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래관광의 원조…연구·보존 함께하는 ‘이상적 모델’로

최명애 ㅣ 환경지리학자

미국 동부 프로빈스 타운

산·학·지역 뭉친 ‘돌핀 플리트’

30년간 혹등고래 관광·연구

뉴잉글랜드의 프로빈스 타운(Province Town)은 나른한 해변 휴양지다. 동성 커플들이 손을 꼭 잡고 바닷가를 거닐고, 바닷물 맛이 나는 태피 캐러멜을 사 먹는다. 세계적인 여행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이 마을을 몹시도 사랑해 <아웃사이더 예찬>이라는 아름다운 에세이를 썼다. 히피풍의 이 작은 해변 마을은 지금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고래 관광의 ‘원조’ 지역이기도 하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거대한 혹등고래를 배 위에서 바라보는 바로 그 관광이 1970년대에 여기서 시작됐다.

고래관광선 앞에서 꼬리지느러미를 들어올리는 혹등고래. 미국 동부에서 시작된 혹등고래 관광은 관광이란 플랫폼을 이용해 고래 생태 조사와 관광객의 생태 감수성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래관광선 앞에서 꼬리지느러미를 들어올리는 혹등고래. 미국 동부에서 시작된 혹등고래 관광은 관광이란 플랫폼을 이용해 고래 생태 조사와 관광객의 생태 감수성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둣가의 ‘돌핀 플리트(Dolphin Fleet)’ 사무실은 고만고만한 기념품 가게처럼 보였다. 할머니 두 명이 창구에 서서 전화도 받고 표도 판다. 배가 출발하는 선착장에 ‘원조(originator)’ 손팻말을 겸손하게 붙여 놓았는데, 정말로 여기가 그 ‘원조’ 여행사다. 이 업체가 1975년 미국 동부에서 고래 관광을 처음 시작했고, 지금은 이 일대에 10여곳이 있고, 멀게는 보스턴에서도 고래 관광 보트가 뜬다. 여름 성수기는 지난주 노동절로 끝났지만, 10월까지는 하루 4번 배가 뜬다고 했다. 3시간 정도 배를 타고 혹등고래를 찾아다니는 코스다.

■관광을 통한 과학 연구와 환경 교육

상업적 형태의 고래 관광은 1955년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에서 시작됐다. 눈 밝은 지역 장사꾼이 한 사람에 1달러씩을 받고 배를 띄워, 겨울철 해안에 나타나는 귀신고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귀신고래 보트 관광은 1970년대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확대됐고, 이어 미국 동부에서도 고래 보트 관광이 시작됐다. 이번엔 혹등고래였다. 연안에 붙어 조용히 이동하는 귀신고래와 달리, 혹등고래는 덩치가 크고 움직임이 활발하다. 관광에 이만 한 야생동물이 없었다.

마침 고래가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때였다. 돌고래와 인간의 동거를 모색하는 기묘한 실험이 이뤄지고,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꿈꾸며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실어보낸 ‘골든 레코드’에는 인간의 인사말과 함께 고래의 울음소리가 실렸다. 막 닻을 올린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러시아와 일본을 타깃으로 강도 높은 반포경 캠페인을 이어갔다. 고래 관광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 ‘온순하고 지능 높은 야생동물’에게 가한 포경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종식시키고, 종과 종의 새로운 만남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떠올랐다. 바로 그때, 돌핀 플리트가 ‘관광을 통한 과학 연구와 환경 교육’의 깃발을 걸고 고래 관광을 시작한 것이다.

돌핀 플리트 고래관광선에 게시된 고래 관광 가이드라인. 고래 앞길을 막아서는 안되고, 속도를 줄여 고래에게 접근해야 한다.

돌핀 플리트 고래관광선에 게시된 고래 관광 가이드라인. 고래 앞길을 막아서는 안되고, 속도를 줄여 고래에게 접근해야 한다.

