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사과 타령이나 할 때인가

전병역 경제에디터

지난달 베란다 화분에 홍로 사과나무를 옮겨 심었다. 지난 2년간 뒤뜰에 있던 것인데 일조량이나 기온 탓인지 도통 꽃을 피우지 못해서다. 북쪽에선 싹 틔우기도 힘드니 꽃이 필 리 없다. 올해는 홍로를 맛볼 수 있을까.

올해만큼 이토록 화려했던 봄은 내 일찍이 못 봤다. 진달래, 개나리가 벚꽃과 동무가 되고, 목련이 채 피기도 전 벚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린다. 조팝꽃이 산수유보다 일찍 향을 뽐내질 않나. 온통 뒤죽박죽이다. 봄의 전령들은 어쩌다가 이런 철부지가 됐을까. 덕분에 봄나들이는 멋지게 즐겼지만 왠지 씁쓸하고, 슬슬 불안해진다.

누구는 <침묵의 봄>(1962)을 우려했어도, 우리는 이 ‘화사한 봄’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만일 봄 기온이 갑자기 3도 정도로 떨어져 수십일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농작물은 태반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것이다. 어떤 영화처럼 자전축이 틀어지거나 하는 사태가 아니어도 이런 위험이 불현듯 닥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문득 든다.

최근 사과를 비롯한 과일, 채소 가격이 치솟았다. 그래 사과 정도는 안 먹고 살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쌀이나 밀일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값이 뛰었는데 기후위기 심화 땐 상상조차 힘든 충격이 닥칠 테다. 이러다간 훗날 ‘서울시청 광장에 웬 잔디밭인가, 용산민족공원은 무슨 배부른 소린가’라며 대파밭으로 갈아엎자고 할지도 모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사과 가격은 금리가 아니라 수입으로 잡아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G7, 대만과 비교하니 올해 국내 과일, 채소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한다. 휘발유 같은 에너지류 소비자물가도 세계 2위다. 즉 한국의 물가는 중동사태·기후변화 등에 가장 취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한은은 반성문을 내야 한다.

한은 본관에는 장삼이사도 쉬이 알아보게끔 큼지막한 한글 글귀가 걸려 있다. ‘물가안정.’ 한은의 최우선 덕목이자, 존재 가치란 사실은 한국은행법 제1조를 비롯해 곳곳에 명시돼 있다. 한은이 ‘금융안정’ 등을 이유로 경기침체니, 가계부채니 걱정하기에 앞서 맨 먼저 챙겨야 할 게 물가다. 나머지는 정부에 책임을 넘기면 된다. 물가를 못 잡은 건 새가슴 탓인가, 정권 눈치보기 탓인가. 한은 독립성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빚내서 집 사라’ 정책에 호응해 초저금리를 만든 장본인이 한은이다. 그렇게 부풀린 가계부채를 이유로 이제는 물가 잡기를 머뭇거린다면 자가당착이다. 2022년 집값이 조정기에 들어갔을 때 금리를 올렸어야 한다. 적어도 지난해 늦여름쯤은 인상 타이밍이었다. 심지어 최근 미국에선 금리 재인상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도 언제든 금리를 올릴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라도 적극 내라고 주문하는 전문가가 적잖다.

서민들 고혈을 빠는 고물가의 큰 책임이 한은에 있다. 물론 금리를 올리면 영세 자영업자 같은 취약차주의 고통이 커진다. 다만 이들은 선별적 구제책으로 보살피면 된다. ‘한강’의 큰 줄기부터 봐야지, ‘샛강’을 너무 따져선 일을 그르친다.

‘개방형 통상국가.’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추진에 지지세력의 비판에 부딪히자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러나 나랏일이 어디 계산대로만 되는가. 며칠 전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22년 한국 농업 현주소는 참담하다. 20년간 FTA 이후 농가가 줄어든 건 이해가 되는 바다. 농촌 노령화 속 농가 축소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농가당 농업소득이 949만원에 불과해 2004년 1205만원보다 21.2%나 줄었다. 이건 어디가 한참 잘못된 결과물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그저 지원금 풀어서 사과, 배 가격이나 선거 앞에 일단 떨어뜨려보자는 것 외 어떤 농업대책을 갖고 있을까. 특히 이 정부는 올해 농업 R&D 예산을 20% 넘게 줄였다. 그저 한 일이라곤 식품업자들을 불러 앉혀서 빼빼로, 붕어싸만코, 꼬북칩 가격이나 겁박하고, 대파값 갈등을 자초한 것밖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옹졸하게 분개하지 말자. 모래야 바람아, 정말 얼마큼 작으냐.

요즘 편의점에는 ‘간편식’이 다채롭게 나오고 있다. 그 이유를 최상목 기재부 장관이나 이 총재는 알고 있을까. 장차 나라를 짊어질 동량들이 끼니를 때우기 급급한 모습이다. 장관님, 총재님은 오늘 점심으로 뭘 드시려는가.

전병역 경제에디터

전병역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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