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반기는 사람 반, 외면하는 사람 반…수족관 범고래의 슬픈 귀향

최명애 | 환경지리학자

베스트만 제도로 향하는 배는 밤 9시30분 정각에 출발했다. 창밖으로는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파도 방울이 얼룩진 창문 위로 내 얼굴만 비쳤다. 운이 좋았다. 떠나려는 배를 가까스로 잡아탔다. 이 마지막 배를 놓치면 다시 2시간을 달려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야 한다. 렌데이야호픈 선착장에는 선착장 건물 한 채뿐. ‘문명’의 흔적이랄 게 없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레이캬비크 남쪽에서 배로 3시간이 걸렸다는데, 베스트만의 주민들이 열심히 로비를 하셨는지, 베스트만 제도 최대의 섬 헤이마이와 아이슬란드 본섬을 잇는 최단 거리에 선착장이 생겼다. 쾌속선으로 35분이면 간다. 그 덕을 내가 보고 있다.

‘고래 관광’ 깃발 너머로 포경선이 정박해 있는 레이캬비크 항구의 모습.

‘고래 관광’ 깃발 너머로 포경선이 정박해 있는 레이캬비크 항구의 모습.

이렇게 운이 좋으니 어렵지 않게 케이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범고래 케이코는 가수 비요크와 시규어 로스와 함께 아이슬란드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월드 스타’다. 케이코는 두 살 무렵이던 1979년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혔다. 미국의 고래 포획 금지 조치로 전 세계 수족관의 고래 사냥꾼들이 아이슬란드에 집결할 때였다. 멕시코시티의 ‘레이노 어벤추라’라는 B급 테마파크에서 평범한 쇼 범고래로 살아가던 케이코의 인생은 1992년 영화 <프리윌리>의 주인공, 범고래 윌리로 전격 캐스팅되면서 전기를 맞는다. 수족관의 범고래가 소년의 도움으로 자유를 되찾는다는 내용의 영화는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주연 배우 케이코를 야생으로 돌려보내자는 ‘프리 케이코’ 캠페인이 전 세계를 달궜다. 마침내 케이코는 1998년 고향인 아이슬란드로 돌아오게 된다. 케이코가 야생 적응 훈련을 받던 곳이 바로 베스트만 제도의 헤이마이섬이다. 헤이마이(heimaey)는 아이슬란드어로 ‘집(home)’이란 뜻이다.

■케이코 흔적 찾아 삼만리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세상을 뜬 지 10년이 넘었지만 케이코도 뭔가 남긴 것이 있을 것이다. 일단 자동차로 섬을 구석구석 훑어보기로 했다. 헤이마이는 산타클로스 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조그만 섬이다. 전날 밤 배가 도착한 항구와 마을은 모자 머리 부분에 모여 있다. 도로는 마을 밖으로 쭉 이어진다. 구릉성의 부드러운 언덕과 풀밭, 모르긴 해도 ‘선녀바위’ ‘세 자매’ ‘추암’이라고 부를 법한 바위섬들이 이어졌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었다. 제주도였다. 다만, 얄궂은 테마 박물관도, 올레길 화살표도,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도 없는, 즉 아무것도 없는 제주도. 이따금 양들이 풀을 뜯다 말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직선거리로 5㎞인 모자의 머리와 방울을 한 번, 두 번, 세 번 주파했을 때 바다 위로 움직이는 점들이 보였다. 범고래인가? 떨리는 손으로 쌍안경을 들었다. 새였다. 그것도 조그만 새. 색동 부리에 주황색 발,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 퍼핀이다. 해안가 절벽의 손바닥만 한 틈새마다 퍼핀이 들어 있었다. 퍼핀들은 절벽 앞으로 조심조심 걸어나와, 한참을 망설이다 날아오르더니, 바다로 곤두박질하듯 추락했다. 그게 퍼핀의 정상적인 착륙 자세다. 이 어리숙한 행동과 눈에 띄는 부리 때문에 퍼핀은 인기 스타다. 그러나 나는 범고래를, 그것도 케이코를 찾아서 온 것 아닌가.

1993년 개봉한 영화 <프리윌리> 포스터.

1993년 개봉한 영화 <프리윌리> 포스터.

