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 ‘백년대계’ 될 수 있을까

김서영 기자

지난 7월 1일 법안 통과… 친정부 성향으로 ‘백년소계’ 될 우려도

한국 교육계는 새로운 교육기구의 탄생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 본회의는 지난 7월 1일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초정권적이고 초당파적인 기구를 지향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백년대계’인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교육 공약으로 임기 초반부터 출범 논의를 이어오다 정권 말기에서야 거대 여당의 추진에 힘입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가교육위원회법 시행은 법 공포 후 1년이기 때문에 위원회 구성과 출범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됐다.

남은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기존에 없던 국가교육위원회란 조직을 새로이 만들어 가야 한다.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진정한 ‘백년대계’를 이뤄내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전까지 보완해야 할 점을 짚어봤다.

지난 7월 1일 국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7월 1일 국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정치적 중립 과연 가능할까

가장 큰 우려는 ‘초당파’, ‘초정권’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로, 교육과 관련된 각 이해집단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구성된다. 때문에 결국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정쟁만 펼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은 국회 추천 9명(비교섭단체 1명 포함), 대통령 지명 5명, 교육부 차관, 교육감 협의체의 대표자, 교원단체 추천 2명,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추천 1명,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추천 1명, 시·도지사 협의체 추천 1명 등 총 21명이다. 상임위원은 국회 추천 몫에서 2명, 대통령 지명자 중 1명으로 정하며 위원장은 상임위원 중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3년이며 한차례 연임할 수 있다.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해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위원 중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는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 14명으로 전체의 3분의 2에 달하는 구조다. 넓게 보면 시도교육감 협의체도 특정 진영으로 쏠릴 수 있고, 교원단체도 정치 성향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추천해준 집단의 입장을 국가교육위원회에서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특히 대학 입시나 특목고 폐지 등 첨예한 쟁점에서 진보와 보수가 ‘합의’로서 공통된 정책을 도출한 경험이 드물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대통령 자체가 특정 이념과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직속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이 되긴 어렵다”고 짚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우리 교육이 변화를 일으켜온 원리는 진영 논리였기 때문에, 양 진영이 치열한 토론을 하면 어느 한쪽이 덥석 동의해주지 않는 이상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만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위원들이 각자의 추천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끔 보장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여야가 서로의 추천인을 대신 선택하는 방식의 대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추천 몫이 2명인 야당이 4명을 후보로 올리면 여당이 이중 2명을 고르는 식이다. 박남기 교수는 “이렇게 하면 추천은 야당이 했지만 선택은 여당이 했기 때문에 위원들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또한 법에는 위원이 정당의 당원이 아니어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박 교수는 이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박 교수는 “당적 여부보다는 정치적 행보를 했는지를 봐야 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던 사람이면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교육위원회, ‘백년대계’ 될 수 있을까

내년 대선 공약에서 교육은 빠지나

법에 따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발전계획을 10년마다 수립한다. 특정 정권의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간 안목으로 정책을 마련하라는 취지로 10년을 보장해줬다. 국가교육발전계획에는 학제, 교원정책, 대학입학정책 등 중장기 정책이 포함된다. 교육부나 청와대가 아닌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정책의 큰 골조를 정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마련한 정책에 대해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은 매년 시행계획과 전년도 실적을 제출해야 한다.

이는 당장 내년 3월 대선을 비롯한 향후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가 교육 공약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란 고민으로 이어진다. 근본적으로는 국가교육위원회란 새 체제 하에서 대통령이 특정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거나 흔들어도 되느냐의 문제다. 대통령 중심인 한국 정치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공약과 국정과제로 추진하지 않을 경우 정책이 소외된다는 딜레마를 낳는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취지를 살리자면 공약을 내지 않는 게 옳지만 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초정권을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권이나 이전 정권이 만든 건 안 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5년이 지나 새 정부가 왔는데 이전 정부에서 하던 개혁안, 더구나 중장기 계획을 그대로 하려고 할 리가 없다. 결국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대한 수정안이 계속해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봤다. 송 교수는 “초정권이라는 건 이상적으로는 좋겠지만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박남기 교수도 “여야 간 국가교육위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단 서약을 하고, 대선 캠프가 만드는 공약과 국가교육위원회가 조화를 이룰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가 후보자나 정당의 정책을 심판하고 사회적 갈등을 수렴하는 과정이란 점에서 교육정책을 정치와 분리해 생각하기가 어불성설이란 측면도 있다. 이 경우 국가교육위원회가 국민이 직접 뽑은 대의기구는 아니란 점이 문제가 된다. 박남기 교수는 “수능이냐 내신이냐 같은 갈등이 심한 대입 제도는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의 표결만으로 정해선 안 된다. 국회에선 근소한 차이로 정책이 통과돼도 대표성에 문제가 없지만 국가교육위원회는 국민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결국은 표결을 하게 되더라도 그전에 국민의 의견을 모아가고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갈등의 ‘교집합’ 어떻게 해결할까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같은 기존 교육 기관과 역할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된다. 소위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둘러싼 여러 방안 중 교육부를 없애는 안도 논의됐지만, 최종적으로 교육부가 남겨지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짙어졌다.

법적인 구분으로 보자면 향후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정책의 심의·의결을, 교육부는 집행을 맡는 식으로 이원화된다. 특히 교육부가 기존에 해오던 국가교육과정의 논의와 수립 역할이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온다. 교육부는 “초·중등 교육 분야는 본격적으로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고, 교육부는 교육복지, 교육격차, 학생안전·건강, 예산·법률 등 국가적 책무성이 요구되는 부분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고등교육, 평생직업교육과 인재양성 등 사회부총리 부처로서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업무를 명확히 선을 그어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김영삼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은 “(업무 구분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교육부에 남게 되는 교육복지와 교육격차 정책만 해도 교육청도 이미 상당한 예산을 들여 사업을 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 교육청, 교육부의 업무 간 교집합이 굉장히 커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장학관은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청, 일선 학교, 풀뿌리 교육 자치와 어떤 식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소통 구조를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그저 회의하는 위원회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권고’에 그치고 이행을 강제하지 못하는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달리 법적 구속력을 확보했다는 점도 향후 교육부, 교육청과의 관계에서 눈여겨볼 지점이다. 국가교육위원회법 제13조는 위원회가 특정 교육정책에 대해 심의·의결할 수 있고, 처리결과를 통보받은 관계기관의 장은 위원회의 심의·의결 결과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두고 교육부나 교육청의 정책이 국가교육위원회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기존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계에선 교육청이 교육 자치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교육부 간섭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 의무조항은 교육청의 모든 정책을 대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했다. 송 위원은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려 도입됐지만 향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지지부진했던 여러 위원회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는 역할을 해낼지는 출범까지 남은 향후 1년의 준비 기간에 달렸다. 그동안 시행령을 통해 직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부터 청년, 학부모 등 위원들의 대표성을 확보할 방안까지 과제가 산적해 있다.

국가교육위원회 도입을 추진해온 이광호 국가교육회의 기획단장은 “초창기 혼란은 피할 수 없다. 전화위복으로 삼을 하나의 시험무대”라고 했다. 이 단장은 다음을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교육에 대한 공통의 기대가 사라졌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각자도생의 욕망은 있지만 교육체제를 바꿔 사회를 나아지게 하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국민을 교육정책 과정에 참여시켜 효능감을 주고, 교육을 다시 공동체의 과제로 환원시켜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가장 큰 과제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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