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산 고래 보러 와서 죽은 고래 먹고 가는 ‘독특한 공존’

최명애 문화생태지리학자

한국의 고래고기

울산 앞바다에 나타난 참돌고래 떼. 인류는 오랜 세월 고래를 사냥하고, 먹고, 보호하고, 자연의 ‘대사’로 감탄해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쪽에선 고래관광을 하고 한쪽에선 고래고기를 즐긴다. 연합뉴스

울산 앞바다에 나타난 참돌고래 떼. 인류는 오랜 세월 고래를 사냥하고, 먹고, 보호하고, 자연의 ‘대사’로 감탄해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쪽에선 고래관광을 하고 한쪽에선 고래고기를 즐긴다. 연합뉴스

고래를 고기로 먹는 곳은 많지 않다.한국인들의 본격적 고래고기 섭취는 식민지 시절부터다. 일본이 값싼 단백질 공급원으로 장려했기 때문이다. 포경 금지로 사라졌던 고래고기 식당은 현재 100곳이 넘는다. 지금은 아무나 못 먹는 ‘귀한 고기’인데…그 많은 식당의 고래는 어디서 올까.

내가 처음 고래고기를 먹어 본 곳은 알래스카도, 아이슬란드도, 울산 장생포도 아니었다. 서울 광화문 뒷골목의 한 횟집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그 집 단골이었는데, 주인이 “귀한 게 들어왔다”며 접시 하나를 슬며시 내밀었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고래고기 수육 몇 점과 간장이었다. “이 드문 것을 어떻게 구하셨나.” “처음 먹는 사람은 이 맛을 모른다.” 고래고기 한 점에 분위기는 발랄하게 달아올랐다. 간장에 찍어 입에 넣은 고기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낯선 냄새와 질감 때문에 뱉고 싶어 하는 혀의 본능과, 그렇게 귀하다는 고기를 먹고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과, 그 거대한 야생동물이 한 점의 차가운 살코기로 놓여 있다는 비참이 뒤섞여 입안에서는 갈등이 벌어졌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고래는 언제부터 ‘12가지 맛이 나는 별미’였을까.

고래를 고기로 먹는 곳은 많지 않다. 고래를 ‘괴수’로 여겨온 서양문화권에서는 대체로 먹지 않았고, 중국과 아시아 대부분 지역도 먹지 않는다. 고래고기는 전통적으로 포경을 해 온 북극권 지역과 카리브해 연안 일부 지역에서 먹어 왔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우리나라 정도가 먹는다. 그러나 우리의 고래고기 취식은, 적은 수의 고래를 잡아 자급자족하는 원주민들의 ‘생계형’ 관습과 다르고, 국가가 나서 고래고기 취식을 독려하는 일본과도 다르다. 여기에는 식민지 유산, 전통문화 논란, 고래고기와 포경의 정치경제학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횟집의 스끼다시로 올라오는 고래고기 한 점은 이 같은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논란이 집약된 ‘골치 아픈’ 고기인 것이다.

■고래고기의 식민지 기원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고래고기를 먹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해안가 마을에서 좌초한 고래가 있으면 고기로 먹었던 것 같긴 하다. 일찍이 <삼국사기>에 “공주 기군 강중에 대어가 나와서 죽었는데, 길이가 백척이고 먹은 자는 모두 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상한 고래를 나눠 먹고 집단 식중독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본격적으로 고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식민지 시절 포경이 전래되면서부터다. 포경 기술과 함께 고래고기 유통을 위해 고래 해체, 삶기 등이 장생포 등의 포경기지에서 실시됐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고래고기도 먹게 됐다.

