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식당의 ‘맛’처럼…기업 ‘가치’ 지켜져야 100년 투자 따라온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미식의 시대다. 오래된 여의도 빌딩들이 새 단장을 하면 거의 대부분 1~3층에는 음식점이 입점한다. 대형 쇼핑몰의 중심은 전국의 맛집들이 모인 식당가다. 여의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수동의 변화를 이끈 것은 젊은 셰프들의 도전이었고, 송리단길과 연남동의 상권 형성도 색깔이 뚜렷한 음식점이 시작이었다.

멋진 한 끼나 좋은 주식이나, 선택의 기준은 다르지 않다. 맛난 집을 찾듯이, 이익 많이 내는 기업을 발굴해야 한다. 외진 곳에 있어도, 거기 가야 맛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찾아간다. 유명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협찬 없이도 실린다. 업종이 무엇이든지, 매출과 이익이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은 투자자들이 알아서 손을 내민다. 음식 솜씨와 경영능력이 뛰어난 셰프가 이끄는 식당이 맛집이듯, 경제적 해자를 지닌 사업과 이를 이끌어낼 경영진을 지닌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생각을 넓게 해보자. 음식점 평가 항목으로는 맛이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 청결도, 교통, 주차시설, 인테리어 등을 꼽을 수 있다. 맛은 뛰어나지만 나머지가 아쉽다면, 식당 주인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레시피만 훌륭하다면 더 큰 매장과 더 좋은 입지를 통해 매출 확대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좋은 위치에 식당을 개점하는 데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코로나 불경기로 주변 식당이 다 망해도, 줄 서서 기다리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있다면 욕심을 낼 만하다. 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부채가 아닌 투자자의 도움을 활용할 수도 있다.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맛난 음식을 즐기기를 원하는 이들의 돈으로 청결도, 교통, 주차시설 등을 개선하면 된다. 식당은 돈을 더 벌고, 투자자는 수익을 내고, 음식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투자한 식당이 성공한 후이다. 식당 주인은 투자자에게 배당을 주기보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메뉴로 다른 식당을 열 수 있다. 식당 주인이야 돈을 벌겠지만, 경쟁력 있는 메뉴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투자 근거를 잃게 된다. 누구나 기억하는 노포가 확장한 뒤, 고유의 맛을 잃고 조용히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 그 사례이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식당 투자와 비슷하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분할은 맛집의 인기 메뉴(배터리사업부)를 분사로 상실한 것과 같다. LG화학 투자자는 배터리 사업의 미래가치에 투자했지만, 신설 법인인 LG에너지솔루션의 의결권은 상실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일부에서는 ‘물적분할 후 상장 금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물적분할 후 상장 금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해외 어느 나라도 물적분할과 동시 상장을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현 상법상으로는 물적분할 후 상장을 금지하더라도 이미 물적분할 과정에서 신설 법인에 대한 의결권이 사라지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훼손을 일부 축소하는 방안이지 궁극적 해결 방안은 아니다. 그래서 상법 개정을 통해 주식매수청구권 인정 범위를 확대해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엑시트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 물적분할의 합당한 사유와 명분이 없어 반대 주주가 많을 경우 물적분할을 위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쉽게 물적분할을 할 수 없다.

증권거래법상의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지배주주가 매각 과정에서 얻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주주도 같이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이다. 국내도 1997년 증권거래법을 통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당시 지분 25% 이상 취득 시 공개매수를 통해 50%+1주를 취득하도록 했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폐지했다. 이제 다시 부활시킬 때가 되었다.

듣기만 해도 전설적인 식당이 있다. 짜장면은 안동장, 냉면은 우래옥, 갈비는 조선옥, 육개장은 부민옥 등이다.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그 맛이 다른 식당으로 옮겨진다면, 식당 이름은 같다 한들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동참하고자 했던 비즈니스가 다른 신설 법인으로 넘어간다면, 그 기업에 투자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코로나 이후 주식 직접 투자 인구가 늘어났지만, 증시는 한 단계 전진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년 식당의 비결이 변하지 않는 맛에 있듯이, 100년 투자도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에 있다. 기업이 지닌 가치가 제도적으로 보호될 때,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필자는 여전히 짜장면과 갈비를 먹을 때의 행복을 생각한다. 가치는 인테리어가 아닌 맛이다. 기업 가치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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