배는 낮 12시 정각 부두를 출발했다. 200인승 정도 되어 보이는 복층 유람선. 실망스럽게도, 배 전체가 고래 교육 자료로 도배된 것은 아니었다. 1층 갑판에 걸려 있는 ‘이 지역에 나타나는 고래류’ 패널을 빼면, 고래는 팁통에 그려진 그림이 유일했다. “팁을 줘야 멀미를 안 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그러나 교육은 전시물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항구가 천천히 멀어지자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더니, 장장 25분 동안 멈추지 않고 이 지역에 나타나는 고래의 종류와 생태, 바람직한 고래 관광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프로빈스 타운에서 북동쪽으로 10㎞ 떨어진 스텔웨건 국립해양보호구역(Stellwagen Bank National Marine Sanctuary). 겨울철 카리브해에서 짝을 짓고 새끼를 낳은 혹등고래들이 2400㎞를 거슬러 올라와 여기서 여름을 난다. 대륙붕 지역이어서 크릴과 플랑크톤 같은 먹이가 풍부해 새끼를 기르기에 좋단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2009년 펴낸 ‘고래 관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19개국에서 고래 관광이 이뤄지고, 매년 1300만명이 참여한다. 생태관광 중에서도 고래 관광은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중심의 고래 관광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걸쳐 중남미와 호주, 유럽으로 확대됐다. 형태도 다양해져 보트뿐 아니라 지금은 해변에서, 항공기와 헬리콥터에서, 혹은 수영을 하면서 고래를 관찰한다.

고래 관광이 과열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너무 많은 보트가 한두 마리의 고래를 둘러싸면서 고래의 행동을 교란하고, 성난 고래가 배를 뒤집거나 파도를 일으키면서 전복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제포경위원회(IWC)와 환경단체들은 ‘바람직한 고래 관광’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들이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관광을 통해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고, 관광객의 생태 감수성을 높이겠다는 애초의 목표가 반드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돌핀 플리트는 30여년간 그렇게 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30년 시민 과학의 성과

프로빈스 타운을 빠져나오고도 30분을 더 달려 비로소 스텔웨건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고래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면 된다. 혹등고래가 많지만 긴수염고래와 밍크고래도 보인다고 했다. 그때 수평선 끝에서 분수처럼 물줄기가 솟았다. “11시 방향!”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물 위에 떠오른 타이어 조각 같은 고래등만 보아 왔는데.

“1시 방향!”

사람들이 반대쪽 갑판으로 뛰었다. 이 배와 저 배 사이 두세 개의 물줄기가 보였다. 여름날 어린이대공원의 분수처럼 푸시식, 뿌옇게 솟아오르는 물과 공기. 고래는 유유히 등을 보이며 성큼성큼 배로 다가왔다.

“퍼시와 새끼인 것 같네요. 혹등고래는 꼬리와 등지느러미로 구분해요. 각자 다르게 생겼거든요. 새끼는 태어난 지 6~8개월쯤 되는 것 같네요. 어미 옆에 딱 붙어서 다니죠.”

새끼라니, 저렇게 집채만 한 게 새끼라니. 어른 혹등고래의 몸길이는 18m까지 이른다. 바닷물이 초록빛으로 흔들렸다. 혹등고래의 흰 지느러미 때문에 바닷물이 투명하게 맑은 초록색으로 보인단다. 고래가 움직일 때마다 배가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움직이지 마세요! 갑판에 발 딱 붙이고 기다려요. 잠깐만, 잠깐만.”

고래는 유연하게 몸을 움직여 꼬리를 물 위로 드러냈다가, 배 아래로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혹등고래는 1시간까지 숨을 참을 수 있지만, 보통 8~10분이면 다시 떠오른다. 이윽고 고래가 저 멀리, 11시 방향으로, 다른 배 앞에 나타나 물줄기를 뿜었다. 옆에 앉은 미국인 아주머니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와우.”