이때 우리나라의 고래고기 섭취는 포경과 고래고기를 통한 일본의 ‘국가 만들기’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이라고 까마득한 옛날부터 고래고기를 먹은 것은 아니다. 그물로 고래를 잡던 혼슈 남부의 일부 포경 마을들은 17세기 말부터 고래고기를 먹어 왔다. 그러나 고래고기가 전국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일본이 노르웨이식 근대 포경을 도입하고 고래고기 장려 캠페인을 벌이면서부터다. 일본 역사학자 와타나베 히로유키가 쓴 <일본의 포경>을 보면, 포경이 국가 산업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고래고기 시장을 만들어 내야 했고, 러일전쟁, 만주사변 등 잇단 전쟁을 겪은 일본 정부가 고래고기를 값싼 단백질 공급원으로 장려했다. 이 같은 일본의 근대화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피식민국이었던 우리나라의 포경항들에서도 고래고기 취식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고래고기가 보편화된 것은 한국전쟁과 복구 기간이었다. 피란민들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상도 남부지방에서 고래고기는 소와 돼지를 대신하는 값싼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냉장이나 냉동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고래고기는 부패하기 전에 일단 삶아야 했다. 고기는 수육으로도 먹었지만, 적은 양으로 많은 식구가 나눠 먹기 위해 찌개로도 많이 끓여 먹었다. 유일한 포경항이었던 장생포는 경남도 일대에 고래고기를 공급했다. 삶은 고래고기는 부산과 울산으로 보내졌고, 할머니들이 짚으로 묶은 고래고기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1970년대부터는 고래고기를 일본으로 수출했다. 수출용이 내수보다 5~10배 높은 값을 받았기 때문에, 질 좋은 살코기는 일본으로 보내고, 국내에서는 내장이나 기타 부위를 많이 먹게 됐다. 그러나 1986년으로 예정된 상업 포경 모라토리엄이 다가왔고, 고래고기의 전성기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포경 금지를 앞두고 장생포의 포경선들은 양껏 밍크고래를 잡았다. 2013년 고래 관광 현장조사차 만난 한 고래고기 식당 주인은 “25㎏씩 박스에 담아 냉동창고에 보관했다. 5년 장사할 분량이었다. 그러고 나서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12가지 맛이 나는 별미’로 소비되는 지금의 고래고기는 1970년대 삶거나 끓여 서민들에게 단백질로 공급되던 1970년대의 고래고기와 큰 차이가 있다. 사진은 2013년 장생포 고래축제 때 설치된 고래고기 좌판의 모습.

‘12가지 맛이 나는 별미’로 소비되는 지금의 고래고기는 1970년대 삶거나 끓여 서민들에게 단백질로 공급되던 1970년대의 고래고기와 큰 차이가 있다. 사진은 2013년 장생포 고래축제 때 설치된 고래고기 좌판의 모습.

■ ‘귀한 고기’로 상업화 그러나 고래고기는 죽지 않았다. 1986년 4곳이던 장생포의 고래고기 전문 식당은 2013년 20곳, 다른 음식과 함께 고래고기를 파는 곳까지 합치면 35곳으로 늘어났다. 포경 전성기보다 포경이 금지된 지금 고래고기 식당이 더 많은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레저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래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었고, 2009년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이 본격화되면서 고래고기 식당이 ‘필수 관광 코스’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래 관광을 주도하는 울산 남구청은 고래고기를 장생포와 울산의 ‘명물’로 브랜드화하고, 관련 시설들을 정비하고 지원했다. 다소 노후했던 장생포 고래고기 식당의 간판을 통일하고, 들쭉날쭉하던 메뉴와 가격도 표준화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이를 매년 봄 열리는 고래축제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날고기, 수육, 찌개가 대부분이었던 고래고기 요리는 고래 스테이크, 고래 스파게티, 고래 만두, 고래 주먹밥 등으로 다양화됐다.

장생포 고래고기 식당의 모습. 고래 아이콘을 이용해 간판을 재단장했다.

장생포 고래고기 식당의 모습. 고래 아이콘을 이용해 간판을 재단장했다.

지난 20여년간 고래고기는 ‘신화적’인 위치를 갖게 됐다. 분명 바다에서 잡히는데 소고기 맛이 나는 고기다. 고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고,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다. 장생포의 식당들은 “밍크만 쓴다”고 강조한다. 돌고래는 비린내가 나서 못 먹는다는 것이다. 고래의 맛을 고루 즐길 수 있도록 12부위(지방, 껍질, 지느러미, 잇몸, 신장 등)를 샘플러식으로 제공하는 ‘고래 밥상’이 대표 메뉴가 됐다. 독특한 냄새 때문에 아무나 먹지는 못하지만, 맛을 깨우치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고기. 무엇보다도 포경 금지로 공급이 제한돼 있는 고기다. 당연히 비싸고, 가격도 가격이지만 제한된 공급 상황에서 이를 빼돌릴 만큼 ‘힘’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울산을 지역구로 둔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2010년 한 해 동안 고래고기 1000만원어치를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이 같은 수사와 ‘전설’ 속에 고래고기는 ‘귀한 고기’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지역에서는 고래고기 취식을 ‘소중한 전통 문화’로 후손 대대 물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고래고기는 1970년대 포경 전성기의 그 고래고기가 아니다. 대충 삶거나 끓여서 먹던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과,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먹는다는 지금의 화려한 별미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의 거리가 있다. 1970년대엔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조각씩 고래고기를 얻어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고래고기 유통과 공급은 엄연히 상업화된 비즈니스다. 혼획 고래 한 마리가 2000만~6000만원에 거래되고, 울산과 부산은 물론, 서울까지 보내진다. 전국에서 영업 중인 고래고기 식당은 100곳이 넘는다. ‘고래 밥상’ 한 접시는 2인분에 10만원이나 된다.

