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성장주는 가치주가 되고…가치주는 혁신 통해 다시 성장주 ‘변신’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20세기 최고의 상품은 무엇일까? 1999년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천은 7개의 상품군에 40개의 ‘20세기 최고의 상품’을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 기준은 “이것이 지금 없었다면 우리 생활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할 것”이었다. 클립, 포스트잇, 일회용 반창고와 같은 생활용품부터 우리 생활의 바탕을 바꿔놓은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등이 선정되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한 경제연구소에서도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국의 20세기 최고의 히트상품을 선정했다. 그 순위를 보면 5위 새우깡, 3위 박카스, 2위 아래아 한글, 그리고 1위는 놀랍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어떻게 아이돌그룹이 190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었을까? 그것은 기존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그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로 우리나라엔 10대들이 소비의 주체가 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소비도 부모들에 의해 좌우되는 피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들어와서 ‘난 알아요’를 외치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시장, ‘10대 시장’을 개척하고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주식시장에서도 장기간에 걸쳐 10배 혹은 100배 이상 주가가 오르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기존에 없던 상품과 시장을 만든 기업’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은 신상품, 신시장을 만드는 기업이다. 흔히 마케팅에서 말하는 온리원(Only One) 전략의 기업이다. 지난 15년간 전기차 시장을 만들었던 테슬라나 인공지능 GPU 업계의 지존인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유망한 기업은 기존의 상품을 새롭게 대체하는 기업이다. 반도체 업계의 후발주자였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시장을 석권한 삼성전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마케팅 전략에서 말하는 베스트원(Best One) 전략의 기업이다.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도가 낮은 기업은 기존의 상품으로 기존의 시장을 잠식하는 원오브뎀(One of Them) 기업이다. 제습제 시장의 판도를 바꾼 ‘물먹는 하마’가 등장하자 유사 제품인 ‘물먹는 ○○’을 만들었던 기업들이 좋은 예이다. 주식 투자는 궁극적으로 온리원 혹은 베스트원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에 해야 한다.

월가의 영웅으로 불리는 피터 린치는 10루타 종목(Tenbagger·주가가 10배 이상 오르는 종목)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으며, 기업의 주가가 오를지 여부를 알기 위해 그 기업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 어느 분석가가 10루타 종목을 분석해보니 91%가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77%가 소형주였으며, 51%가 자기자본이익률(ROE) 12% 이하였고, 절반 정도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5배 이하였다. 즉 순이익과 관련된 ROE, 주가수익비율(PER)은 10루타 종목을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성장주(Growth stock)들이 10루타 종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이전에 없던 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온리원 전략의 기업으로, 과거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사업 초기엔 적자인 경우가 많고,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식시장에서 말하는 성장주와 가치주(Value stock)에 대한 개념도 대칭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성장주와 가치주는 따로 있지 않다. 기업은 나무와 같아서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이후에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도 한다. 현재 대표적인 가치주로 분류되는 SK텔레콤은 1990년대엔 최고의 성장주였다. 삼성전자는 2004년 반도체 사이클이 마무리된 이후 가치주였지만, 2010년 모바일 혁명 이후 다시 성장주로 변신했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테슬라는 최근 15년간 주가가 100배 이상 올랐지만 신성장동력이 없다면 이젠 가치주의 반열로 진입할 공산이 크다. 그런 관점에서 20년 이상 혁신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던 애플 역시 새로운 비즈니스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가치주의 사이클로 들어설 것이다.

단순히 PER이나 PBR을 기준으로 성장주 혹은 가치주로 분류하면 안 된다. ‘성공한 성장주’가 결국 가치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혁신이 가치주를 성장주로 거듭 태어나게 한다. 성장주가 좋다느니, 가치주가 좋다느니 하는 논쟁은 의미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컴백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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