스타트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줄이지 않고 있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성장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기조다.

네이버는 올해 자사 스타트업 발굴육성 조직인 ‘D2SF’를 통해 총 26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신규 투자 17건, 후속 투자 9건이다. 투자 대상으로는 지난해(31건)보다 줄었다. 하지만 총투자 금액은 167억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177억원)를 유지했다. 네이버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생존율이 97%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네이버가 ‘콕 찍은’ 스타트업들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다.

카카오의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카카오벤처스는 올해 총 43개 스타트업에 500억원을 투자했다. 투자 건수는 전년(48건) 대비 줄었지만, 신규 투자는 28건에서 31건으로 늘었다. 이미 성과를 거둔 투자도 나왔다. 카카오벤처스가 조성해 지난해 처음으로 청산한 ‘케이큐브1호 벤처투자조합펀드’의 목록에 두나무가 포함되면서 100배 이상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두나무, 당근마켓에 이어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한국신용데이터(캐시노트), 시프트업(게임)이 올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으로 성장했다. 카카오벤처스 측은 “우리는 길게는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투자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지금과 같은 거시경제의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위기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처럼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니콘 → 낙타’…전략 바꿀 때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스타트업들이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창업 10년 만에 기업가치 10억달러(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 되는 ‘유니콘’ 기업을 꿈꾼다. 하지만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처럼 스타트업의 여정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이 벤처캐피털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투입받아 매출을 어느 정도 늘릴 때까지 적자를 감수하며 버텨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 경제매체 포브스는 이제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이 되려는 목표를 내려놓고 ‘낙타’ 전략을 선택할 때라고 조언했다. 물(자본) 없이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낙타처럼 생존전략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장승룡 카카오벤처스 이사는 “성장에만 몰두했던 과거와 달리 마케팅비 지출을 통한 양적 성장보다는 사용성 개선을 통한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며 “높은 기업 가치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투자 자체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타트업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경영전략본부장은 “폐업한 창업자를 실패자로 낙인찍기보다는, 실패를 교훈 삼아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며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트업들이 활로를 찾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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