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기 아쉬움 몰아내고, 들숨 가득 채운 짠 공기

김진영 MD

(120) 해남 읍내장·목포 새벽시장

연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해남 시장의 새벽 풍경. 줄어드는 인구만큼 장의 규모는 줄어도 다채로운 수산물로 가득한 어물전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연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해남 시장의 새벽 풍경. 줄어드는 인구만큼 장의 규모는 줄어도 다채로운 수산물로 가득한 어물전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119개 시장, 지난 4년 동안 다닌 시장의 숫자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다닌 듯싶다. 경상도의 양산과 밀양, 충북의 진천, 세종시 그리고 충남의 아산과 청양, 공주시와 전남 장성이 남았다. 경상북도 내륙은 뺐다. 구미와 예천, 영주, 영천도 남아있다. 시장을 다녀보면 내륙의 겨울 시장은 재미가 없다. 내륙에 있는 시장은 갈 수 있는 시기가 한정적이다. 주로 짧게 끝나는 봄, 가을만 가능하다. 그때를 빼놓고는 바닷가 시장보다 볼거리가 적다. 내륙에 있는 시장은 미루고 미뤘다. 더 재미난 시장이 있으니 거기 먼저 갔었다.

2022년 찾았던 목포 새벽시장. 대설 주의보로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아 아무도 없는 시장에서 망연자실했다(왼쪽 사진). 다시 찾은 목포 새벽시장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서남해의 수산물이 모이는 목포답게 어물전도 활기찼다.

2022년 찾았던 목포 새벽시장. 대설 주의보로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아 아무도 없는 시장에서 망연자실했다(왼쪽 사진). 다시 찾은 목포 새벽시장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서남해의 수산물이 모이는 목포답게 어물전도 활기찼다.

119개 시장 중에서 아쉬움이 남는 시장이 몇 곳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장이 서지 않았던 남해 오일장(2, 7장). 다른 지역은 장이 섰지만 유독 그 시기에는 경상도만 장이 서지 않았다. 장날에 맞춰 장은 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삼삼오오 팔 물건을 펼친 이들 덕분에 겨우 취재를 했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재미난 취재를 했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19가 남해의 시장을 방해했다면 생각지 못했던 눈이 방해한 경우도 있었다. 눈이 와도 흩날리는 수준인, 겨울에도 따뜻한 장흥이 그랬다. 이웃한 목포 또한 그랬다. 갔던 날 저녁에 대설 주의보가 내려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시장에서 망연자실했던 순간의 서늘함이 떠오른다. 난감 그 자체였다. 폭설이든 코로나19든 외적인 영향으로 인해 취재를 못했던 것과 달리 해남군은 필자의 무지로 취재가 어긋난 경우다.

연재를 시작하고 두 번째로 갔던 곳이 해남 오일장이었다. 오일장에 대한 막연한 생각, 면 단위나 군 단위나 같으리라는 것이었다. 초보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막연함을 가지고 새벽을 달려 해남군 초입인 화원면에 당도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썰렁했다. 장터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 소멸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와 닿았다. 사람이 없으니 장이 서지 않았다. 다음날 근처 다른 면의 오일장을 부랴부랴 갔다. 그나마 전날 본 화원장이 양반이었다. 갔던 곳은 아예 장이 자취를 감췄다. 그만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읍내의 상설시장과 해남의 먹거리 위주로 글을 썼던 기억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연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던, 묵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겨울 초입에 해남을 다녀왔다. 올라오는 길에 목포 새벽시장에 들르기도 했다. ‘멋지고 맛찐’ 두 시장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오밀조밀 향 좋은 ‘투석식 굴’

오밀조밀 향 좋은 ‘투석식 굴’

해남은 읍내에서 열리는 장(1, 6장)이 가장 크다. 규모가 그보다 작아도 우수영 오일장(4, 9장)과 남창장(2, 7장) 또한 볼만한 장터로 알려졌다. 해남의 장터는 재밌다. 전라도의 다른 장터와 비교해봐도 수산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양도 양이지만 종류가 많고 가격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장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는 아침 8시가 지나면서 어물전에 생선이 도착한다. 경매받아서 온 것부터 해서 마을 앞 바닷가에 설치한 그물 털어서 온 듯한 생선까지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수산물이 좌판에 깔리기 시작한다. 값은 도회지에서 상상하기 힘든 가격이다. 커다란 매운탕용 참돔 몇 마리가 2만원이면 된다. 1m 되는 삼치도 단돈 5만원이다. 낙지 파는 곳도 많았다. 낙지도 좋고 삼치도 좋지만 내 선택은 꽃게였다. 막 판을 벌인 꽃게 파는 곳에서 가격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가격이 아니었다. “지금 뭐하고 다니셔? 살 거 아니면 가격 묻지 마슈. 이따가 와서 사진 찍고 물어보면 좋겠는데. 아직 개시를 못했응께.” “아… 살게요.” “진짜요? 그럼 내가 개시 기념으로 kg에 2만원 줄게요.”

