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구조가 만든 ‘청년 여성 노동자의 우울’

박하얀 기자

한국여성노동자회 설문

성차별 구조가 만든 ‘청년 여성 노동자의 우울’

90년대생 28.5%가 ‘증상’
채용 과정 차별·성희롱 등
불안정한 노동실태가 원인

“이직을 여섯 번 했는데, 무기계약직과 파견·용역을 오갔다. 한 곳을 빼고는 모두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었고 15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았다. 대부분 6개월이 되기 전 퇴사했다. 취업과 이직을 반복하며 심신이 피폐해졌다. 사는 내내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몸이 아플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우울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여가를 함께할 사람 모두 없다.”(1990년생 여성 A씨·고졸·서울 거주)

“이직을 세 번 했다. 마지막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고, 휴가·휴직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으며 고용 안정성도 낮았다. 특히 성추행·성폭력 등 직장 내 성적 괴롭힘 문화가 심했다. 마음 건강이 나빠졌다. 내 미래는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1993년생 여성 B씨·대졸·경기 거주)

1990년대생 여성 노동자 100명 중 28명꼴로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과 직장 내 성폭력, 불합리한 채용 등 성차별 구조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3일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노동 실태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30일부터 9월24일까지 1990~1999년생 여성 4632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이다. 우울 증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응답자는 1319명(28.5%)이었다. 우울 정도를 자가진단하는 척도인 CES-D 점수가 16점 이상이면 ‘증상이 있다’로 분류된다. 심각한 정도별로는 ‘경증 우울’(16~20점)이 14.2%, ‘중등도 우울’(21~24점) 6.7%였으며 가장 심각한 ‘중증 우울’(25점 이상)도 7.6%에 달했다. 현재 일자리 여부, 일자리의 안정성, 비자발적 퇴사 경험 등이 특히 우울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현재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우울 정도가 정상 범주로 분류된 응답자는 2756명(74.2%)이었고, 중증 우울 정도는 230명(6.2%)에 그쳤다. 반면 ‘일한 적 있지만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이들의 중증 우울 정도 비율은 13.9%였다. ‘현재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중증 우울’이 차지하는 비율(6.2%)의 2배가 넘는다.

‘비자발적 퇴사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집단의 정상 범주 비율은 ‘퇴사 경험이 있다’는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해고 또는 수습·인턴 기간 만료 후 채용되지 않은 경험이 있는 집단의 우울 정상 범주 비율은 이 같은 경험이 없는 집단보다 15%포인트가량 낮았다. 이직 경험이 없는 집단의 우울 정상 범주 비율은 이직 경험이 있는 이들에 비해 5.5%포인트 높았다.

홍단비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일했던 경험이 있으나 현재 실업 상태인 청년 여성 노동자의 우울 수준이 높은 이유는 또다시 그런 일자리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느 일자리를 얻더라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적인 문제들이 퇴사나 이직 등 개인화된 방식으로, 자기책임론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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