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정신질환자 구속수사 과정에서 방어권 침해”…인권위에 진정

강은 기자
장모씨(56)가 지난 3일 경기 분당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구치소에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장모씨(56)가 지난 3일 경기 분당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구치소에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방화 혐의로 구속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했다며 당사자와 시민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진정인 장모씨(56)는 30년 전 서해훼리호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이후 정신질환을 얻게 됐다.

장씨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3일 서울수서경찰서 경찰관 2명과 서울중앙지검 검사 1명, 경찰청장·검찰총장·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검·경은 정신질환자의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재발방지대책을 수립·실시하고 모든 직원에게 정신질환자 피의자 보호 의무에 관한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해달라”고 밝혔다.

장씨는 방화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됐다. 거주하던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상자를 태워 경찰 수사를 받았다. 장씨가 현장을 벗어나기 전 불을 껐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경찰은 구속 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장씨에게 정신질환이 있으며 비슷한 사건으로 신고된 전력이 있어 ‘재범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다. 장씨는 소환 통보를 받고 경찰에 출석한 날 체포돼 6개월간 국립법무병원·구치소에 수감됐다.

이후 장씨는 1·2심 법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일반방화·재물손괴 혐의 중 방화는 무죄로 봤다. 징역형이 유예됐으나 장씨는 이미 6개월을 구치소에서 보낸 터였다. 애초 수사기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주장한 현주건조물방화 미수 혐의로는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정신질환자·정신장애인에 대한 수사 관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강은 기자 사진 크게보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정신질환자·정신장애인에 대한 수사 관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강은 기자

장씨와 시민단체는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방어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경찰은 지난해 4월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장씨에게 구속영장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그 보호자인 동생에게도 장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될 것이고 구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또 “장씨가 자신의 혐의와 형사 절차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방어권을 행사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보호자에게 신뢰관계인 동석 필요성을 확인하거나 경찰 직권으로 신뢰관계인을 동석하게 해야 했다”면서 “두 차례 경찰 조사에서 이런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수감 과정에서도 정신질환자의 건강권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진정서에서 “장씨는 조현정동장애·양극성정동장애로 약물을 복용해오고 있었으나 수감된 기간 동안 구치소에서는 장씨에게 필요한 약물을 확인·처방하지 않았다”며 “외부 약물 반입도 1회로 한정해 진정인이 가지고 있던 2달치 분량의 약물이 소진된 후에는 몸에 맞지 않는 약을 복용해야 했다”고 밝혔다.

진정을 대리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조인영 변호사는 “진술의 유불리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정신질환자·정신장애인의 상황을 경찰이 이용해 범죄 혐의를 인정하도록 유도한 사례는 이미 많았고 앞서 인권위도 몇 차례 권고를 했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이같은 인권 침해는 검찰에서도, 법무병원에서도, 구치소에서도 발생했다”면서 “형사사법 책임자 모두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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