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기고 - “타인의 노동시간을 빼앗지 마라”…2008년 경제위기 선방, 북유럽에서 확인한 마르크스 해법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21세기 들어 인류는 재앙적인 기후이변과 대규모 질병의 유행 등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환경적 변화와 함께 2008년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류의 생태계가 균형을 잃은 이런 현상이 자본주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바로 그 자본주의의 위기가 때맞춰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발전이 한계에 봉착했으며 그 한계가 생태계 교란이라는 병적인 증상으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본질적 해결의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으며, 일시적인 미봉책조차도 세계기후정상회의에서 볼 수 있듯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일찍이 150년 전에 예견됐고 해법도 함께 제시됐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경제적 특징이 자신의 소비를 넘어서는 잉여의 생산에 있으며 인류는 그 잉여를 여가시간으로 사용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춘 생태순환체계를 구축했다고 봤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자본주의 이전까지 생태와 보조를 맞추는 이런 경제구조를 계속 유지해왔다. 최초의 경제였던 원시공산제에서는 잉여를 공동의 여가시간으로 활용했고, 뒤이은 노예제에서는 잉여를 둘러싼 개인들 사이의 투쟁을 거쳐 승자가 패자의 잉여와 여가시간을 모두 차지했다. 다음의 봉건제에서는 경제가 자급적 단위로 분할됐고 이 단위 내에서 영주와 농노는 잉여를 절반씩 공유했다.

이들 경제제도의 공통된 성격은 경제의 목적이 소비, 즉 사용가치의 획득에 있었고 생산된 잉여는 모두 여가시간에 소비됨으로써 경제 전체의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뤘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는 이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깨어진 틈에서 발생했다. 11~14세기 유럽은 장기간의 전쟁과 페스트라는 역병의 중첩된 재난으로 생산이 대폭 감소하면서 소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교역을 돌파구로 삼았다. 사용가치의 생산에서 교환가치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 즉 자본주의로 이행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루는 교환가치는 인간의 생물학적 소비능력이라는 한계를 갖는 사용가치와 달리 한계가 없는 단순한 양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양도 더 많은 양보다는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생산을 무한 확장하는 속성을 갖는다. 교환가치는 최초로 자본주의를 분석한 고전경제학자들이 밝혔듯이 인간의 노동시간으로 이뤄져 있고, 이에 근거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타인의 노동시간을 빼앗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논증했다. 빼앗기는 이 노동시간은 원래 여가시간으로 사용되던 잉여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두 가지 특징으로 집약된다. 생산의 무제한적 확장과 여가시간의 감소다.

이들 특징은 필연적으로 상호 충돌을 일으킨다. 여가시간의 감소는 인간의 소비능력을 줄이고, 생산의 무제한적 확대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깨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생산의 확대가 끊임없이 소비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축소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경기변동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소비되지 못하는 생산물은 정체되고 생태의 균형을 파괴한다. 생태교란이 유독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는 타인의 노동시간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고 이 해법은 유럽 노동운동의 실천으로 옮겨졌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을 통해 마르크스 이론은 노동운동과 결합했고 이후 독일을 모범으로 북유럽에 자리 잡았다. 생태모범 도시 프라이부르크가 독일의 녹색수도이고, 녹색당이 가장 먼저 결성된 나라도 독일이라는 사실은 마르크스 해법을 잘 보여준다. 타인에게 빼앗기는 노동시간을 없애기 위해 노동시간의 단축을 꾸준히 실현해온 북유럽 국가들이 2008년 공황에서 공황의 여파를 가장 적게 받았다는 점도 마르크스 해법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얘기하는 자리에서는 2008년 이후 등장한 다음 경구를 반드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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