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해제되자마자 119 불러 응급실행”…‘최후의 보루’ 된 요양원·중소병원 가보니

민서영 기자
경기 시흥에 위치한 신천연합병원 코로나19 치료 병동에서 지난 23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기 시흥에 위치한 신천연합병원 코로나19 치료 병동에서 지난 23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기 시흥엔 90개가 넘는 요양병원·시설이 있다. 시흥보다 인구가 20배 많은 서울의 요양병원·시설이 600여개인 걸 감안하면, 인구 대비 매우 많은 수준이다.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의 큰 도시와 근접한 지리적 위치, 서울보다 싼 땅값이 ‘요양 도시’를 만들었다. 최근 지역사회 감염이 폭증하며 이 시설들도 3분의 1 가량이 오미크론에 ‘뚫렸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많지만, 시흥에 종합병원은 단 3개 뿐이다. 그마저도 모두 2차병원이고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를 하는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은 없다. 다른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코로나19 중환자실도 꽉 찬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중소종합병원들이 이 지역 코로나19 환자의 입원 치료를 감당한다. 그렇다보니 증상이 경미한 확진자를 치료하는 중등증 병상에서도 산소 치료 등이 필요한 ‘중증 직전’의 환자를 받는 일이 빈번하다. 중앙의료체계의 부재를 일선 요양병원·시설 종사자들과 중소종합병원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당초 코로나19전담요양병원을 지정해 요양병원·시설 집단감염 대응에 나섰지만, 최근 확진자가 폭증하며 병상이 부족해지자 요양병원·시설 확진자도 기존 시설에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하며 재택치료를 하도록 했다. 지난 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간 요양병원·시설의 코로나19 사망자는 647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35.3%를 차지한다. 정영애 시흥 은계호수요양원 원장은 지난 23일 통화에서 “만약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죽어간다면 (언론에) 이런 식으로만 나오겠냐”며 “‘그냥 우리가 최선을 다하자, 우리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지켜드리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시는 거니까”라고 했다.

■‘0시 격리해제’만 기다리다 119 이송

정 원장이 운영하는 은계호수요양원에선 지금까지 5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재택치료 원칙에 따라 원내에 확진자가 생기면 요양원은 자체 방역과 치료에 나서야 한다. 음압병실 등 시설이 마땅치 않다 보니 급히 비닐로 막은 방에 환자를 따로 격리해 매번 마스크를 교체하며 환자를 보고, 오염된 공기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방 입구엔 소독약을 수없이 뿌려댔다. 정 원장은 “TV에선 (현 상황이) 너무 평화롭게 나오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게 전쟁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나마 의료진이 상주하는 요양병원과 달리 의사·간호사가 없는 요양원에서 확진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산소포화도·혈압 측정과, 어디가 불편한지 증상을 묻는 게 전부다. 하루에 2번 재택치료센터에서 모니터링 연락이 오지만 비대면 상담이다보니 환자 상태를 직접 볼 수 없어 한계가 있다.

병원 이송은 산소포화도가 심하게 떨어지는 등 위급한 상황어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대부분이 80세 이상 고령층에 기저질환까지 있는 확진자라, 언제라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 원장은 “나이가 있으시니까 산소포화도가 95%였다가도 갑자기 순식간에 70~80%로 떨어지신다”고 했다. 통상 산소포화도 81~90%는 ‘저산소증으로 인해 호흡곤란이 나타나는 수치’, 80% 이하는 ‘매우 심한 저산소증’으로 본다. 90%대여도 정상 수치인 95%보다 낮으면 ‘저산소증 주의상태’로 호흡곤란을 느낄 수 있다.

이날 저녁, 확진 후 격리 7일차인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92%까지 떨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평소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식사를 거의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지만 중증이 아니란 이유로 병원에 이송되지 않은 환자였다. 전날에도 환자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직원들이 밤을 샜지만 마지막 날 고비가 찾아왔다. 정 원장은 “저녁 때 포화도가 떨어져서 급히 산소통 꽂아드리고, 밤에도 계속 체크를 해달라고 일러둔 상태”라며 “급하면 밤 12시에 격리 해제가 되니까 해제되자마자 바로 119를 불러서 (근처 종합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해놨다”고 했다.

