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 해결사’ 소금이 ‘금’이 되어버렸다

이유진 기자
때 아닌 소금 품절 대란에 소금의 존재감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소금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경향신문DB

때 아닌 소금 품절 대란에 소금의 존재감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소금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경향신문DB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간’이다. 심영순 요리연구가는 “맹물에 소금간만 딱 맞아도 맛있는 음식이 된다”고 했다. 식자재 본연의 향과 맛을 깨우는 조미료가 소금인데, 이 소금이 요즘 품절 대란을 맞았다. 대형상점은 ‘1인 1포대’로 구매량을 제한했으며 그마저도 못 사는 지경이 되었다. “하다 하다 이제 소금까지 ‘오픈런’ 해야 하나”라며 소비자의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소금이 ‘금’이 됐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금을 ‘하늘에서 온 선물’이라며 귀하게 여겼다. 고대 로마에서는 한때 소금을 화폐로 사용했다. 월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는 라틴어 ‘소금(Sal)을 지급하다’라는 뜻의 살라리움(Salarium)에서 유래됐다. 그리스나 로마만큼은 아니라 해도 국내 소금의 가치가 금값처럼 오르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이슈가 터지기 전까지 천일염 20㎏ 1포대가 2만5000원(태평염전 온라인 쇼핑몰 가격)이었던 것이 지난 14일에는 3만9000원,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현재 5만원, 6만원대로 오른 상태다. 그마저도 ‘판매 중지’된 곳이 대부분이다. 지난 14일 간신히 ‘소금 피케팅’에 성공한 주부 A씨도 “구매하자마자 ‘배송지연’ 알림이 떴다”며 “6월 말이 되어야 소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면서도 소금 확보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평염전 측은 “주문이 밀려 일시 정지시켜놓은 상태다. 지금 팔고 있는 것은 작년 생산 소금으로 물량이 다한 것이 아니므로 곧 판매를 재개할 것”이라면서도 “5만원대로 책정된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전남 신안군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B씨는 “가족 생계가 달린 문제라 소금 대란 체감은 더욱 크다”고 말한다. 평년 소금 주문량보다 3~4배 더 주문 전화가 쇄도하고 있으며 주문이 밀려 주민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안이 섬이다 보니 택배 물류 차량이 실어 나르는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금 가격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당장 가격이 오르는 것은 가계에 보탬이 되겠지만 오염수가 터지면 소금 소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 뻔하다”며 “염전뿐 아니라 대부분 바다 일로 생활하는 신안 주민들은 오염수 방류 이후 생계 문제로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올여름은 평년보다 수온이 2도 이상 높은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으로 비 예보가 많아 소금 물량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더해진다. 국내 염전은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소금을 생산하지만 그 사이 6월 말에서 7월까지 장마 기간이 껴 있어 1년에 단 4개월만 집중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시기가 다가오면서 대형마트에는 소금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제공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시기가 다가오면서 대형마트에는 소금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제공

굳이 사놓지 않는다 vs 안전을 위해 쟁인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하여 투입한 냉각수와 유입된 지하수가 합쳐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로 벌어질 바다 먹거리 안전성 논란은 학계와 정부 등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며 정치적 이슈로 대두됐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명예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오염수는 방류 이후 해류를 따라 짧게는 남중국, 동중국해를 거쳐 7개월, 길게는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태평양, 대서양을 지나 4~5년 만에 우리 바다로 들어온다. 또한 서 교수는 일본이 안전하다고 제시한 오염수 표본량의 대표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는 “137만t의 1%인 1만t, 1000만ℓ는 샘플로 봐야 대표성이 있다”며 “그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에서 잠깐 떼서 본 것으로 안전하다고 하는 건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의심이 들게 하는 행위로 정확한 샘플 검사를 할 때까지 방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높아지자 관련 일일 브리핑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일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은 “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면 소금이 오염된다’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괴담성 정보에 현혹되는 일이 없으시기를 당부드린다”며 “우리 천일염은 지금도 안전하고 앞으로도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금 구입을 놓고 소비자들의 의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어차피 간장, 고추장에도 소금이 들어가고, 외식을 하면 피할 수 없으니 굳이 사놓지 않는다”는 무기력파와 “아이들이 먹는 집밥이라도 안전하게 줘야 하기 때문에 소금에 이어 간장까지 쟁였다”는 적극적인 행동파다.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의견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철 산화로 인한 특유의 빛깔로 인해 ‘핑크솔트’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암염.

철 산화로 인한 특유의 빛깔로 인해 ‘핑크솔트’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암염.