4년간 돌아다닌 119개 시장 가운데
안 열렸던 목포·해남 장 다시 찾아

바다의 계절은 육지보다 늦게 변해
지금이 가을 제철 수산물 맛볼 때
꽃게·대하·농어 등 저렴하게 판매
투석식 굴, 작지만 씹는 맛 더 좋아

전어 7마리에 가오리까지 ‘덤’으로
무뚝뚝한 말투 뒤 푸짐한 시장 인심

목포 새벽시장의 대하

목포 새벽시장의 대하

11월 말을 사람들은 가을이 아닌 겨울로 여긴다. 두툼한 옷을 꺼내 입기에 겨울로 안다. 바다의 계절은 그보다는 한 발자국 뒤에서 바뀐다. 즉, 바다는 이제야 가을이라는 이야기다. 겨울에 맛있는 수산물에 이제 겨우 맛이 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가을에 맛있다고 하는 것들은 지금이 제철이다. 바다에서 가을을 대표하는 것들이 맛으로 빛나는 시기가 육지의 겨울 초입이다. 여름에 산란을 마친 꽃게는 겨울나기를 위해 살을 찌운다. 3kg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 얼굴이 환해진다. 꽃게 사고 몇 발자국 걸으니 좌판에 농어, 장대, 전어 등이 보였다. 개중 커다란 농어 가격을 물었다. 꽃게 살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산다고 하니 그제야 가격을 알려 준다. 2만원이다. 안 살 이유가 없다. 횟감으로 쓸 정도로 선도가 좋았다. 횟감보다는 손질해서 전을 부치거나 구우면 이보다 맛난 것이 없다. 지금은 광어나 농어 등이 맛있다. 농어를 사면서 보니 대하가 몇 마리 한쪽에 모여 있었다. 그 또한 가격을 물으니 다 해서 2만원만 달라고 한다. 대충 숫자를 세보니 열 마리 정도다. 자연산 대하 열 마리 2만원이면 괜찮은 가격이다. 11월 대하는 향이나 맛이 최고다. 농어와 대하까지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그때부터 덤을 주기 시작했다. 진짜 가을 전어 일곱 마리와 노란 가오리 한 마리를 더한다. 시장의 인심이 이런 게 아닐까 한다.

회도 전도 좋다 ‘신선한 농어’

회도 전도 좋다 ‘신선한 농어’

시장은 생새우, 황석어와 조기 새끼 파는 곳이 많았다. 김장에 쓸 재료다. 김칫소를 만들 때 새우나 황석어를 갈아서 넣는다고 한다. 전라도 김치의 맛은 젓갈도 한몫하지만 갈아서 넣는 생선 또한 무시 못한다. 얼추 시장 구경 끝내고 갈 채비를 하는데 작은 대야 하나만 앞에 두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작은 굴이다. 시장에는 통영에서 온 석화 더미도 보였다. 통영의 굴은 수하식 굴이다. 수하식은 물속에서 계속 먹이 활동을 하도록 해서 굴을 키운다. 먹이 활동을 쉼 없이 하니 몸집이 크다. 반면에 투석식 굴은 물이 빠지면 먹이 활동을 잠시 쉰다. 알이 수하식에 비해 작다. 작은 대신 향과 맛은 그 이상을 지니고 있다. 한 종지 가격을 물으니 “만 원이여”, 지난주 처가 김장 때 굴 좀 사 오라는 집사람 요청을 거절했던 기억이 났다. 김장에 굴 보쌈이 좋긴 하지만 아직은 맛이 없을 때였다. 한 종지 1만원, 싸다면 싸고 비싸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비싼 가격이다. 작은 굴 하나 캐내기 위해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한 가격이다. 굴을 받기 위해 봉지를 벌리고 있는데 작은 굴 하나가 손 위로 떨어졌다. 두 번째 종지를 담는 순간을 노려 굴을 맛봤다. 바다 향이 잠시 돌았다. 굴을 깨무니 그제야 가진 향과 맛을 내준다. 제철의 그 맛과 향은 아니어도 은은한 단맛이 좋았다.

김장용 새우

김장용 새우

올라오는 길에 목포 새벽시장에 들렀다. 대설주의보로 인해 시장 구경을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해 갔다. 시장은 그때와 달리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수산물이 깔린 어물전은 해남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서남해의 수산물이 모이는 곳이 목포다. 해남보다 다양한 수산물이 있다. 개중에서 눈에 띈 열기, 실제 이름은 불볼락이다. 매운탕 재료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한 바구니 2만원이다. 열기를 담는데 선도 좋은 대하가 눈에 띄었다. 가격을 물으니 한 상자 6만원이라고 한다. 얼추 2~3kg 되는 양이다. 해남이었으면 덤이 있을 것인데 목포는 없다. 도회지 시장은 오일장처럼 잔정이 없는 편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다른 상설시장에 들렀다. 새벽시장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시장을 아케이드 만든다고 다 그리로 몰리지 않는다. 시장은 사람, 돈, 상품이 살아 움직이는 곳임을 새벽시장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다음 칼럼이 연재의 마지막이다. 119개 시장 중에서 첫손으로 꼽는 곳을 다시 가볼 생각이다. 그 편으로 연재의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찬 공기 아쉬움 몰아내고, 들숨 가득 채운 짠 공기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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