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괴물의 습격’…더 무서운 건 심해 수온의 상승

이정호 기자

온난화로 10년간 0.02~0.04도 올라

호주선 대산호초 절반 사라져

2016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2000m 지점에서 발견된 심해 생명체. 콩나물 같은 길쭉한 몸에 인간의 코처럼 생긴 물체가 달린 특이한 형태로, ‘아드베나 마그니피카’로 이름 붙여졌다. 최근 심해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두드러져 생태계 변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2016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2000m 지점에서 발견된 심해 생명체. 콩나물 같은 길쭉한 몸에 인간의 코처럼 생긴 물체가 달린 특이한 형태로, ‘아드베나 마그니피카’로 이름 붙여졌다. 최근 심해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두드러져 생태계 변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올해 개봉한 미국의 공상과학영화 <언더워터>에는 심해 기지에서 자원을 채취하던 노동자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 초반 괴생명체에 의해 기지가 크게 파괴되고, 가까스로 생존한 소수의 대원들은 인근 기지로 긴급 대피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을 가진 괴생명체의 추격을 피하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주인공은 다른 대원들을 수면으로 상승하는 탈출선에 태워 보낸 뒤 괴생명체와 함께 자폭한다.

‘심해 생물의 습격’은 다른 많은 오락영화에서도 선호하는 단골 소재다. 심해가 우주만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고, 이 때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든 상상력을 재료로 삼는 것이다. 심해는 대략 수심 200m 이상을 말한다. 햇볕이 거의 닿지 않거나 전혀 없는 환경에서 해수면과는 다른 형태의 생태계가 유지된다. 실제로 2016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수심 2000m에서 발견된 ‘아드베나 마그니피카’라는 생물은 콩나물 끝에 인간의 코가 달린 것과 같은 기이한 형상을 띠고 있다.

■ 후끈 더워지는 심해

별도의 생태계를 이루며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심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괴생명체보다 더 무서운 적,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다. 바로 바다 깊은 곳의 수온이 스멀스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지구물리학연구회보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연구진은 우루과이 앞바다에서 가까운 대서양 심해에서 수온을 측정했다. 1360m, 3535m, 4540m, 4757m 순으로 수심이 점차 깊어지는 4곳을 선택한 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수온 변화를 기록했다. 그랬더니 수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온이 10년간 0.02~0.04도 오른 것이 확인됐다.

이 정도 수온 상승은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이 심해라는 점이다. 연구진을 이끈 미국 해양대기청(NOAA) 소속 크리스토퍼 메이넨 박사는 영국 언론 가디언을 통해 “심해의 엄청난 규모를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의 열 변화”라고 설명했다. 심해는 지구 전체 바닷물의 95%를 차지한다. 수온은 영상 4도 안팎에 머문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특별한 열원 없이 수온이 오른 것이다. 한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아 냉골이 된 빈방이 저절로 따뜻해진 기현상이 생긴 셈인데, 이 같은 환경 변화에 심해 생태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온은 왜 높아졌을까.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지목했다. 바다는 지구가 흡수한 열기의 90%를 머금는 일종의 저장고다. 이 열이 바다 깊숙이까지 전달되며 심해 수온 상승을 불러온 것이다.

2016년 수온 상승 영향으로 알록달록한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한 호주의 대산호초 위를 거북이 헤엄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2016년 수온 상승 영향으로 알록달록한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한 호주의 대산호초 위를 거북이 헤엄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 해수면은 이미 몸살

온난화로 인한 바다 수온 상승은 대기의 열기를 가까이에서 쪼이는 해수면에서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관찰된다. 이달 공개된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를 보면 해수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0.8도 상승했다. 같은 시기 전 지구 지표면의 평균 기온은 1.7도 올라갔다.

해수면의 수온 상승에 직격탄을 맞은 가장 단적인 예가 호주의 ‘대산호초(Great Barrier Reef)’이다. 호주 북동쪽 해안을 따라 발달한 이곳은 면적이 20만7000㎢로, 남한의 2배에 이른다. 그런데 이 대산호초가 1995~2017년 사이에 절반이나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주 호주 연구진이 영국 왕립학회보에 발표했다. 산호초는 크기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줄었고, 특히 2016년과 2017년에 있었던 기록적인 수온 변화가 결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호초 지대는 먹이가 많아 해양생물의 보금자리이지만, 이대로라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 촘촘한 수온 감시 시급

문제는 해수면에서 심해로 번지는 바다의 수온 상승을 감시할 관측망에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30여개국이 참여한 전 지구적 심해 환경 측정망인 ‘아르고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지만 보완이 요구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아르고 프로젝트는 수온 감지기 등이 내장된 중량 25㎏짜리 강철 부유물 4000여개를 전 세계 바닷속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한 지점에 고정돼 있지 않고 떠돌기 때문에 관측 범위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최대 관측 심도가 2000m에 그친다.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의 평균 수심은 3000m를 훌쩍 넘는다. 이번에 4000m 깊이의 수온 변화를 밝혀낸 연구진의 분석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연구진은 “최소한 1년 단위로 심해 수온 변화를 지속해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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