소금의 세계는 깊다

오염수가 해양 먹거리에 미치는 악영향 유무를 떠나서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만으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 바다 이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관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소금의 진실과 건강>을 쓴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전 원장 조기성 교수는 “소금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같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 5대 문명 발상지의 공통점 중 하나가 고온 건조한 사막에 가까운 곳이란 것”이라며 “이는 인류에게 물과 식료 다음으로 소금이 필요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바닷물을 솥에 넣어 끓인 자염, 갯벌에서 얻은 갯벌 천일염 등 해양 소금을 제외한 내륙의 소금은 암염(돌소금), 정염(지하수 속 소금), 호수염으로 나뉜다. 이들은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육지로 바뀌며 소금 호수가 되거나 다시 지각변동으로 소금 결정이 지층으로 매몰되면서 형성된 것들이다. 암염 중 일부는 지각변동을 거치는 동안 발생한 열 때문에 흰색이 아닌 소금에 함유된 미네랄 특유의 회색, 갈색, 적색, 청색 등을 띤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이름 자체가 ‘소금의 성’이라는 뜻을 지니며, 소금으로 시작된 도시다. 고대부터 암염 광산을 구축하고 소금 교역지로 융성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잘츠카머구트 지역 중심 도시 할슈타트는 기원전 1000년부터 암염을 개발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 광산이 있다. 현재는 천연 암염 외에 암염을 정제한 후 요오드, 불소 등 여러 가지 미네랄을 첨가하거나 로즈메리, 마늘, 양파 등을 가미한 가공 소금도 판매하고 있다.

‘핑크 솔트’라고 잘 알려진 히말라야 암염은 철, 브로민, 인, 규소, 망가니즈 등 미네랄이 여느 암염보다 많이 함유돼 있다. 이 중 철이 유난히 많아 철이 산화된 분홍색을 띤다. 히말라야 암염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파키스탄 케우라 지방의 소금 광산은 연간 약 35만t의 핑크 솔트를 생산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흑해를 비롯한 바다 사이에 돌출된 지형이라 융기로 발생한 소금 호수가 많다. 이는 미네랄이 풍부한 소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다. 관광명소인 투즈골루 호수는 튀르키예에서 두 번째로 큰 소금 호수로 전국 소금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에는 핑크빛 호수로 관광객을 끄는 이곳은 기온이 높은 7~8월에는 얕은 호수의 물이 죄다 증발해 하얀 소금밭만 남는다.

천일염 품귀 현상으로 관련주가 강세를 보인 가운데 지난주 한 죽염업체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조 교수는 천일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우리나라 고유의 죽염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죽염은 갯벌 천일염을 대나무에 넣고 황토와 함께 섭씨 1300도 이상에서 구워낸 것이다.

그는 “과거 천일염 생산과정에서 비닐 같은 불순물이 섞일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실험 결과 1300도 이상 구워내면 융점을 넘어 불순물이 증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현재 문제가 되는 세슘이나 삼중수소가 소금에 영향을 미쳤다면 죽염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어떻게 변화할지도 실험을 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슘의 방류 처리 기술 중 1000도 이상 끓여 수증기로 증발시키는 방법이 실용화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안전한 소금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소금 잘 먹는 법, 오래 두고 먹는 법 따로 있다.

소금 잘 먹는 법, 오래 두고 먹는 법 따로 있다.

귀한 소금, 보다 잘 먹는 법

요리사이자 칼럼니스트인 사민 노스랏은 저서 <소금 지방 산 열>에서 식재료에 따라 소금을 뿌리는 타이밍이 다르다고 말한다. 소금의 삼투압 현상 때문에 그렇다. 육류의 경우 조리하기 전에 소금을 뿌려놓으면 소금과 단백질이 만나 융해되면서 더 부드러워지고 물을 흡수해 수분(육즙)을 더욱 잘 유지하게 한다. 그래서 밀도와 근육 함량이 높은 고기일수록 굽기 전에 소금을 미리 뿌려놓는 것이 좋다.

단백질 구조가 약한 생선이나 조개류는 너무 일찍 소금을 뿌리면 딱딱해지고 식감이 질겨진다. 생선은 조리하기 15분 전에 소금을 뿌린다. 나물 요리가 많은 한식에서는 채소를 데칠 때 으레 물에 소금을 넣는데, 소금으로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금을 뿌린 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계속 빠져나와 질겨질 수 있다. 버섯은 수분이 많은 식자재라 팬에서 익히다 조리 막바지 갈색을 띠기 시작할 때 소금을 넣는 것이 좋다.

소금이 귀해진 만큼 오래 먹는 방법도 주목해볼 만하다. 통상 소금의 소비기한은 약 5년으로 보고 있다. 대용량의 소금을 최대한 변질 없이 보관할 방법은 무엇일까? 윤희주 영양사는 가정에서 많은 소금을 보관할 때는 간수를 뺀 후 옹기 항아리에 담는 것을 추천한다. 간수를 빼는 이유는 수분기 없이 더 보송보송해져 오래 보관하기 좋으며, 소금의 쓴맛이 없어지고 단맛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간수를 빼는 방법은 간단하다. 비닐을 벗긴 소금 포대 밑에 젓가락으로 5~6곳 구멍을 낸 후, 화분 받침대나 플라스틱 바구니를 거꾸로 뒤집어놓거나 벽돌 2장을 놓고 그 위에 올려두면 약 일주일간 간수가 빠져나온다. 바닥에는 간수를 흡수시킬 신문지 등 종이를 깔아놓으면 된다.

간수를 뺀 소금은 항아리에 담아 집 안 혹은 외부에 직사광선이 비추지 않는 서늘하고 시원한 곳에 보관한다. 소금은 적당량씩 덜어 따로 담아 쓰고, 습기로 덩어리가 졌다면 먹을 만큼 전자레인지 용기에 넣어 20~30초 돌리거나 프라이팬에 볶아 습기를 날려 사용한다. 이때 팬은 코팅팬보다는 무쇠팬을 이용해 볶는 것이 불순물 없는 더 건강한 소금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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