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비어가는 HUG의 잔고… 밑빠진 ‘깡통전세’에 물붓기 안되려면

심윤지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올해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로 세입자에게 대신 돌려줘야 할 보증금이 2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집값 하락세에 매매가보다 전세금이 더 비싼 ‘깡통전세’도 늘어나는 중이라, HUG의 자금 여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법무부·경찰청이 참여한 ‘부동산관계장관회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사진 크게보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법무부·경찰청이 참여한 ‘부동산관계장관회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1월 한달 HUG가 집주인 대신 갚은 돈 ‘1700억’

14일 HUG에 따르면, 지난달 HUG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 대위변제액은 169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달(523억원)에 비해 224% 급증했다. 올해 대위 변제액이 지난달 수준을 유지한다 해도 연말이면 2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전세금반환보증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할 때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제도다. 하지만 HUG가 대위변제한 주택 중엔 애초에 보증금 반환 의사가 없던 ‘전세사기’ 일당의 물량이 상당수라, 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

지난해 전세보증금반환사고 규모는 1조1731억원으로, HUG는 이가운데 9241억원을 세입자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임대인에게 회수한 금액은 2490억원에 불과했다. HUG는 이러한 전세사기 피해 물량이 올 하반기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HUG의 자금 여력에도 빨간 불이 커졌다. 주택도시기금법 상 HUG는 ‘자기자본의 60배’까지만 보증 발급이 가능한데, 지난해 12월 말 기준 보증배수가 54.4배까지 올라오며 한계선에 근접했다. 60배를 넘어서면 HUG의 보증상품 공급이 전면 중단된다.

HUG는 일각의 보증 중단 우려엔 선을 그었다. HUG 관계자는 “기가입자의 대위변제는 지금 있는 자본으로도 가능하지만, 신규 보증 가입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정부 출자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기재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시내 빌라촌. 강윤중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시내 빌라촌. 강윤중 기자

전세가율 90%로 낮추긴 했지만… 문턱 더 높여야?

정부는 일단 HUG 보증 신규 가입 문턱을 높인 상태다. HUG가 매맷값과 전셋값 차이가 전혀 없는 주택까지 보증을 해준 것이 전셋값 상승과 무자본 갭투자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비판 때문이다.

지난 2일 발표된 ‘전세사기 피해근절 종합대책’에는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100%에서 90% 이하 주택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집주인이 집값의 최소 10%는 부담해야 정부도 보증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깡통전세 기준이 ‘전세가율 80% 이상’ 주택임을 고려하면, 90%도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임차인 보호’라는 보증보험제도 취지를 생각할 때, 추가 하향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 “전세가율을 낮추면 낮출수록 깡통전세 사고 가능성은 줄어든다”면서도 “전세가율이 높은 도시형생활주택·빌라·오피스텔 등은 가입 거절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서민·주거취약 계층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금은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라 전반적인 전세가율이 낮아질 수 있다”이라며 “신축빌라 등 전세가율이 높은 주택은 세입자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월세로 돌리는 방안도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보며 조정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지난 12월 20일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전세 사기 피해 아파트 정문 모습/연합뉴스

지난 12월 20일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전세 사기 피해 아파트 정문 모습/연합뉴스

밑빠진 ‘깡통전세’에 물붓기 안되려면…

‘보증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일단 정부 출자를 통해 HUG의 자금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제도 개선 없이 HUG 보증 규모만 늘리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최근 문제가 된 조직적 전세사기 사례를 보면, 분양업자·바지 임대인·감정평가법인·공인중개사 등이 짜고 전세가와 매매가를 부풀린 것이 명확한데도 HUG에서 걸러내지 못했다”이라고 했다.

최 소장은 “지금도 ‘동시 계약’을 통한 시세 부풀리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변제 능력이 없는 임대인이나 시세가 부풀려진 주택을 걸러내는 장치 없이 무조건 정부 보증을 확대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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