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불 2년…생기 잃고 신음하는 숲을 가다
복구율 26%…조림사업 더뎌
이재민 30% 임시주택 살아
“송이 채취 30년 후에나 가능
황량한 풍경 우울증 유발”
건조 기후 늘어 산불 대형화
수막타워·담수지 확대 등
공학적 산불 대응책 필요
“이제 탄내 안 나는 거? 그거 말고는 2년 전과 다를 게 없지.”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지난 8일 만난 김장호씨(60대)는 밑동이 새카맣게 탄 채로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 채로 죽어버린 나무 옆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그루터기만이 이곳이 무성한 숲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곳에 화마가 들이닥친 건 2022년 3월4일. 2년이 흘렀지만 화마의 상흔은 깊고 넓었다. 김씨는 “산주가 직접 벌채해야 하는데 그게 다 돈 아니겠느냐”며 “황량한 산을 2년 넘게 보고 있자니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산림생태 복원을 위해 국유림을 중심으로 벌채 및 조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유림의 경우 조림은 지원해줄 수 있지만 벌채는 산주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
산불 이재민들도 생활 터전을 되찾지 못한 채 막막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집을 잃은 181가구 중 30%가량은 아직도 임시주택에 머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자재 가격은 이들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
주미자 북면 신화2리 노인회장은 “소득이 없는 노인이다 보니 대출도 안 나와 몇몇 집은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했다”며 “말이 좋아 빌린 것이지 노인이 무슨 갚을 능력이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온 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울진군은 경북 영덕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송이버섯 주산지다.
울진 주민의 20%가량인 1만여명이 송이 채취로 생계를 꾸린다. 송이만 50년 넘게 키워왔던 장순규씨(82)는 “최소 30년은 지나야 송이 채취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 214시간 산불…아물지 않은 상흔
2022년 3월4일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은 9일 만인 같은 달 13일에야 완전히 꺼졌다. 화마는 서울 면적(6만500㏊)의 30%가 넘는 2만923㏊(울진 1만8463㏊·삼척 2460㏊)를 태우고 진화됐다. 산천초목이 불에 탄 시간은 213시간43분. 산림청이 관련 통계를 처음 작성한 1986년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로 기록됐다.
생태환경 복구는 ‘거북이걸음’이다. 울진군이 현재까지 시행한 긴급벌채와 일반벌채 면적은 1800㏊다. 인공적으로 복구하기로 한 6900㏊를 기준으로 보면 약 26% 진행된 수준이다. 울진군 전체 산림 피해면적으로는 9%에 불과하다. 나무를 벤 자리에 어린나무를 심는 조림사업도 901㏊만 진행됐다. 기록적인 대형산불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산림청·국립과학수사연구원·경찰·산불방지기술협회 등이 최초 발화 추정 지점인 북면 두천리에서 감식을 벌였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도로변에서 최초 발화했다는 점에서 ‘담뱃불 실화’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 발생한 산불의 검거율은 39.9%(5668건 중 2263건)에 불과하다. 입산자 실화 검거율은 고작 10.8%다.
5668건의 산불 중 입산자 실화로 인한 화재는 1862건(32.8%)으로 가장 많다. 담뱃불 실화도 336건 중 89건만 붙잡혀 검거율은 26.5%에 그쳤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이 많은 곳은 대부분 농촌이라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가 많다”며 “탐문을 통해 목격자를 찾아야 하는 등 실화자 검거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산불 피해 복구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최근 5년간(2019~2023) 조림 및 긴급벌채 예산으로 투입된 국비만 1780억원에 이른다. 긴급벌채 등이 국공유지에만 추진되는 점, 산림 피해 및 산불로 인한 재산 피해, 지방비 투입분 등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복구에만 조 단위 예산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울진·삼척 산불로 인한 울진지역 산림 복구 비용으로 경북도는 34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경북도가 지난해까지 울진 산림 복구 비용으로 쓴 돈만 63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발생한 강원산불도 피해면적은 123㏊였지만 주택 등을 태워 273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 “365일 중 200일 불탔다”
최근 산불은 피해면적이 100㏊가 넘는 대형산불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5년간(2018~2023) 산불 발생 건수 대비 평균 피해면적은 10.62㏊로 이전 5년(2009~2018·1.18㏊)보다 9배 늘었다.
