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찻집 ‘지대방’…35년 자리 지킨 인사동 ‘터줏대감’

윤대헌 기자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열네 번째 가게는 전통찻집 ‘지대방’이다.

가게 입구에 걸린 ‘지대방’ 현판.

가게 입구에 걸린 ‘지대방’ 현판.

‘지대방’이라….

가게 이름이 참 독특하다. 스님들이 행장을 넣어 다니는 자루의 순우리말인 ‘지대’에 ‘방(房)’이 합쳐졌으니, ‘행장을 놔두는 방’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좀 더 풀어 말하면,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피곤함을 풀고 차(茶)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방쯤 될 듯싶다.

서울 인사동에 자리한 전통찻집 ‘지대방’ 역시 세파에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 들러 쉬어 가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거리인 인사동에서 1982년부터 영업을 하기 시작한 ‘지대방’은 현재 세 번째 주인장인 이종국씨(58)가 2002년부터 15년째 운영 중이다. 인사동거리의 수많은 전통찻집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최초 가게 문을 연 이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지대방’을 처음 오픈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종로구청을 방문해 봤지만,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35년 전부터 가게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액자에 담긴 글씨가 연극 <품바> 창시자인 고 김시라 선생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혹 그분께서 가게를 오픈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지대방’ 입구

‘지대방’ 입구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이씨는 우리나라 전통차에 관심이 많아 전통찻집을 돌아다니는 것이 삶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지대방’ 주인을 알게 됐고, 고령의 나이에 찻집을 운영하는 것이 무리였던 전 사장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았다.

인사동거리 중심부, 아담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지대방’은 35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비좁은 대문으로 들어서자 어둑한 조명 아래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눈에 띈다. 산사(山寺)의 지대방처럼 청아한 새소리·물소리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옛 정취 물씬 풍기는 분위기는 아늑하고 포근하다. 한지 갓을 쓴 전등 아래 손때 묻은 기둥과 탁자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자리마다 늘어진 발은 저마다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35년 된 찻집치고는 인테리어와 소품이 앙증맞다.

‘지대방’ 실내

‘지대방’ 실내

입구와 마주한 정면에는 사랑방이 자리한다. 두 개의 나무탁자가 나란히 놓인 이 방은 산사의 지대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늑하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차 한잔의 여유를 부리기에 제격이다.

‘지대방’은 좁다란 통로를 끼고 두 곳으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과거 한쪽 공간을 주점으로 운영했지만, 이씨가 가게를 인수한 후에는 두 곳 모두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대방’의 대나무통 메뉴판

‘지대방’의 대나무통 메뉴판

‘지대방’에서 즐길 수 있는 차와 음료는 무려 60가지가 넘는다. 녹차, 꽃차, 중국명차, 곡차(술) 등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 대나무통 메뉴에 빼곡하다. 차를 주문하면 다기세트에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이 딸려 나온다. 전통차를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에게는 주인장의 친절한 안내가 따른다.

“사실 차라고 하면 흔히 녹차를 떠올리는데, 차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녹차만 해도 2~11월까지 수확이 이어져 계절별로 차의 종류가 다르고, 여기에 꽃과 버섯, 약초와 과실 등을 활용한 차를 더하면 무궁무진하다.”

차를 따르고 있는 ‘지대방’ 주인장 이종국씨.

차를 따르고 있는 ‘지대방’ 주인장 이종국씨.

차에 대한 이씨의 애착은 남다르다. 가게를 처음 인수할 당시만 해도 이씨는 남의 것을 가져다 팔았다. 당시에는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차밭이 없었고, 찻잎을 덖는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씨는 가게를 인수한 이듬해인 2003년 경남 하동 화개에 자그마한 차밭과 집을 마련해 자신이 직접 찻잎을 덖어 손님에게 내고 있다. 당시 이씨는 차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인근 다원에서 ‘머슴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단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차를 제대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이다.

