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해법’ 릴레이 기고

(1) “현 이사진 물러나게 해 ‘박근혜 색깔’ 지워야”

한홍구 | 성공회대 교수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첫날 저녁,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이 각 언론사에 팩스를 보내 사임을 통보했다. 하필 왜 취임식 당일 저녁일까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긴 했지만, 사임 자체는 예견된 일이다.

군사독재의 유물인 정수장학회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과거 청산과 정의 회복에서 상징적인 위치에 있었다. 특히 장학회의 명칭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의 부모 이름에서 한 글자씩 취한 것인 데다, 장학회의 탄생 자체가 국가권력의 언론장악과 사유재산 강탈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10년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공직자로서 등록한 재산 약 22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장학회에서 각종 명목으로 받아왔다는 점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는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 박근혜 대통령도 선거를 앞두고 정수장학회 문제의 일정한 해결(비록 정수장학회 공대위가 제시하는 원칙적인 해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을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필립 이사장이 노욕을 부리면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텨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되었는데 드디어 그가 물러난 것이다.

[‘정수장학회 해법’ 릴레이 기고](1) “현 이사진 물러나게 해 ‘박근혜 색깔’ 지워야”

박근혜 대통령이 정식 취임하기 이전에 이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실마리가 풀렸으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최필립 이사장의 사임 자체가 문제 해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선거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은 총칼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와는 달리 폭력으로 언론을 장악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자연인 박근혜’는 자신이 정수장학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변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대통령 박근혜’가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된다. 정수장학회가 한국 전체에 3개밖에 없는 지상파 방송의 하나인 MBC의 지분 30%와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일간지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는 현실이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현실과 양립할 수는 없다. 1차적으로 정수장학회의 탈박정희, 탈박근혜 작업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필립만이 아니라 최필립이 추천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정수장학회의 현 이사진이 모두 물러나고 유족 대표와 부산의 시민사회를 한 축으로, MBC와 부산일보에서 정수장학회가 임명한 현재의 경영진이 아니라 진정으로 구성원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또 한 축으로 하여 이사진이 전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재편된 새로운 이사회가 장학회의 명칭 변경과 사업내용 확정, 나아가 보유재산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특히 정수장학회의 주된 재산이 MBC, 부산일보와 같은 굴지의 언론사 지분이라는 점에서 장학회의 보유재산 처리는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지난해 10월 최필립 이사장은 MBC 측과 비밀리에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MBC 지분 매각을 논의한 바 있다.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밀실 매각은 다행히 언론에 폭로되어 저지되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MBC 지분 매각은 과거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부정하게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이사회는 MBC와 부산일보가 시청자와 독자에게 사랑받는 언론으로 자리 잡도록 공공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MBC와 부산일보는 모두 지금은 고인이 된 김지태 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언론사였다. 이들 언론을 통해 김지태 사장은 1960년 4월 혁명의 발발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5·16 후 군사정권에 언론사를 빼앗겼다. 고인과 유족 입장에서는 언론사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후보 선거 캠프 측으로부터 부당하게 친일이니 부정축재니 하며 명예훼손을 당했다.

장기적으로 정수장학회는 김지태장학회로 개편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언론사 지분은 사회적 협의기구와 새로운 이사회의 신중하고도 현명한 검토에 따라 처분되어야 할 것이다. 장학회는 언론사 지분의 처리 과정에서 새롭게 확보한 수익성 재산으로 유족들에 대해 일정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라와 사회가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 사재를 털어 국비장학금 총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고인의 뜻을 잘 살려 국내 최고의 장학재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수많은 과거사 문제 중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른 과제는 아버지가 남긴 문제이지만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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