또 동해안 중심의 산불이 내륙으로 번지며 ‘산불 안전지대’의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대형산불이 일어나지 않았던 서해안에서 지난해 4월 발생한 충남 홍성산불(피해면적 1337㏊)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건조한 날이 늘고 바람이 거세지는 등 기후변화를 주요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4월 강수량은 평년(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 대비 69%에 불과했고 건조일수와 강풍특보는 각각 16%·50% 높았다.
국가산불실험센터에 따르면 수분 함량이 15% 이하인 낙엽은 35%인 낙엽과 비교했을 때 발화율이 약 25배 높아진다. 평지·무풍인 상태보다 경사 30도·초속 6m일 때 발생한 산불은 약 79배 더 빠르게 번진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대형산불은 2010년대 평균 1.6건에서 2020년 이후 6건으로 급증했다”며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통해 분석한 결과 한반도 대형산불은 현재보다 2040년 31%, 2050년 57%, 2100년에는 158%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산불의 일상화도 주요 패턴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1990년대 104일에 불과하던 산불 발생 일수는 2022년 200일로 2배 넘게 늘었다. 1년의 절반 이상은 산불이 나고 있던 셈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30년 산불 건수는 지금보다 최대 14%, 2050년 30%, 2100년에는 5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칠레·호주·하와이 등 대형산불로 막대한 재산·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 피해 사슬 끊을 공학적 접근 필요
전문가들은 산불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산불 발생 시 강도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산불 피해 복구 중심의 정책에서 산불 대형화를 막는 공학적 접근 방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101명의 사망자를 낸 하와이 산불 등 이제는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도 대비해야 한다”며 “산림과 인접한 마을 주변이나 금강송 군락지 등 주요 시설에 수막타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막타워는 15~20m 높이에서 360도 방향으로 물을 뿌리는 대형 스프링클러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기준 231대가 설치돼 있다. 김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1㎡당 10㎖의 물이 뿌려져 있을 경우 불이 잘 붙지 않는다”며 “산불헬기 도입비 등을 고려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주요 지점을 방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산불이 빈발하는 강원·경북 지역에 인공담수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공담수지는 최대 4만~5만ℓ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이동식 저수조다. 헬기가 접근 가능한 특정 지역에 보관하다가 산불이 나면 소방차량 등을 이용해 저수조에 물을 채우는 방식이다. 설치 시간도 10분 안팎이다.
산불이 일어난 지역과 담수지 간 거리가 10㎞ 이상 멀어지면 산불 진화 속도보다 확산 속도가 더 빨라 대형산불로 번질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600여곳 담수지가 있는데, 최근 10년간 산불 피해면적의 88%를 차지하는 강원·경북 지역 담수지는 260곳(7%)에 불과하다.
권 박사는 “산불 진화는 단시간에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투입하느냐로 결정된다”며 “담수지와 먼 지역을 사전에 분석해 이동식 저수조를 미리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에 강한 내화수림대 조성 필요성도 강조됐다. 동해안 대표 수종인 소나무에는 50여종 휘발성 성분이 있어 활엽수와 비교해 1.4배 더 뜨겁게 타고 2.4배 더 오래 지속된다. 또 솔방울은 상승기류와 강풍을 만나면 마치 수류탄처럼 비화해 최대 2㎞까지 날아가 산불을 확산시킨다.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소나무 잎 1g을 태우면 3400㎈, 참나무는 2500㎈의 열량이 발생한다”며 “소나무에 불이 붙으면 그만큼 더 빨리 더 크게 번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산림청이 산불 피해 지역을 복구한다며 기존 활엽수를 싹쓸이 벌목 후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를 심는 데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산불이 마을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준 비상소화장치 확대 설치도 필요하다. 이 장치는 일체형 소방시설로 산불 발생 시 신속하게 물을 뿌려 초기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다. 2019년 강원 고성·속초 산불 당시 이 장치가 있었던 홍와솔 마을이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인접 마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장치는 지난해 기준 1만2710곳에 설치돼 있다. 하지만 대형산불이 잦은 경북에는 835곳에만 설치돼 있다. 이마저도 울진·삼척 산불의 영향으로 국비를 지원받아 최근 327개를 구비한 것이다. 비상소화장치는 지자체가 직접 설치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2682곳에 갖춰져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불 대부분이 실화로 발생한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희망적인 부분이기도 하다”며 “산불과 관련한 홍보와 교육 등을 강화해 아름다운 산림을 지켜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