스텔웨건에서 한 시간 동안 다섯 마리의 혹등고래를 봤다. 퍼시는 1998년 첫 새끼를 낳았는데, 오늘 데리고 온 애가 세 번째 새끼란다. 살짝 꼬리가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고래는 바이유. 2004년생인데 사고로 꼬리 일부를 잃었다. 페퍼는 1976년부터 계속 보이는 고래다.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마흔은 넘었거니 짐작할 뿐이란다. 고래를 일가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잘 안다 싶었더니, 이 가이드가 IWC 고래관광분과 소속 과학자 캐럴 카슨 박사였다. 1979년부터 30년 넘게 돌핀 플리트의 배를 타고 스텔웨건의 혹등고래를 조사하고 있다. 꼬리와 등지느러미 사진을 찍어 고래 개체를 식별하는데, 이 방법(Photo-identification)으로 이 일대 혹등고래 300여마리를 모두 밝혀냈다. 돌핀 플리트 소속 생태 가이드는 모두 12명. 이 중 카슨 박사 등 2명은 박사급이다. 이들이 밝혀낸 고래는 모두 1만마리가 넘고, 30여편의 학술 논문을 써 냈다.

어떻게 이런 ‘이상적인’ 모델이 가능할까. 돌핀 플리트는 이례적일 정도로 모범적인 산·학·지역 연합 구조를 갖고 있다. 1975년 돌핀 플리트 사장이 지역 생태학자를 가이드로 고용했고, 배를 타고 현장 연구를 하고 싶었던 연구자들이 모였다. 이들 업체와 학자들이 ‘연안연구센터(Centre for Costal Studies)’를 만들었고, 지역 유지들이 재원을 보탰다. 매번 연구자 1명 이상이 돌핀 플리트 관광선에 승선해 조사하고, 가이드하고, 필요하면 강의도 한다. 돌핀 플리트 사무실에서 팔고 있는 기념품 판매액과 고래 관광 수입의 일부가 연구비용으로 돌아간다. 연안연구센터의 이사진은 보스턴의 투자 은행가, 브라운과 코넬 같은 번듯한 대학의 교수, 지역 사업가 등으로 꾸려져 있다. 돌핀 플리트에는 상근 자원봉사자만 11명이 있는데, 대부분 은퇴한 교수거나 중·고교 과학 교사들이다. 1970년대 반전운동과 히피즘, 뉴에이지의 세례를 받은 미국 ‘386’들이, 금융가에서 돈을 벌면서도, 환경 보호 단체의 후원자가 돼 못다 이룬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들이 30년에 걸쳐 스텔웨건의 고래를 조사하고, 결과를 출판하고, 로비와 압력을 행사해 미국 정부를 움직였다. 스텔웨건 일대 1350㎢는 1992년 국립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더 이상의 멸종이 없도록

유난히 파도가 높은 날이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처럼 사정없이 배가 흔들렸고, 멀미가 쏟아졌다. 팁을 안 줘서 그런가보다. 카슨 박사는 멀미도 안 하고 지치지도 않는지 짜랑짜랑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고래가 먹이를 먹는 법, 고래의 일생, 나중엔 이 지역에 보이는 새까지 안내했다. 한국 고래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고래 관광객들도 교육엔 심드렁해했다.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삼삼오오 떠들어댔다. 고래를 보려고 배를 탔고, 일단 봤으니 기분 좋다는 자세다. 관광객이 듣거나 말거나 열정의 박사님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항구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 그가 불쑥 물었다.

“우리가 왜 고래 관광을 해야 할까요?”

몇 명이 어깨를 움찔거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카슨 박사가 말을 이었다. “우리 세대는 고래가 멸종 위기에 놓인 것을 보았고, 포경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러나 멸종 위기의 동물은 아직도 세상 곳곳에 많습니다. 결정은 미래 세대의 몫이죠. 그들이 그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고래 관광의 경험이나 모델이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우리는 자연의 청지기(steward)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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