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실질적인 회사 대표자가 책임져야”…600쪽 ‘대검 벌칙해설서’ 살펴보니

이효상 기자
“중대재해, 실질적인 회사 대표자가 책임져야”…600쪽 ‘대검 벌칙해설서’ 살펴보니

2015년 4월 SK하이닉스의 이천 반도체공장 신축 과정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3명이 질소에 질식해 숨졌다. 회사가 공기를 단축하면서 설비를 다 갖추지 않은채 무리하게 시운전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검찰은 현장의 안전 업무 책임자였던 SK하이닉스 상무 A씨 등 8명을 기소했지만 최고경영진의 책임은 따지지 않았다. 회사 대표는 현장을 직접 지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조·생산 부문 사장은 질소 투입 사실을 보고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을 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현재는 어떨까. 4일 대검찰청이 작성한 600쪽 분량의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를 보면, 검찰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를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안전 의무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로 규정한다. 기업의 최상위 책임자가 수사·기소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중대한 산업재해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책임 회피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법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책임자가 법망을 빠져나갈 소지가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법이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는 사람 또는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 처벌받는 것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는 데다, 규모가 큰 대기업의 경우 총괄 대표 아래 사업부문별 사장이 존재해 ‘꼬리 자르기’가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수사기관이 경영책임자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검의 벌칙해설서에 따르면, 검찰은 사업을 대표하는 사람이 2명 이상이라면 모두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회사에 2개 이상의 사업부가 있고 각 부문별 대표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부문별 대표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각 부문을 총괄하는 대표가 실질적인 책임자에 해당하는지 따져보도록 했다. 검찰은 총괄 대표가 각 사업 부문 대표의 안전 관련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경우 실질 책임자는 총괄 대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총괄 대표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벌칙해설서는 안전보건 담당이사를 선임한 것만으로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책임자’ 등으로 장소를 제한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중대재해법은 장소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있다. 안전 책임자보다 직책이 높은, 사업 전반에 대한 관리자를 ‘경영책임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검찰은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기업 총수가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공범으로 처벌될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기업 총수가 ‘경영책임자’가 아닌 경우에도, 사고의 원인이 된 특정 업무를 경영책임자에게 지시했다면 공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외국회사가 생산한 원료나 제조물이 수입돼 중대시민재해를 야기한 경우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해당 법인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해외기업의 경영책임자를 국내에서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려면 경영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 검찰은 2015년 발생한 SK하이닉스의 질소 누출 사건을 예로 들며 “회사의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을 위해 인력·예산 등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거나 방치해 현장책임자들이 작업책임자 지정 등의 안전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웠음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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