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과 사육 그 사이 ‘동물원 억류 동물’

김정호
친구 제니를 잃은 하니, 궁여지책으로 종은 다르지만 같은 말속인 미니말 동백이와 향미를 데려와 합사했다. 청주동물원 제공

친구 제니를 잃은 하니, 궁여지책으로 종은 다르지만 같은 말속인 미니말 동백이와 향미를 데려와 합사했다. 청주동물원 제공

두 마리의 암컷 얼룩말이 있었다. 한 마리는 동물원에 오래 산 나이 든 제니였고 한 마리는 광주에서 온 어린 하니였다. 어린 하니는 제니가 어딜 가든 따라다녔고 제니도 싫지 않아 보였다. 제니가 대퇴골 골절로 폐사하자 혼자 남은 하니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얼룩말 하니는 아프리카가 고향이다. 얼룩말은 육식동물의 주요 먹잇감이다. 암컷 사자는 주로 나이 든 수컷을, 하이에나는 새끼 등 약한 개체를 목표로 한다. 무리 중 한 마리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결국 한 마리의 희생으로 무리는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번다. 냉혹하지만 그것이 야생의 삶이다. 포식자는 사냥도구로 긴 송곳니와 갈고리 같은 발톱을 지녔고 피식자도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진화시켰다. 얼룩말이 온종일 풀을 뜯다가 자신의 엉덩이 방향에서 달려오는 사자를 미리 보고 달아날 수 있는 것도 머리 옆에 붙은 눈과 넓은 시야를 주는 동공덕이다. 동물원에서 사자가 갑자기 나타날 리 없지만 하니의 불안함은 오랜 세월 무리를 이루고 살았던 초식동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얼룩말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초식동물이다. 새 동물사로 옮겨져 홀로 있던 하니가 불안감에 탈출했다. 제 발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놓으니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동물원 동물들의 탈출은 의지 아닌 우연의 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얼룩말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초식동물이다. 새 동물사로 옮겨져 홀로 있던 하니가 불안감에 탈출했다. 제 발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놓으니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동물원 동물들의 탈출은 의지 아닌 우연의 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몇 년 전부터 청주동물원은 우리 기후에 안 맞는 외국동물은 자연 감소시키고 그 자리에 장애를 입은 토종 야생동물을 데려오고 있다. 외국동물인 얼룩말을 더 이상 데려오지 않게 되자 하니의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종은 다르지만 같은 말속인 미니말 동백이와 향미를 데려와 하니와 합사했다. 그 후 하니는 안정을 찾았다. 그 무렵 말들이 좀 더 뛰어다닐 수 있는 동물사를 신축했고 미니말에 앞서 얼룩말 하니를 먼저 새로운 동물사로 옮겼다. 며칠 후 이른 아침 하니는 울타리를 넘어 미니말들이 있는 기존 마사 주변을 흥분한 채 뛰어다녔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마취총을 준비해 놓았다. 우선 제 발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 두었다. 하니는 주변을 돌다 열린 문을 발견하고 단숨에 뛰어 들어갔다. 미니말들은 며칠 안 보였던 하니를 한두 번 쳐다볼 뿐 별일 아닌 듯 건초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작년 서울의 한 동물원에서 살았던 얼룩말 세로가 동물원 밖 도심을 3시간 동안 활보하고 다녀 큰 화제가 됐었다. 세로의 행동은 하니와는 달랐다. 하니는 암컷이고 세로는 성 성숙을 막 지난 수컷 얼룩말이다. 야생의 본성이라면 성 성숙한 얼룩말 암컷은 무리에 남는 정주성을 보이고 수컷은 무리를 떠나는 모험심을 보인다.

동물원 직원들은 사내 동물들이 그곳에 익숙해져 나오지 않는 것이지 나올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얼룩말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동물원 안에 있다면 몰아서 들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밖이라면 마취를 해서 데려올 수밖에 없다. 원거리 동물을 근육마취 시키려면 날아가 근육에 꽂히는 ‘주사기 총’을 사용한다. 이때 주사기에 넣는 마취제 용량이 적어야 멀리 쏠 수 있다. 국내에는 대형 동물을 한 번에 쓰러뜨릴 약력이 높은 마취제가 없다. 소수의 동물원 수의사에게만 필요한 위험한 마약성 약물은 수입허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심을 나온 세로가 일곱 발이나 마취주사기를 맞고 트럭에 실려 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광진구의 한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배달노동자와 마주친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지난해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광진구의 한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배달노동자와 마주친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얼룩말 하니와 세로는 초식동물이라서 몰아서 넣거나 여러 번의 마취 기회가 있지만 맹수들은 다르다. 2018년 동물원의 퓨마 호롱이 사건과 2023년 농장 사자 사순이 사건을 신문 기사와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해본다.

