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요키·시츄 어디로 갔나…유행 견종이 뭐기에

이유진 기자
시대별 유행 견종에 따라 반려견 놀이터의 풍경도 달라진다. 199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소형견종 요크셔테리어는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포메라니안, 비숑, 코통 등으로 대체됐다. 픽셀이미지

시대별 유행 견종에 따라 반려견 놀이터의 풍경도 달라진다. 199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소형견종 요크셔테리어는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포메라니안, 비숑, 코통 등으로 대체됐다. 픽셀이미지

공원 산책로에서 요키(요크셔테리어)가 사라졌다. 대형견에도 지지 않는 앙칼진 매력의 소유자이자 초소형 견종으로 국내 아파트 거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대세 반려견’ 요키가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보여도 보호자 품에 안기거나 ‘개모차’를 타고 간신히 콧바람을 쐬러 나온 노령견들뿐이다. 과거 인기 견종이었던 요키, 시추, 슈나우저, 코커스패니얼의 자리는 포메라니안, 비숑프리제, 코통(코통드튈레아르), 말티푸(몰티즈와 푸들 교배종)가 차지하고 있다. 인간이 선호하는 견종 유행에 따라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또 태어난다.

강아지도 시대별 유행 견종이 있다?

시대별로 유행하는 견종은 뚜렷했다. 대부분 미디어에 등장한 강아지 인기가 해당 견종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할아버지 같은 수염이 인상적인 슈나우저는 1990년대 강아지 사료 광고와 패키지 모델로 등장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현재 이 사료의 모델은 다른 견종으로 교체됐다). 2000년대 초 동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웅자’가 인기를 끌자 웅자 캐릭터로 반려견 용품과 캐릭터 용품이 출시됐다. 동시에 해당 견종인 코커스패니얼이 반려견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다소 과도하게 ‘발랄한’ 성격 탓에 비글, 슈나우저와 함께 ‘3대 악마견’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이 붙자 자연스럽게 유행이 저물었다.

연예인이 키우는 반려견이라는 이유로 인기를 얻은 견종도 있다. 대표적인 견종이 시추다. 2001년 동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모 가수의 어머니가 ‘찌루’ ‘슈슈’ 등 10마리가 넘는 반려견을 키우는 일상이 공개되면서 시추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2015년에는 코미디언 출신 사업가 주병진씨가 ‘대·중·소’라는 이름으로 키우던 웰시코기 세 마리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주목을 받았다.

“요즘 우리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요즘 우리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대중의 반려동물 윤리의식이 높아지면서 펫숍에서의 반려견 매매 행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는 추세지만 유행 견종을 선호하는 풍토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24년 1월 랭키파이가 설문조사한 ‘가정생활 선호 반려동물 강아지’ 순위를 보면 1위가 포메라니안, 2위 말티푸, 3위 몰티즈 그리고 푸들, 보더콜리, 사모예드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과거 선호되던 견종들은 대부분 순위권 내에 들지 못했다. 특정 견종에 대한 인기가 편중되다 보니 이른바 ‘인기견’이 아니거나 혹은 ‘품종견’이 아닌 강아지들이 애견업계에서 보이지 않는 ‘견종 차별’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른바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이라고 불리는 믹스견을 키우는 회사원 A씨. 급하게 출장 갈 일이 생겨 애견 호텔에 2박3일 보살핌을 문의했다. 품종과 몸무게를 묻는 질문에 “믹스견 7㎏”이라고 하자 호텔 측으로부터 “우리는 소형견 전문 호텔이라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이미 이 호텔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강아지와 체형이 비슷하거나 더 커 보이는 시바견,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등이 이미 입실해 있는 사진을 본 터였다. 그가 “체중이 문제가 아니라 ‘믹스견’이라서 숙박을 거절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호텔은 그제야 유기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견종 차별로 애견 카페에 공지하겠다고 하자 호텔 주인은 그제야 ‘어쩔 수 없는 방침’이라고 하더라고요. 견주가 강아지를 맡긴 채로 유기하는 예도 있어 믹스견은 더 유기가 쉬울 거라고 판단했다고 해요. 믹스견에 대한 업계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해명이죠.”

