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저장시설 2년 뒤 포화인데…방폐장 건설 계획도 못 세웠다

남지원 기자

재검토 대상 올린 ‘사용후핵연료 정책’ 어디까지 왔나

재검토위 구성 일정·의제 못 정해…고준위방폐장 법안도 표류

부지 선정작업 12년 걸려 지금 시작해도 2031년 입지 확정 가능

정부 밀어붙이기식 선정에 주민 반발 반복…30년간 9차례 무산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이 경주 방폐장에 쌓여 있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물론 폐연료봉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원전 보유국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를 완전히 해결한 나라는 없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이 경주 방폐장에 쌓여 있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물론 폐연료봉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원전 보유국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를 완전히 해결한 나라는 없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원자력발전소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불린다. 원전에서는 우라늄이 핵분열을 할 때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원자로 중앙부에는 우라늄으로 만든 연료봉 다발이 장전돼 있다.

우라늄 1g이 핵분열을 하면 석탄 3t이 완전 연소할 때와 맞먹는 에너지를 낸다. 이런 효율성 때문에 원자력은 막강한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았지만 문제는 발전이 끝난 뒤에 남는 폐연료봉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에서 나오는 부산물 가운데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다. 방사능 세기가 자연상태의 우라늄 수준으로 줄어들 때까지는 최소 10만년에서 길게는 100만년까지 걸린다. 앞으로 최대 100만년까지 안전한 곳에 깊숙이 묻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1950년대 처음 원자력발전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곧 사용후핵연료를 완전히 처리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지만, 아직까지 인류는 그런 기술을 찾지 못했다. 세계적으로도 핀란드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구폐기장을 건설 중이다. 한국은 열과 방사선을 차단할 수 있는 원전 내 저장수조에 폐연료봉을 보관해왔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그동안 쌓였던 오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조만간 한국 사회의 거대한 뇌관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집계한 통계를 보면 각 원전본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수년 내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7066다발을 저장할 수 있는 한울원전에는 지난해 말까지 5531다발이 저장돼 포화율이 78.3%에 이르렀고 고리원전의 포화율은 77.3%, 한빛원전은 69.9%이다. 경수로인 이들 원전은 사용후핵연료를 거대한 수조 안에 넣어두고, 국내 유일의 중수로인 월성원전의 경우 수조에 넣었다가 건식저장시설로 옮기는데 이 시설도 90.3%가 찼다.

월성 저장시설 2년 뒤 포화인데…방폐장 건설 계획도 못 세웠다

당장 월성 건식저장시설은 2년 뒤인 2021년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한빛원전과 고리원전은 2024년 가득 찬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꽉 차면 설계수명이 끝나지 않은 원전도 가동하기 어려워진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설계수명이 만료돼 폐쇄하기로 한 고리·월성 1호기 등을 해체하기도 어렵다. 동일본 대지진 후 가동이 중단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지금까지 방치돼 있는 것도 원전 안에 임시저장된 막대한 폐연료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아직까지 폐연료봉 처리법은 사실상 없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려고 30여년간 시도했지만 밀어붙이기식으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고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극한의 갈등만 반복되며 모두 9차례 무산됐다.

대표적인 사례만 꼽아봐도 1990년 충남 안면도가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됐다가 주민들이 무력시위를 벌여 중단됐고, 1994년에는 인천 굴업도가 선정됐다가 해저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돼 엎어졌다. 2003년에는 김종규 당시 전북 부안군수가 독단적으로 방폐장 유치신청을 내고 정부가 주민 반대를 알면서도 방폐장 건설을 추진하며 ‘부안 사태’라 불릴 정도의 격렬한 시위가 1년 넘게 이어졌다.

부안 사태를 겪은 뒤에야 정부는 방폐장 부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려는 시도를 접고 ‘지역이 수용 가능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사용후핵연료가 포함된 ‘고준위폐기물’과 ‘중·저준위폐기물’을 나눠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 먼저 짓기로 했다. 중·저준위폐기물은 방사능시설에서 나오는 작업자들의 옷이나 장갑부터 공구나 부품 등을 말하며 상대적으로 방사능 세기가 약해 그나마 수용이 가능하다. 2005년 전북 군산과 경북 포항·경주·영덕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가장 찬성률이 높았던 경주가 방폐장 부지로 확정됐다.

고준위폐기물 문제는 폭탄돌리기 끝에 박근혜 정부 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시민단체가 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이 부족하다며 참여를 거부해 ‘반쪽짜리 위원회’란 논란이 일었다. “원전 바깥의 중간저장시설을 2020년까지 정하고 영구처분시설을 2051년까지 완공해 운영한다”는 권고안에 대해서도 중간저장시설을 떠안을 수 있다고 우려한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출범 뒤 국정과제로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해 정부·시민·환경단체·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재검토준비단’이 활동했지만 정작 재검토를 주관할 재검토위원회 구성은 합의하지 못했다. 정부는 1월 중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위원회 구성 일정도, 구체적인 의제도 정해지지 않았다.

고준위방폐장 부지 선정과 관련된 법안도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최소 300~1000m 깊이의 지하에 묻어야 하고 주민 반대도 심할 것으로 예상돼 정부는 부지 선정에만 12년을 잡고 있다. 지금 선정을 시작해도 2031년에야 부지를 확정해 건설을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국회에는 지난 정부에서 제출한 정부안과 더불어민주당 신창현·우원식 의원이 제출한 고준위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를 담은 법 3건이 아직 계류돼 있다. 일단 법이 제정돼야 지자체 공모와 부지적합도조사, 주민투표 등의 과정을 거쳐 방폐장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검토위원회 구성뿐 아니라 공론화 방법 등 사전 준비 작업을 착실히 하면 위원회 출범 뒤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재검토를 통해 고준위폐기물 정책이 확정되고 후속 법제화까지 끝난 뒤에야 부지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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