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마라로제 떡볶이’도 한식입니까?

박경은 선임기자
그렇다면 ‘마라로제 떡볶이’도 한식입니까?

국가별 음식 ‘기능적 이미지’ 포지셔닝 분석

한식 : 영양을 골고루 갖춘, 고기·생선 위주 고단백질, 채소 위주
중국·멕시코 음식 : 가격이 합리적, 구입이 편리한, 풍미가 있는, 고염식
프랑스 음식 : 가격이 비싼, 디저트가 맛있는
일본 음식 : 다이어트식, 열량이 적음, 기름기가 적음, 저염식
*한식진흥원 해외한식 소비자 조사 2023년

K푸드는 ‘한식’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식진흥법은 제2조에서 한식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어온 식재료 또는 그와 유사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조리 방법 또는 그와 유사한 조리 방법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음식과 그 음식과 관련된 유형·무형의 자원·활동 및 음식문화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한식은 보통 한복 입은 나이 지긋한 요리사가 옛 조리서에 근거해 연구하는 음식, 즉 궁중음식이나 종갓집의 내림 음식 혹은 한정식집이나 백반집으로 분류되는 식당에서 주로 만나는 음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 이것만이 한식인가. 이 시대 한국 사람들이 두루 먹는 모든 먹거리를 한식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까.

2023년 한식진흥원이 국내 한식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양념치킨이 한식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7.2%로 절반에 가까웠다. 반면 프라이드치킨이 한식이라고 답한 비율은 31.3%에 그쳤다. 양념치킨은 고추장이라는 한식 재료가 가미되어서,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의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이 원조라는 생각에서 이런 답변 차이가 나왔을 수도 있다. 향·소스·첨가물·조리 방식이 다른 오늘날의 수많은 한국식 치킨 버전을 외국인들은 한식 범주로 보고 있다. 짜장면도 다를 바 없다. 중국에서 유래했으나 짜장면은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만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그래도 짜장면을 한식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은 35%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럼 프랑스 요리를 전공한 요리사가 프랑스 음식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주요 소스로 사용해 만들어낸 건 한식인가, 프랑스 요리인가. 김칫국물 육수에 베이컨·오크라 같은 외국 식재료를 넣어 끓인 찌개는 어떤가. 전 세계의 식재료와 조리 방식이 섞이고 다양한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경계가 모호한 ‘퓨전’식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마라탕은 중국 쓰촨 음식이지만
마라로제 찜닭 등 응용, 한국서 유행
전 세계 식재료와 조리 방식 섞이며
경계 모호한 ‘퓨전’식 늘어
“한식, 이제 정의하기 어려워져”

1020세대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마라탕을 한식 범주로 보는 이는 찾기 힘들다. 마라탕은 중국 쓰촨 지방에서 유래한 매운 음식이다. 동물성 기름과 강한 향신료·양념을 넣어 조리하는 쓰촨 현지와 국내에서 즐겨 먹는 마라탕은 좀 다르다. 사골국물을 육수로 사용하면서 국밥이 변형된 형태에 가깝다. 관심은 앞으로의 변화와 진화다. 몇년째 이어지고 있는 인기를 감안했을 때, 우리가 즐겨 먹는 식재료를 더 결합한다면 한국식 치킨처럼 한국식 마라탕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배민트렌드 2023’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외식업계를 강타한 가장 트렌디한 키워드는 ‘마라로제’였다. 알싸하게 매운 ‘마라’의 맛과 토마토소스와 생크림을 섞은 ‘로제 소스’가 결합된 마라로제 떡볶이·마라로제 찜닭은 수많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마라로제 떡볶이’도 한식입니까?

2021년 한식진흥원 조사에서 전형적인 미국 음식인 버거 안에 한국식 불고기를 패티로 넣은 ‘불고기버거’를 한식이라고 생각한 이는 21.9%에 그쳤다. 2년 뒤인 2023년 조사에서 불고기버거를 한식이라고 생각한 이는 24.3%로 조금 늘었다. 짜장면은 같은 기간 각각 35%, 34.9%로 거의 비슷했다. 한국식 핫도그에 대해서는 2021년 조사에서 51.2%가 한식이라고 응답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47.4%로 소폭 하락했다. 대중의 인식도 계속 바뀌고 있는 셈이다.

특정 음식을 두고 한식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은 관련 업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김지형 한양여대 외식산업과 교수는 “한식은 학술적 논쟁뿐 아니라 식품 수출이나 외식산업 진흥 같은 정부부처 관할·지원 사업 기준도 제각각이다 보니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면서 “역동적으로 생겨나는 무언가를 그룹화하고 규정짓기보다는 확장성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미있는 것은 미식 문화의 선진국인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이것이 프렌치냐’라는 논쟁이 종종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동서고금에서 음식에 관한 주도권 논쟁은 끊이질 않았고 원조를 벗어나 변화하고 재창조된 사례도 많다.

엄동설한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세계에서 거의 한국 사람만이 독특하게 즐기는 커피 음용 방식이다. 혹시 아나. 20, 30년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식으로 인정하게 될 날이 올지.

한식진흥원 2023 대국민 한식 인식 조사 (단위 %)

한식진흥원 2023 대국민 한식 인식 조사 (단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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