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새로운 양자물질 발견…“고성능 센서·컴퓨터 활용”

이정호 기자

극저온 실리콘 금속의 ‘이상 물리현상’ 주목해 성과

임현식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과 교수

임현식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과 교수

국내 연구진이 금속 내부에서 떠도는 전자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새로운 양자 물질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당초엔 ‘측정기기 오류’라고 여겼던 실험 결과를 끈질기게 분석해 찾아낸 성과다. 이번 연구는 향후 온도나 압력의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는 센서, 고도의 계산 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만드는 데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임현식 동국대 교수가 이끄는 공동 연구팀이 영하 272도에 놓인 실리콘 금속에서 나타나는 ‘스핀구름’의 응축 현상을 이용해 전에 없던 새로운 양자 물질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7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실렸다.

금속에 형성된 스핀 구름의 밀도가 적은 경우(왼쪽 그림)와 달리 밀도가 높은 경우(오른쪽 그림)에는 응축 현상이 일어나며 새로운 양자물질이 형성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금속에 형성된 스핀 구름의 밀도가 적은 경우(왼쪽 그림)와 달리 밀도가 높은 경우(오른쪽 그림)에는 응축 현상이 일어나며 새로운 양자물질이 형성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스핀구름이란 금속이나 반도체 안에서 형성된 자유 전자들의 집합체다. 일반적인 전자는 원자 안에서 핵 주변을 뱅글뱅글 돈다. 태양을 도는 지구와 비슷하다. 하지만 자유 전자는 핵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인다. 이런 자유 전자들이 잔뜩 모인 것이 스핀구름이다.

스핀구름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오래됐다. 1930년대 일본 과학계에서다. 2020년 다른 연구진에서 소수 스핀구름의 실체를 일부 알아냈고, 이번에 국내 연구진은 다수의 스핀구름이 한꺼번에 모이면 새로운 양자 물질이 생긴다는 점까지 규명했다. 스핀구름이 현실 생활에 활용되면 자기부상열차나 자기공명영상장치(MRI)의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과학계는 보고 있다.

연구진이 스핀구름에서 새로운 양자 물질을 발견한 건 우연, 그리고 근성 덕이다. 연구진은 양자컴퓨터와 관련해 2015년부터 연구를 했다. 그런데 연구 초기에 극저온에 놓인 실리콘 금속에서 이전에는 학계에서 보고되지 않은 특이한 물리적 성질을 발견했다.

당시에 연구진은 이를 측정기기의 오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반복적인 실험과 끈질긴 재확인을 통해 기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연구진은 7년간의 분석 끝에 새로운 양자 물질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로 ‘스핀구름’이 일으킨 결과였다.

새로운 양자 물질을 발견하기까지 연구진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실리콘 금속을 영하 272도의 극저온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 연구가 시작된 2015년 당시에는 극저온을 구현하며 실험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이 국내에 별로 없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정기적으로 일본 연구기관에 건너가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양자 물질을 발견했다.

임 교수는 전날 세종시 과기정통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스핀구름을 상호작용하게 할 수 있다면 양자컴퓨터의 기본이 되는 큐빗(qubit)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큐빗은 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다. 이런 큐빗을 거미줄처럼 연계해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뛰어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양자컴퓨터는 지금도 슈퍼컴퓨터를 훨씬 능가하는 성능을 지녔다. 2019년 구글이 만든 양자컴퓨터 시제품이 슈퍼컴퓨터로는 1만년 걸릴 계산을 3초만에 했다. 연구진은 향후 스핀구름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물리적인 성질을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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