육상 탐험은 실패. 배를 타기로 전략을 바꿨다. 베스트만 제1의, 아마도 유일할, 보트 관광 업체 ‘바이킹 투어’는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들 대구 조업에 여념이 없으신가. 4200여명의 베스트만 주민 대다수는 어부다. 시내에 ‘포토 플레이스’라고 불러도 좋을 곳이 딱 한 곳 있는데, 생선 조업과 냉동 처리 과정의 벽화가 그려진 냉동창고다. 인적 끊긴 골목으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는 쌀쌀한 오후였다. 이제 그만 끊어버릴까 할 때 전화가 연결됐다.

“아, 해안 절경을 보며 섬을 한 바퀴 도는 투어예요. 대단해요. 가끔 파식 동굴도 들어간다니까요.”

“아니, 그거 말고 고래는….”

“아, 퍼핀! 진짜 많이 볼 수 있어요. 대단해요.”

“아니, 새 말고 고래는….”

“아, 물범! 운 좋으시면 물범도 봐요.”

바이킹 투어는 고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케이코의 ‘케’자도 나오지 않는 평범한 유람선 투어였다. 아이슬란드가 나름대로 유럽 최대의 고래 관광지인데, 케이코의 고향에는 고래 관광이랄 게 정녕 없단 말인가.

클레트스비크만은 범고래 케이코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야생 적응 훈련을 받고 야생의 범고래들과 어울리던 곳이다. 케이코가 고향 아이슬란드로 돌아오기까지는 19년이 걸렸다.

클레트스비크만은 범고래 케이코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야생 적응 훈련을 받고 야생의 범고래들과 어울리던 곳이다. 케이코가 고향 아이슬란드로 돌아오기까지는 19년이 걸렸다.

클레트스비크(Klettsvik)로 발길을 돌렸다. 최후의 보루다. 헤이마이 항구 옆. 손가락처럼 길게 뻗어 나온 바위가 감싸고 있는 잔잔한 만이다. 케이코는 여기서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고, 쭈뼛거리며 야생의 범고래들을 따라다녔다. 1998년 케이코의 ‘귀환’은 아이슬란드를 넘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었다. 수족관의 고래를 바다에 풀어준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몸길이 6m의 범고래를, 그것도 ‘무비 스타’를, 전 세계 캠페인의 결과로 고향 바다에 되돌려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미공군 수송기 C-17이 미국 오리건에서 헤이마이섬으로 케이코를 실어 날랐고, 일본과 대만의 방송사까지 진을 치고 기다렸다. 임시 휴교일이 선포된 헤이마이의 어린이들은 선착장에서, 언덕 위에서 케이코를 지켜봤다. 케이코가 마지막 항해를 시작한 2002년까지 클레트스비크만은 케이코의 ‘집’이었다.

역시나 클레트스비크 입구에는 안내 표지판 같은 것이 보였다. ‘1973 베스트만 대폭발’. 용암이 뚝뚝 떨어지는 글씨였다. 1973년 1월23일 새벽, 헤이마이섬 북동쪽 바닷속에서 화산이 폭발, 용암이 솟구치면서 헤이마이 마을을 덮쳤다. 마을의 3분의 1이 용암 아래 깔렸으나, 당시 5000여명의 주민은 매달 민방위 훈련을 하듯 화산 대피 훈련이라도 하셨는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단다.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케이코는 어디로? 명색이 케이코의 집인데, 클레트스비크의 표지판도, 이정표도, 브로슈어도 단 한 줄조차 케이코를 언급하지 않았다.

클레트스비크는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새 땅과 맞닿아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은 등산객들이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붉은 산을 올라갔다. 정상에 앉으니 엉덩이가 따끈따끈했다. 50살이 채 되지 않은 산. 용암의 잔열이 아직 남아 있다. 발 아래로 레고 블록으로 지은 것처럼 단정한 헤이마이 마을과 클레트스비크만이 펼쳐졌다. 케이코는 이 마을에서 4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결심이라도 한 듯 5주를 헤엄쳐 노르웨이 서쪽 해안까지 갔다. 그리고 이듬해 거기서 폐렴으로 죽고 만다. 베스트만 제도는 수족관을 제외하면 케이코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다. 그런데 왜 여기엔 케이코의 흔적이 단 한 줄도, 단 한 장의 사진으로도 남아 있지 않을까. 베스트만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해코지라도 한 걸까. 미스터리다. 엉덩이가 뜨거워졌다. 내려갈 시간인가보다.

