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 시대, 알고리즘 뒤에 숨은 사람을 찾아라

이혜리 기자
알고리즘과 노동인권에 대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알고리즘과 노동인권에 대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계류 중인 ‘플랫폼종사자법(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과 관련해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도록 입법해야 한다고 지난달 30일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 의견의 핵심은 플랫폼 노동 시대에 노동자는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엄격하게 근로기준법 등으로 사업주를 규제하는 기존의 법 체계를 플랫폼 노동에도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3일 28쪽 가량의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인권위는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상의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인하려면 기업이 입증하도록 플랫폼종사자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플랫폼 노동자를 둘러싼 논란은 노동자를 통제하는 체계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인 사업주가 사업장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노동자를 지휘하는 체계에서 온라인 공간인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일감의 배정부터 임금의 결정까지 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 통제는 알고리즘이 하는 것이라며 자신들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번 결정에서 알고리즘 뒤에서 실질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를 지휘하는 플랫폼 기업에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플랫폼은 거래가 일어나는 온라인상의 공간으로, 그 거래는 플랫폼 운영자가 설계한 알고리즘에 의해서 작업자를 선택하고 일감을 할당하며, 플랫폼 사업을 통한 이윤은 종국에는 플랫폼 운영자에게 귀속된다”며 “사용자의 직접적인 업무지휘·명령 등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 없이도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를 통해 직접 통제하던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인권위는 “노동관계법이 전통적인 엄격한 기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그 적용대상에서 배제한다면, 정작 노동약자에게 노동관계법은 무력한 장치에 불과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노동관계 법령 체계 내로 포섭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서는 노동관계 법령을 통한 보호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인권위는 플랫폼종사자법에서 권익 보호 의무를 부여한 플랫폼 운영자와 플랫폼 이용 사업자 외에도,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 권익을 침해하거나 노무 제공에 실질적 지배·결정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의 연대책임을 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봤다. 예를 들어 여러 기업이 네트워크를 이뤄 하나의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한 기업만을 사용자로 본다면 그 외의 다른 기업들은 사용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권위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관계 법령상의 노동자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따라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플랫폼 기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플랫폼종사자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인권위 결정에는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플랫폼 기업이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지는 담겨있지 않다. 지난달 9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플랫폼 노동자 보호 관련 입법 기준에는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의 결정에 관해 설명을 들을 권리, 노동자의 노무 제공과 관련한 데이터 기반의 결정에 관해 알 권리와 이의제기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동자에 대한 모니터링, 감독, 평점 자체 뿐만 아니라 이에 사용된 알고리즘의 주요 정보를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에게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법에 어떻게 넣을지의 ‘방법론’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노동계에서는 근본적으로 근로기준법을 바꿔 노동자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면, 정부와 여당에서는 플랫폼종사자법이라는 특별법 제정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인권위는 근로기준법을 바꾸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일단 플랫폼종사자법과 같은 입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관계 법령상의 노동자로 간주하는 것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경덕 노동부 장관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비대면·디지털 전환으로 증가하고 있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함께 분야별 표준계약서 마련 등 공정한 계약관계 확립과 노동조건 보호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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