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갑질의 시선에서 벗어날 길 없는 직원들

김태훈 기자
서울의 한 회사 사옥 입구에 CCTV가 설치돼 있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의 한 회사 사옥 입구에 CCTV가 설치돼 있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를 훔쳐보는 시선에 쫓겨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다 깬 적도 있어요.”

대학생 신모씨(22)는 지난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점주의 잔소리가 심한 것까지는 참으려 했지만, 그 잔소리가 일하는 시간 내내 폐쇄회로TV(CCTV)로 자신을 지켜보면서 나온 것이라 더는 참기 어려웠다. 코로나19가 걱정된다며 점주는 점포에 자주 들르지 않고 CCTV를 보면서 신씨를 비롯한 알바들에게 세세한 지시를 내렸다.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손님 없을 때 알아서 할 일을 빨리 마쳐놓으려고 했는데 꼭 한발 먼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앉아서 놀지 마라’ 이런 메시지를 보내요. 일하는 동안 내내 시달리고 나면 퇴근 뒤에도 메시지만 오면 덜컥 겁이 나요.” 신씨는 손님이 뜸해지는 시간대만 되면 점주가 보낸 메시지가 빗발쳐 오히려 일에 방해가 됐다고 말했다.

CCTV를 통해 직원을 감시하며 보다 심각한 갑질을 일삼은 사업주들의 사례도 많다. 직장 내 갑질 및 노동권 침해행위에 대응하는 활동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올해 상반기 동안 접수한 직장갑질 제보 중 CCTV 감시와 관련된 제보만 80건에 달했다. 특히 CCTV 감시는 해당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총 제보 건수 1588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모욕·명예훼손·폭언폭행 등 다른 직장 내 괴롭힘 유형과 함께 이뤄졌다고 직장갑질119 측은 밝혔다.

CCTV 영상을 해고의 근거로 삼아

신씨가 일했던 편의점처럼 도난방지 등 명확한 목적을 위해 합법적으로 CCTV를 설치한 곳도 있지만 직원들만 드나드는 공간에 사측이 일방적으로 설치한 경우도 흔했다. 직장인 ㄱ씨의 회사 대표는 ‘보안과 안전’을 빌미로 직원들의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한 뒤 “CCTV로 보니까 화장실 갈 거 다 가고, 인터넷하고 그러더라”며 직원들을 질타했다. ㄱ씨의 제보내용을 보면 대표는 편집된 CCTV 영상을 보여주며 근무태만을 지적하는가 하면 직원들이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심지어 CCTV 영상을 해고의 근거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전형적인 가족회사여서 대표이사의 가족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ㄴ사는 최근 일을 못 한다는 이유를 대며 직원 1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이 “무슨 근거로 일을 못 한다고 하느냐”고 묻자, 대표의 부인이 나서 동료와 대화를 하는 CCTV 영상을 ‘잡담한 증거’라고 제시했다. CCTV 감시 외에도 근로계약서 미교부, 연차·수당 미지급 등의 문제까지 얽혀 있었다.

CCTV를 통한 직장 내 감시만 놓고 보더라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일방적으로 설치한 CCTV는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 현행법은 공개된 장소에 CCTV를 설치할 경우 그 목적을 범죄·화재 예방, 교통단속 및 교통정보 수집·분석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이상의 설치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CCTV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고 음성을 녹음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 CCTV를 설치하는 경우더라도 CCTV가 비추는 사람에게 설치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불법으로 5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의 취지와는 달리 설치목적에 포함되지 않는 직원 감시용으로 CCTV를 사용해도 위법한 것이다. 게다가 버스나 민원실, 접객서비스 영업장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터가 ‘공개되지 않는 장소’에 해당한다. 이 경우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시설비를 설치할 때 원칙적으로는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노사가 감시설비 설치 여부를 논의하는 기구인 노사협의회는 30인 이하 근무 사업장에선 설치 의무가 없다는 허점이 있다. 이런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요구하는 업주나 관리자에게 맞서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노사협의회의 의결을 거친 경우, 개인이 동의하지 않아도 감시설비를 설치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직원에 대한 감시가 법에 따라 금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멍이 숭숭 뚫려 애꿎은 직원들만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공개되지 않은 곳은 근로자 동의 얻어야

‘동의 없는 감시’ 문제는 2014년 발간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정보통신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6년 동안 CCTV를 포함한 감시장비의 숫자와 범위가 크게 늘었음에도 대책 마련은 물론 추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결과를 보면 CCTV를 활용하는 회사의 비율은 전체의 70.5%에 달했고, 설문에 참여한 노동자 중 30.1%는 회사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노동인권 침해 사례 중에서는 CCTV와 블랙박스를 이용한 인권침해의 비율이 74.7%로 다른 방식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실태조사를 수행한 한국법제연구원의 강현철 선임연구위원은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개별적 동의만 받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이 동의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어서 강제적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감시당한 직원들이 위법한 CCTV 설치·운영을 이유로 사업주를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의 법적 대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CCTV가 실제 감시 목적으로 쓰였는지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서 노동감시에 대한 규정이 없어 고용노동부가 ‘CCTV 갑질’을 감독·제재할 근거가 모호하다는 한계도 여전하다. 때문에 갑질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서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을 감시하는 행위 역시 괴롭힘의 한 예로 들고 있는 점을 참고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른 처분을 노동청에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오랜 문제 제기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노동감시와 갑질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장 내 CCTV 설치·운영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갑질119 김하나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사용자가 사업장 내에 근로자를 지켜보거나 감시할 목적으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운영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명확히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감시 문제가 불거지면 근로자에게 ‘감시가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책임을 지우는 규정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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