호롱이는 우연히 열린 문으로 나왔다. 기왕 나온 호롱이는 동물원을 돌아다녔지만 태어나 동물사에만 살았기에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소식을 접한 수의사는 마취총을 가지고 호롱이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호롱이도 자신을 대하는 분위기가 평소와 달라 겁을 먹고 움츠려있었고 수의사는 주사기 총을 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아픈 주사기를 맞은 호롱이는 사람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마취제가 근육으로 퍼지는 시간은 통상 5~15분이다. 그러나 흥분한 동물의 교감신경은 자극되고 각성효과가 나타나 마취 유도 시간이 길어졌다. 마취 실패로 판단한 경찰과 소방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맹수로 분류되는 호롱이의 사살을 결정했다.

경북 고령 농장의 좁은 케이지에 평생 갇혀 지낸 나이 든 사자 사순이는 우리 밖을 벗어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사순이는 국제 멸종위기종이지만 국내법이 적용되기 전 들여온 사자라 관리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농장 주변에 맹수류 마취 경험이 있는 수의사도 없어 마취는 생략되고, 위험해 보이는 대형맹수 사순이는 사살됐다.

호롱이와 사순이의 공통점은 동물원과 농장 같은 인공시설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억류 동물(Captive animal)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야생동물을 길들이려 했고 성공한 결과가 가축이다. 억류 동물은 가축과 야생동물의 사이 어느 지점에 있지만 결국 가축화에 실패한 야생동물이다. 이런 동물을 열악한 인공환경에 가두다 보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갇혀있는 맹수가 동물사나 케이지에서 나오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발생했을 때의 현실적인 대응 방법 마련이 필요하다. 대형고양잇과인 호랑이나 사자의 탈출을 가정해 대응 방안을 생각한다면, 우선 탈출한 동물의 종과 성향을 알아야 한다. 홀로 사는 호랑이는 조심성이 많고 무리를 이루는 사자는 좀 더 개방적이다. 또 어미가 키운 개체보다 인공 포육한 개체는 사람과 친밀하다. 과거에는 사람이 기른 호랑이와 사자는 사육사가 들어가 같이 놀아줬을 정도였다. 이런 동물이 탈출하면 해당 개체가 가장 신뢰하는 사육사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뒤 동물을 유도해서 다시 케이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야생성이 강해 위험하다면 그 동물의 성향을 잘 아는 사육사가 안전한 곳에서 차량에 타고 있는 수의사로 하여금 차 안에서 마취총을 쏠 수 있도록 무전으로 안내한다. 이때 주사기 총으로 투여되는 약물은 소량이고 작용이 빨라야 하므로 속효성 근이완제와 마취제를 섞어 사용한다. 마취약만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빨리 쓰러진 동물은 근이완제에 의한 호흡근 마비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이에 바로 기관삽관 후 인공호흡을 하면 동물을 살려서 데려올 수 있다.

수의사가 없는 농장이나 개인동물원은 경험이 있는 수의사를 미리 확보해둬야 한다. 사순이처럼 원거리에 있는 경우라면 멧돼지 등의 포획 경험이 있는 소방관과 경험 있는 수의사의 연결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계획 임신으로 태어난 토종 멸종위기종인 삵 새끼들. 청주동물원 제공

계획 임신으로 태어난 토종 멸종위기종인 삵 새끼들. 청주동물원 제공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억울하게 갇힌 주인공의 탈출을 누명을 벗으려는 본인의 의지로 그려낸다. 그러나 동물의 탈출은 구조물이 부서지거나 틈이 벌어지거나 문이 열려서이다. 동물의 의지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다. 더군다나 죄수도 아니다. 그래서 사살 소식은 늘 안타깝다.

올해는 동물을 위한 동물원 법이 시행되는 원년이다. 작년에 동물원에서 증식된 두 마리의 삵을 야생생태 관련 공기관과 함께 야생적응 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보냈다. 한 마리는 잘 적응했지만 한 마리는 로드킬로 허망한 죽음을 맞았다. 관점에 따라 절반의 성공이라고도 절반의 실패라고도 볼 수 있다. 올해는 몇 년 전 미아로 구조돼서 성체가 된 삵을 돌려보낼 계획이다.

동물원이 희귀한 동물을 물건처럼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동물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준비하는 재활치료소이길 바란다. 자연으로 돌아갈 훈련을 받다가 예상보다 빨리 동물이 ‘탈출’했다면 나간 동물을 걱정하고 이왕 나갔으니 잘 살기를 바라는 동물원을 꿈꿔본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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