아이슬란드 고래관광협회는 국제동물복지기금(IFAW)과 함께 고래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이슬란드 고래관광협회는 국제동물복지기금(IFAW)과 함께 고래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포경과 고래 관광의 위태로운 공존

레이캬비크 항구에는 ‘고래 관광’이라고 적힌 붉은 깃발들이 나부꼈다. 고래 관광선들이다. 매년 50만명 이상이 고래를 보러 아이슬란드를 찾는다. 관광대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고래 관광은 매년 10%씩 성장하는 유망 산업이다. 북부의 후사비크가 중심지.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들을 위해 레이캬비크에서도 고래 관광을 나간다. 밍크나 돌고래 같은 작고 날씬한 고래들이 많고, 범고래나 혹등고래도 이따금 보인다.

그런데 고래 관광선 사이로 낯선 검은 배가 눈에 띄었다. ‘흐발루(Hvalur) 9’. 흐발루는 아이슬란드어로 ‘고래’라는 뜻이다. 포경선이었다. 아이슬란드 최대의 포경업체 흐발루 H/F의 포경선 중 하나다. 유럽 고래 관광의 중심지인 이 나라는 유럽에서 드문 포경 국가이기도 하다. 매년 긴수염고래(fin whale)와 밍크고래 150여마리를 잡아 일본으로 고래 고기를 수출한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30년간 몇 차례에 걸쳐 포경 재개를 선언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철회했다 또 선언하기를 반복했다. 200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상업적 포경’을 실시하고 있다.

고래 관광선과 포경선이 나란히 정박된 레이캬비크 항구의 풍경은 고래 관광과 포경이 위태롭게 공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슬란드 고래 관광 업계는 정부의 포경 재개 선언 때마다 “고래 관광을 위협하는 포경을 중단하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여 왔다. 실제로 2003년 노르웨이에서 관광객들이 구경하던 고래를 포경선이 사냥하는 당혹스러운 사건도 있었다. 한편 아이슬란드 국민 70%는 포경에 찬성하고 있다.

인류학자 앤 브라이든은 케이코의 귀환을 다룬 2006년 논문에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케이코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졌다고 쓰고 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케이코의 귀환을 환영하면서도, 이 사건이 ‘포경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만 같아서 맘껏 환영할 수 없었다는 거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베스트만 주민들은 아이슬란드 특유의 잔혹 유머로 케이코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공공연히 “케이코가 늙고 병들기 전에 먹어치워야 한다”는 농담이 돌았고, 만우절에 지역 라디오 방송의 “성난 어부가 생선 다 먹어치우는 케이코를 총으로 쐈다”는 ‘농담 뉴스’가 전파를 탔다. 정말로 케이코가 싫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서구의 ‘반포경’ 캠페인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된 ‘친포경’의 민족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데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베스트만 제도에 케이코의 흔적이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베스트만의 어부들은 내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구 잡느라 너무 바빠 고래 관광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반년 전 폭발한 화산의 화산재를 알알이 담아 잽싸게 관광 기념품으로 만들어 파는 아이슬란드에, 몹시도 매력적인 관광자원인 케이코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케이코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범고래다. 미국의 동물단체들은 2013년 케이코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코, 못다한 이야기(Keiko, The untold story of the Free Willy star)>를 제작, 발표했다. 2010년 시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범고래 틸리컴을 야생으로 돌려보내자는 캠페인의 제목도 ‘프리 틸리컴’이다. 그러나 고향에서 케이코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아이슬란드 포경의 정치학이 케이코의 이야기를 공백으로 비워두게 하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의 역사도, 과거를 쓰는 것은 현재다.

■필자 최명애

[콜 미 이슈마엘 - 최명애의 고래 탐험기] (4) 반기는 사람 반, 외면하는 사람 반…수족관 범고래의 슬픈 귀향

인간과 동물·자연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환경지리학자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에서 한국 생태관광의 통치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앞서 경향신문에서 9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여행·환경 분야를 취재,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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