이씨가 차밭을 하동으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하동은 전남 보성·구례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차 생산지이자 차 시배지다. 하동이 차 시배지가 된 것은 타고난 기후 덕이다. 화개 일대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13.8도, 강수량은 1400㎜다. 땅심이 깊고 자갈이 섞인 하동땅은 차나무가 땅속으로 깊게 뿌리를 내려 온갖 좋은 성분을 빨아들인다. 게다가 섬진강과 지리산에 인접해 있어 안개가 많고, 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것도 좋은 차를 내는 데 한몫을 거든다.

‘지대방’ 벽면을 장식한 낙서들.

‘지대방’ 벽면을 장식한 낙서들.

수확한 찻잎은 ‘덖음’을 통해 말린다. 차맛은 이 덖음 과정이 좌우한다. ‘구증구포(九蒸九曝)’란 말이 있다. 덖고 비비는 과정이 9차례 반복된다는 뜻이다. 이 과정을 거친 차는 수제차 중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보통 찻잎을 덖을 때는 250~350도에서 작업을 한다. 통상 찻잎은 아홉 번을 덖는다고 하는데, 무조건 아홉 번을 덖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 두 번 덖을 때마다 찻잎의 상태를 보고 덖는 횟수를 정하고 있다. 어떤 때는 아홉 번을 덖어도 좋은 차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대방’ 실내

‘지대방’ 실내

‘지대방’에서는 인스턴트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씨가 직접 수확하거나 자연 재배된 차만을 구해 사용한다. 입소문은 빠르다. ‘지대방에서는 전통차를 믿고 즐길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손님층도 두텁다.

“전통차는 사실 이문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중국산을 사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차를 덖는 것 또한 고된 일이라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몸무게가 7~8㎏씩 빠진다. 그래도 나를 믿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기에 아직은 힘든 줄 모른다.”

현각 스님의 저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스님의 저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파란 눈의 스님’으로 불리는 현각 스님도 ‘지대방’의 단골손님 중 한 명이었다. 스님은 한국에 머물 당시 그의 저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이곳에서 집필했다. 한 권의 책을 찻집에서 완성할 정도로 ‘지대방’을 자주 찾았던 스님은 자신의 저서에 ‘이 책의 집필은 서울 인사동 <지대방>이라는 찻집에서 전부 이루어졌다’라는 한 줄의 문구를 남겼다.

‘지대방’의 보물 ‘지대방일기’.

‘지대방’의 보물 ‘지대방일기’.

입구에서 우측 공간으로 들어서면 넓은 창을 등진 책장이 우뚝 서 있다. 책장에는 낡은 공책 수백 권이 빼곡하다. 바로 ‘지대방’의 보물인 ‘지대방일기’다. 오픈 당시부터 지끔껏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이 방명록에 소소한 글을 남겼으니 ‘지대방’ 35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지금도 테이블마다 ‘지대방일기’가 한 권씩 놓여 있다. 책장 맞은편 벽면에는 고 김시라 선생의 친필 액자가 반듯하게 걸려 있다.

‘한 잔의 차와 내 뜻 아는 벗 있으면 하늘 끝에 있어도 외롭지 않네’라는 이씨의 명함에 적힌 글귀처럼 벗을 생각하며 차 한잔의 여유를 부려본다. 모처럼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다.

한편 ‘지대방’이 자리한 인사동거리는 골동품가게와 갤러리, 길거리음식이 늘어서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악기점이 몰려 있는 낙원상가가 유명하고, 길 건너에는 탑골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공원인 탑골공원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외 광화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운현궁 등이 인근에 자리해 궁궐탐방을 나서 볼 만하다.

창덕궁 후원 애련지 | 김문석 기자

창덕궁 후원 애련지 | 김문석 기자

‘지대방’은?

- 개업연도 : 1982년

- 주소 : 종로구 인사동길 33

- 대표재화 금액 : 전통차 4500~9000원, 전통과자 5000원

- 체험 요소 : 전통차를 직접 우려 마실 수 있고 구매도 가능하다.

- 영업 시간 : 오전 10시30분~오후 12시

- 주변 관광지 : 인사동거리, 낙원상가, 탑골공원, 광화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운현궁, 아름다운차박물관, 목인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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