지금의 고래고기는 더 이상 예전같은, 혹은 알래스카 원주민 마을에서와 같은, 공동체의 자급자족적 경제 행위가 아닌 것이다. 공급이 제한돼 있다지만 고래고기 식당은 일년 내내 영업한다. 언제 어느 때 가도 먹을 수 있다. ‘아무나 못 먹는 고기’라서, 고래 스파게티, 고래 주먹밥처럼 다양한 메뉴가 개발됐고, 가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고래찌개 같은 1만원대 메뉴도 있다. 이 고래고기는 가난하던 시절의 ‘근대 유산’도 아니고, ‘전통 식문화’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귀한 고기’로 브랜드화된 하나의 새로운 먹거리 비즈니스인 것이다.

■ 고래고기 공급을 위한 포경 재개 여기에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고래를 잡을 수 없는데, 저 많은 식당에 어떻게 고래고기가 공급될 수 있을까. 공식적인 고래고기 공급원은 ‘혼획’, 즉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고래다. 우리나라의 밍크고래 혼획량은 연간 70여마리로,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다. 두 나라의 혼획을 합치면 전 세계 대형고래 혼획량의 80%를 차지한다. 이 같은 높은 수치는 이 두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물게 혼획된 고래를 경매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물에 걸린 고래를 며칠만 방치하면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어부가 고래를 살도록 풀어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의도적’ 혼획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불법 포경이나 일본으로부터의 불법 수입도 고래고기가 유통되는 경로 중 하나다.

지역에서는 고래고기를 ‘위생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포경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래는 지방이 많아 빨리 부패하기 때문에, 며칠씩 방치돼 있던 혼획 고래는 선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2012년 우리 정부는 국제포경위원회에 ‘과학적 조사 목적’의 포경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그 배경에는 고래고기 산업 양성화와 위생 상태 개선이라는 지역 여론도 깔려 있었다. 고래고기 산업의 활성화가 고기 공급을 위한 혼획, 불법 포경, 나아가 포경 재개까지 다양한 형태의 포경 논의를 불러온 것이다.

■ 고래 관광과 포경의 공존 장생포는 독특한 곳이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야생에서 고래를 관찰하는 관광이 시작됐고, 돌고래 수족관이 영업하고 있으며, 지역 포경 역사와 유산이 박물관과 ‘고래 문화 마을’이라는 일종의 테마파크를 통해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고래고기도 장생포 고래 관광의 한 요소다. 야생 고래 목격률이 25%로 낮아 대체물이 필요한 상황이 됐고, 그 중 하나가 고래고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지역 축제, 지방 여행이 ‘먹거리 여행’이 되면서, 고래를 ‘보러’ 오는 대신 ‘먹으러’ 오는 관광객도 많다. 관광객 3~4명 중 1명 정도가 고래고기를 맛본다.

장생포 해양공원에 전시된 실물 크기의 귀신고래 모형과 퇴역 포경선 진양 6호. 마치 포경선이 고래를 쫓는 듯한 방향으로 배치된 이 전시물들은 장생포의 고래가 처해 있는 복잡한 정치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생포 해양공원에 전시된 실물 크기의 귀신고래 모형과 퇴역 포경선 진양 6호. 마치 포경선이 고래를 쫓는 듯한 방향으로 배치된 이 전시물들은 장생포의 고래가 처해 있는 복잡한 정치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래 관광선 부두, 고래 박물관, 고래 수족관, 10여곳의 고래고기 식당은 장생포 해양공원에 모여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고래 관련 관광시설이 집적돼 있는 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다. 고래를 야생에서 보는 선박 관광, 감금 시설에 가둔 수족관, 지역 포경사를 낭만적 시선으로 다룬 박물관, 고래를 먹거리로, 나아가 사냥의 대상으로 보는 포경까지 다양한 고래 관련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지난 300여년에 걸쳐 인류가 고래를 사냥하고, 먹고, 보호하고, 자연의 ‘대사’로 감탄해 왔음을 살펴봤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갖게 마련인 상충되면서도 모순되는 행위들은 대체로 ‘시차’를, 시차가 없으면 ‘공간적인 거리’라도 갖고 벌어져 왔다.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포경국에서도, 고래 관광선이 출발하는 부두 앞에 고래고기 식당이 떡하니 즐비한 곳은 드물다. 장생포에서는 고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압축돼, 학교 운동장만 한 해양공원의 현재에 집적돼 있다. 이 독특한 공존을 어떻게 생각하고, 새로운 접점들을 찾아나갈 것인가. 그것이 나와 독자들이 지난 6개월간 세계의 고래를 찾아 먼 여행을 해온 이유일 것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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