‘믹스 불가.’ 아예 입구에 이렇게 게시해놓은 애견 관련 업체도 꽤 있다는 것이 믹스견 보호자들의 목소리다. 유기견 발생과 관련 없는 애견 카페에서도 믹스견은 차별의 대상이다. 진도 믹스견을 키우는 B씨는 최근 강아지를 데리고 서울 시내 한 소형견 카페를 방문했다가 출입금지를 당했다. 그는 지난달 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저희 강아지는 4.8㎏ 믹스견이고 소형견 카페에 못 들어간 적이 없다. 우리 강아지가 5㎏ 미만이고 소형견이라고 하니 카페 사장님은 몸무게에 상관없이 소형 ‘견종’만 출입이 된다더라”는 글을 올렸다.

글이 공론화되자 카페 사장 C씨는 “믹스견이라도 말티푸, 폼피츠(포메라니안과 스피츠 교배종) 같은 소형 견종의 교배로 태어난 믹스견만 출입이 가능하다”며 “몸무게로만이 아니라, 소형견으로 분류되는 ‘품종’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강아지를 유기견센터를 통해 입양한 B씨는 “이는 명백한 견종 차별”이라며 “매주 애견 카페에 데리고 가면서 사회성을 길러주려 교육했고, 단 한 번도 다른 강아지나 사람에게 공격성을 보이거나 입질을 한 적이 없다. 그런 성향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애견 카페 안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펫숍에서 분양하는 작고 예쁜 품종견만 반려동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견종 차별 이슈가 불거지자 한 반려견 온라인 카페는 믹스견 견주들이 그간 당했던 일을 털어놓는 성토장이 됐다. 믹스라는 이유로 애견 카페 출입을 거부당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털을 깎아줄 수 없다”며 애견 미용실에서도 문전박대당한 사례부터 강아지 놀이터에 갔다가 “우리 강아지는 순혈이라 가까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똥개를 왜 키우냐”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는 경험도 쏟아졌다.

수년째 유기견 임시보호 봉사를 하는 임미혜씨 역시 ‘보이지 않는 견종 편견’을 몸소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소위 품종견이라고 말하는 유기견을 데리고 산책하면 ‘만져봐도 되냐’ ‘사진 찍어도 되냐’며 수많은 관심을 받지만, 믹스견을 데리고 산책할 때는 인사는커녕 은근히 피해서 가는 분들도 많다”며 “믹스견이라고 해서 사납다는 것은 편견이고 강아지별로 사회성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 많던 요키·시츄 어디로 갔나…유행 견종이 뭐기에

유행 견종 부추긴 경매장·번식장 그리고 펫숍

동물권행동 카라 신주운 팀장은 “견종 유행엔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교배를 하는 번식장인 일명 ‘강아지 공장’이 견종 유행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번식장 구조 활동을 하다 보면 해마다 조금씩 구조 견종이 다르다고 한다. 이는 유행 견종과 일치한다.

“2년 전부터 강아지 공장에서 구조되는 모견들은 주로 몰티즈, 푸들, 비숑, 미니비숑(몰티즈와 비숑 교배종)이에요. 해마다 유행을 타는 견종의 모견은 반드시 강아지 공장이 있습니다. 펫숍의 자견, 강아지 공장의 모견, 둘의 견종은 일치합니다.”

신 팀장은 “경매장이 부추기고 강아지 공장이 생산하며 펫숍이 소비자를 이끌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견종 유행 문화를 둘러싼 ‘반려견 카르텔’의 존재를 언급했다. 특히 이 기이한 번식 방법에 불을 지핀 곳으로 경매장을 지목했다. 경매에 올라오는 강아지들은 무조건 몸집이 작고 얼굴이 예뻐야 높은 가격에 낙찰을 받다 보니 작은 종끼리 강제 교배를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카라가 여러 동물보호 단체와 협력해 최근 구조한 미니비숑 번식장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카라가 여러 동물보호 단체와 협력해 최근 구조한 미니비숑 번식장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최근 한 번식장에서 300마리 강아지 구조 활동을 펼친 적이 있어요. 미니비숑을 주로 생산하는 공장이었죠. 비숑은 원래 10㎏이 넘는 중형견이거든요. 번식장 주인의 말에 따르면 작은 비숑 생산을 위해 중국에서 체구가 작은 수컷 비숑을 한 마리당 1000만원에 사왔다고 해요. 그런데 그 부견에게서 나온 새끼들이 자꾸 죽어 나가는 걸 지켜보다 보니 ‘더 이상은 동물을 가지고 장사하고 싶지 않다’는 양심선언을 한 거죠.”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대표적인 유기견 캠페인 캐치프레이즈다. 아이러니한 현실은 유기견조차 대부분 인기 견종이 선호된다는 점이다. 번식장뿐 아니라 식용 강아지 농장도 동물보호단체의 주요 구조 현장이다. 대형견의 경우 어렵게 구조를 해도 국내 입양이 어렵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성견 기준 10㎏ 이하는 소형견, 25㎏ 이상은 대형견으로 분류한다.