지난 24일 경기 시흥의 신천연합병원 의료진들이 한 요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날부터 신천연합병원에선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오미크론 집단감염이 발생한 인근 요양원들을 방문하고 있다. 신천연합병원 제공

지난 24일 경기 시흥의 신천연합병원 의료진들이 한 요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날부터 신천연합병원에선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오미크론 집단감염이 발생한 인근 요양원들을 방문하고 있다. 신천연합병원 제공

은계호수요양원은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인근의 한 요양원에선 5명이 확진돼 3명이 사망했다. 병원에 이송될 정도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상태가 위중해지면 이미 손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이송돼도 치료의 효율성이 떨어져 상당 수가 며칠 안에 사망한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요양원은 엑스레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포화도랑 혈압 재는 걸로는 병의 진행 속도를 모르지 않냐”며 “저희가 의료진이 아니다보니 바로 대응을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중증 환자는 중증 병동에만 있지 않다”

시흥의 신천연합병원은 지난해 12월부터 25개의 코로나19 중등증 병상을 운영중이다. 3개 병동 중 1개 병동을 코로나19 전담 병동으로 내놨다. 시흥 북부 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까닭에 은계호수요양원 같은 인근 요양원 등에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확진자들이 주로 온다. 병상을 운영한 초반엔 젊은 환자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고령층 환자가 많아졌다. 지난 23일 병원을 방문해 6층 코로나19 전담 병동의 CCTV 화면을 확인해보니, 6명의 환자 중 4명이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와상 환자였다.

와상 환자는 치료 외에 돌봄도 필요하다. 백재중 신천연합병원 원장은 “와상 환자들은 간호사들이 무지 힘들어한다”면서 “밥도 먹여야하고 대소변도 갈아드려야 하고 옷도 갈아입히니까 단순 치료를 떠나서 돌봄·간병이 2~3배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최근엔 병동 간호사들도 확진되면서 인력 공백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 시흥에 위치한 신천연합병원 코로나19 치료 병동에서 지난 23일 의료진이  병실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상당수가 고령층 와상환자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기 시흥에 위치한 신천연합병원 코로나19 치료 병동에서 지난 23일 의료진이 병실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상당수가 고령층 와상환자다. 박민규 선임기자

호흡기내과 전공의인 백 원장은 코로나19 병상을 전담해 직접 환자를 보고 있다. 그는 “요양원에서 재택치료 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 되면서,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팍스로비드(먹는 치료제) 처방 정도”라며 “일주일이 지나면 격리 해제는 되는데 환자들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밥도 못 먹고 기운도 없고. 그러면 저희 병원으로 실려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60%대에 머무는 중증 병상 가동률을 들어 의료체계가 안정적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중증이거나, 중증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은 환자들은 어디에든 있다. 이곳 코로나19 전담 병동은 비교적 증상이 경미한 중등증 환자를 치료하는 병동이지만, 입원자 상당수가 80세 이상 고령층인 탓에 언제라도 중증으로 갈 확률이 높은 환자들이 많다. 그래서 고유량 산소치료 등 인공호흡기를 달기 직전의 치료까지 시행하고 있다. 요양원에서 재택치료를 하다 이송 시기가 늦어 심한 폐렴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병원에 오는 환자들도 있다.

백 원장은 “중증 환자들은 중증 병동에만 있지 않고 요양원에도, 요양병원에도, 일반 중등증 병상에도 있다”며 “정부에선 중증 병상에 입원한 환자 기준으로 통계를 내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중증)환자들이 사망하다보니 위중증 환자에 비해 사망자는 무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백재중 신천연합병원 원장이 지난 23일 경기 시흥 병원 진료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백재중 신천연합병원 원장이 지난 23일 경기 시흥 병원 진료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오늘도 이어지는 ‘조용한 죽음’

최근 신천연합병원에선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오미크론 집단감염이 발생한 인근 요양원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의료진 없이 재택치료 중인 시설에 가 대면 진료를 하고, 밥을 못 먹는 환자들에게 수액을 놓아주는 등 개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개별 병원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조용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요양원 같이) 의료진이 상주하지 않는 곳에서 중증도를 가리는 진단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거점요양병원 등의 기능을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팬데믹 상황에서 제일 취약한 분들이 많이 돌아가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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