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마리 괭이갈매기 천국, 그곳은 처절한 전쟁터였다… 국내 최대 번식지 경남 홍도

김기범 기자

수많은 둥지 ‘다닥다닥’ 영역 침범한 새끼들 쪼여 죽기도

이동경로 아직 베일에… 위치추적기 부착해 생태 규명 중

“앗, 저기 초록색 가락지를 낀 괭이갈매기가 있네요.”

지난 12일 국내 최대 괭이갈매기 번식지인 경남 통영 홍도의 돌계단에 섰다. 권영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장이 한쪽 다리에 초록색 가락지를 달고 있는 괭이갈매기를 가리켰다. 그는 “2002년 가락지를 끼워 보낸 녀석이니까 적어도 17년째 생존해 있는 것”이라며 “괭이갈매기 수명이 17년 이상이란 게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13년 전 날려보낸 새가 최소 17년째 생존해 있다는 셈법은 어떻게 나왔을까. 괭이갈매기들은 태어난 지 4년째부터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개체는 1999년 이전에 태어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해외 학계에서는 괭이갈매기 수명이 20~30년 정도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지만 국내에서는 이날 발견된 갈매기가 가장 오래 산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12일 경남 통영시 홍도에서 괭이갈매기들이 바다와 섬을 오가며 날고 있다. 국내 최대의 괭이갈매기 번식지인 홍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특별보호구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 김기범 기자 사진 크게보기

지난 12일 경남 통영시 홍도에서 괭이갈매기들이 바다와 섬을 오가며 날고 있다. 국내 최대의 괭이갈매기 번식지인 홍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특별보호구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 김기범 기자

홍도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철새연구센터 연구자들을 따라 들어갔다. 거제항에서 배로 40분 정도 걸려 섬에 오르니 땅바닥은 둥지를 지키는 괭이갈매기와 새끼들, 아직 부화하지 못한 알들로 가득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알을 밟게 될까봐 조심조심 걷고 있을 때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제 새끼 근처로 오지 말라며 “꽤액” 경계음을 내며 날아든 괭이갈매기의 공격이었다. 등산모자를 쓰지 않았다면 살이 패였을 듯한 아픔과 함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가 떠올랐다. 하지만 영화 속 새떼가 사람을 공격한 것과 달리 괭이갈매기들은 번식과 새끼 보호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람들이 둥지에 다가오지 않으면 신경쓰지 않았다. 19년째 괭이갈매기를 연구하고 있는 권 센터장은 “새들이 위협삼아 툭툭 사람 머리를 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며 “나뭇가지를 높이 들고 있으면 나무를 공격한다”고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가 알려준 대로 하자 괭이갈매기들은 이날 수십차례 머리 위 나뭇가지를 공격했다.

괭이갈매기는 선착장이나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다. 사람들이 새우깡을 던져주면 재빠르게 날아와 받아먹는 친근한 새이다. 보통 4월쯤 인근 섬으로 모여들어 번식하고 7~8월이면 다시 해안가로 돌아간다. 홍도는 국내에서 괭이갈매기가 가장 많이 모이는 번식지다. 거제와 대마도 중간쯤에 있는 홍도에 올해 모여든 갈매기는 약 3만마리로 추산된다. 연구자들이 “갈매기 똥이 비처럼 내린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숫자가 많아 방호복을 입고 섬에 들어갈 때도 많다. 이곳 외에는 독도와 전남 영광의 칠산도, 충남 태안의 난도가 대규모 번식지로 꼽힌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 권영수 센터장이 지난 12일 홍도에서 2002년 푸른색 가락지를 끼워 날려보냈던 괭이갈매기를 관찰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 권영수 센터장이 지난 12일 홍도에서 2002년 푸른색 가락지를 끼워 날려보냈던 괭이갈매기를 관찰하고 있다.

‘괭이갈매기의 천국’으로 불리는 홍도지만, 한나절 돌아본 섬은 생존경쟁이 처절한 ‘아수라장’이었다. 바닥에는 돌아다니며 어미를 부르는 새끼 갈매기들도 많았지만, 머리에 쪼인 흔적이 남아있는 사체도 지천이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들이 걸어다니다 남의 둥지를 침범하면 부리에 쪼이기 일쑤인데 둥지가 오밀조밀 붙어있다 보니 공격당하는 새끼들도 많다고 한다. 옆 둥지의 새끼를 쪼아 내쫓다가 부모끼리 싸우는 광경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남의 새끼를 물어 벼랑 쪽으로 밀어버리려다 부모 괭이갈매기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잠시만 방심해도 목숨을 잃게 되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천적인 맹금류들도 괭이갈매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날도 먹잇감을 찾는 참매 두 마리가 상공을 선회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권 센터장은 “맹금류도 괭이갈매기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는 쉽사리 내려오지 못한다”며 “둥지가 듬성듬성 있는 쪽의 괭이갈매기가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갈매기 수가 늘다보니 홍도를 중간 기착지로 삼는 작은 철새들이 갈매기들에게 쪼여 죽는 수난을 겪기도 한다. 철새연구센터는 이를 막기 위해 갈매기가 앉거나 들어가기 어려운 횃대나 나무 덤불을 설치해 철새들이 쉴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괭이갈매기가 둥지에 사람이 다가오자 경계의 눈빛을 보이고 있다.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괭이갈매기가 둥지에 사람이 다가오자 경계의 눈빛을 보이고 있다.

여러 해 홍도에 찾아와 번식한 경험이 있는 괭이갈매기들은 바닥이 평평한 곳에서 푹신한 밀사초를 둥지 삼아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하지만 초보 부모들은 새끼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계단 가장자리나 벼랑 가까운 곳에 둥지를 만들기도 했다. 새끼가 죽거나 알이 부화하지 못하면 부모 괭이갈매기들은 다시 알을 낳기도 한다. 권 센터장은 “괭이갈매기는 태어난 지 45일째가 되면 날아다닐 수 있게 되고, 이때까지 살아남으면 생존 가능성이 높다”며 “장마가 얼마 안 남은 이때까지 부화하지 못했거나 태어난 지 며칠 안된 개체들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홍도를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특별보호구로, 문화재청은 섬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전에는 낚시꾼들이 갈매기 알을 싹쓸이하는 통에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바짝 붙어 있는 두 둥지의 괭이갈매기들이 새끼가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인해 다투고 있다.

바짝 붙어 있는 두 둥지의 괭이갈매기들이 새끼가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인해 다투고 있다.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는 데 비해 괭이갈매기 생태는 아직 베일에 가려진 게 많다. 번식지에서의 삶은 밝혀진 게 많지만 어디서 살던 갈매기들이 모이는 것인지, 다시 어디로 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번 만난 배우자와 평생 같이 사는 갈매기 부부가 번식기가 아닐 때도 같이 다니는지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무인카메라를 통해 1월에도 일부 갈매기들이 홍도에 돌아오는 게 확인됐지만 번식기도 아닌 겨울에 홍도를 찾는 이유는 밝혀야 할 과제다. 권 센터장은 “위치추적장치를 네 개체에게 단 결과 두 개체가 거제·통영까지 이동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연구를 계속하면 괭이갈매기들이 시기별로 번식지 이외에 이동하는 장소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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