“진도 믹스견은 구조돼도 입양처가 없어서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아지 식용 문화가 없는 외국에서는 식용견이었는데 구조되었다는 ‘서사’가 있는 강아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개들은 다행히도 해외로 가서 대부분 잘 지내요.”

반려견 입양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보호소’나 ‘애견 호텔’이라는 이름을 내놓고 운영하는 변종 펫숍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업체들은 주로 호텔에 맡겨졌다가 유기된 강아지를 분양한다고 주장하며 어린 강아지나 품종견을 매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선량한 취지로 입양에 나섰다가 피해를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교배를 하는 번식장인 일명 ‘강아지 공장’이 견종 유행을 부추긴다. 포메라니안 번식장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교배를 하는 번식장인 일명 ‘강아지 공장’이 견종 유행을 부추긴다. 포메라니안 번식장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두 아들을 둔 주부 나혜진씨는 강아지 입양을 위해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다는 한 애견 호텔을 방문했다.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입양할 강아지를 살펴봤는데 업체 측에서 입양 조건으로 병원 멤버십 가입비용 명목으로 250만원을 요구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곳에는 누가 언제 버렸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은 강아지들도 많았거든요.”

그럼 품종견이란 무엇일까. 애견협회 전견종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최재헌 이사는 “품종견이란 말은 공식적으로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과 미국 케넬 클럽에서 승인하고 등록된 강아지의 종류를 일컬어 ‘견종’이라고 한다. 견종의 조건은 적어도 18대가 흘러 유전학적 결합 없이 성질이 뚜렷하고 안정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포메라니안 견종은 원래 흰색이 없었어요. 포메라니안과 흰색 페키니즈, 미니핀 등 4종의 견종을 교배해 태어났고 이후 안정적인 유전적 성질을 띠어 견종으로 인정받았죠. 반면 말티푸는 아직 견종이라 단정 지을 수 없어요. 표준적 성질이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슬개골 탈골 질환이 빈번히 나타나요. 비숑과 몰티즈를 섞은 미니비숑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특히 동유럽이나 중국에서 주로 들여오는 반려견 중 수의학적 전문지식 없이 작고 예쁘게만 만드는 과정을 거친 교배종은 유전적으로 약한 개체가 나올 수 있다며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생명경시 풍조의 끔찍한 참상이 아닐 수 없다.

모델 카이아 거버는 반려견 ‘마일로’를 지난 2020년 유기견 구조단체를 통해 입양했다고 밝혔다. 마일로의 생김새가 묘하게 익숙한 견종이라 국내에 화제를 모았다. 카이아 거버 SNS 캡처

모델 카이아 거버는 반려견 ‘마일로’를 지난 2020년 유기견 구조단체를 통해 입양했다고 밝혔다. 마일로의 생김새가 묘하게 익숙한 견종이라 국내에 화제를 모았다. 카이아 거버 SNS 캡처

최근 할리우드 파파라치 사진에 등장한 ‘시고르자브종’이 시선을 모았다. 원조 슈퍼모델 신디 크로퍼드의 딸로 잘 알려진 모델 카이아 거버와 늘 동행하는 반려견 ‘마일로’의 생김새가 우리에겐 묘하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거버는 마일로를 2020년 로스앤젤레스 유기견 구조단체인 라벨재단에서 입양했다고 밝혔다. 견종의 출신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똥개’라 설움받는 국내 믹스견과 레이벤 편광 선글라스를 쓰고 보호자와 한가로이 휴가를 보내는 마일로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큰 대비를 이룬다. 반려견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믹스견 보호자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품종견은 그 무엇도 아닌 ‘내 강아지’라는 견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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