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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허남설 기자
Aditya Romans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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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점선면 8월9일자(https://stib.ee/7OP8)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독자님, 수요일 점선면💌이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지난 7월21일 점선면Lite를 통해 미리 알려드린 대로 점선면팀 개편 때문에 불가피하게 수요일 점선면을 지난 2주 동안 휴재했어요.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이번 주 주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입니다. 사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를 달군 이슈여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정부와 서울시가 최근 시범사업의 밑그림을 공개하긴 했지만, 사실 점선면팀이 이 주제를 채택하게 만든 건 많은 언론이 이 사안을 보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月 200만원 ‘동남아 가사도우미’ 써볼까”, “‘필리핀 이모님’ 100명 서울 온다” 같은 기사 제목은 여러 생각이 들게 했어요. 우리 사회가 동남아 혹은 필리핀을 바라보는 시선, 가사노동자·근로자가 아닌 ‘가사도우미’란 말의 고착, ‘가사=여성의 몫’이란 틀을 떨칠 수 없는 ‘이모님’ 호칭… 결국 이런 상상에 미쳤습니다. 어떤 부유한 국가의 남성이 정부의 시범사업에 지원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8월4일 미리 오늘의 주제를 예고드리자 이번에도 많은 독자님이 의견을 보내주셨어요. 대부분 독자님이 정부가 준비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업을 날카롭게 비판하셨습니다. 독자님들이 채워주신 지혜와 통찰을 바탕으로, 오늘 점선면은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와 함께 준비했어요.

*소통·젠더 데스크는 경향신문이 생산하는 기사 등 모든 콘텐츠를 젠더 이슈와 관련해 감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 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 현재는 외국인 중 비자를 받은 중국·구소련 동포만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데, 이 문을 더 열어보겠다는 거예요.

· 고용노동부는 일단 서울에서만 필리핀 등 해외에서 온 가사노동자 100여명이 6개월 이상 일하는 시범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나서 제안한 것으로, 원래는 최저임금보다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를 띠었어요.

· 국회에서는 조정훈 국회의원이 주도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3~5년 동안 고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정훈 국회의원 모두 이 제도가 필요한 이유로 ‘저출생 극복’을 꼽으며, 싱가포르나 홍콩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각각 1978년과 1974년에 외국인 가사인력 제도를 도입했어요. 비슷한 제도를 둔 일본, 독일, 캐나다와 달리 싱가포르와 홍콩은 내국인과 동일임금 제도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 다만, 고용노동부가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공인인증기관을 통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도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될 것으로 보여요.

· 고용노동부는 이 시범사업을 본격 준비하며, 지난 7월31일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정부가 서울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들여오는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에요.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1. 오세훈이 회의적인 이유

서울시가 먼저 제안한 사업을 정부가 받아들인 모양새가 되었지만, 정작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의 시범사업 계획을 마뜩잖아했어요.

“특히 비용 때문에 출산을 포기했던 많은 맞벌이 부부에게 외국인 도우미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최저시급을 적용하면 월 200만원이 넘습니다. 문화도 다르고 말도 서툰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며 200만원 이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지난 8월1일 오세훈 시장 페이스북)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의 핵심은 ‘최저임금 미적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2022년 9월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처음 제안할 때부터 줄곧 ‘비용’ 문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한국의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입니다.”(국무회의 당일 오세훈 시장 페이스북)

점선면 독자님 중 한 분도 ‘월 200만원’이라는 비용에 대해 이러한 의견을 주셨어요.

“월 200만원(을 가사노동자 고용에 쓸 수 있는) 근로자는 얼마나 될까요? 결국 대기업이나 전문직에서 일하는 고소득자에게 가능한 일일 것 같아요.”(익명의 독자님)

2. “다같이 차별하겠다”는 선언

하지만 외국인 가사노동자만 콕 집어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발상은 ‘차별’이라는 비판에 부딪힙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조영관 변호사는 “오로지 ‘국적’을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고 있어 부당한 차별이 명백하다”라고 지적했어요. 이름을 남기지 않은 한 점선면 독자님도 “동남아 여성을 값싼 인력으로 여기는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2011년 제정, 2013년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 협약에 따르면, 가사노동자들은 초과근무나 법정휴가 등에서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대우받아야 합니다. 단체교섭 등 결사의 자유와 산업재해 보호 측면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지닙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조정훈 의원 법안을 실무적으로 검토한 결과 “외국인근로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제외하는 것은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상의 규정과 현행 판례, ILO가 고용과 직업에 있어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채택한 협약과 상충될 우려가 있(다)”며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OECD 국가 중 외국인에 대해서만 그 적용을 배제하는 사례가 없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제NGO단체에서 활동하며 홍콩·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에 관한 석사 논문을 쓴 적 있는 김유진 기자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김 기자는 “우리가 아무리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파격적·한시적 해법이라고 주장해도, ‘주요 8개국(G8)’ 진입을 노린다면서 인권을 부정하고 국제기준을 무시하는 국가는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 6월 15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가사노동자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수빈 기자

2022년 6월 15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가사노동자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렇게 한 공동체가 굳이 법규를 바꿔 특정 노동자만 예외적 영역으로 만드는 행위의 의미도 곱씹어봐야 합니다. 집단으로 그 노동자들을 차별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거든요. 비단 임금을 깎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권 전반에 차별을 가져올 수 있어요.

김유진 기자는 논문을 쓰며 홍콩·싱가포르의 가사노동자들로부터 임금체불과 수수료 갈취를 예사로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요. 폭언·폭력을 당했지만 일을 계속하기 위해 침묵하는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싱가포르에서는 주 1회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6개월마다 임신 여부를 확인(임신 시 즉시 추방)하는 인권 침해가 나타나고 있어요. 국내 가사노동자들도 이미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성폭력 등 범죄에 상시 노출되는 실정을 증언했어요.

오세훈 시장과 조정훈 의원의 제안을 두고 “국가가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가족의 형태를 옹호하는 셈”(김만권 정치철학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3. 정말 저임금이 핵심일까?

그래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임금을 획기적으로 낮추면 어떤 가정은 혜택을 입지 않을까요? 한 가사노동자 공급 업체는 서울시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가사노동 수요 급증, 종사자 평균 연령 고령화 등 상황을 들어 “소비자들은 합리적 비용이라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이용할 의향을 나타냈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 중에는 ‘비용 너머의 합리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김유진 기자는 “어느 부모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안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어요.

많은 점선면 독자님들도 자녀를 누군가에게 맡길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건 비용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먹튀 등 불신에 대한 불안감’, ‘안전이나 보안을 장담할 수 있을까’ 등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도 엿보였지만, 자녀 양육과 성장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 또한 묻어났어요.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정체성과 자아를 형성할 때라는 점에서 너무 일찍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 아이가 태어난 곳의 문화를 배우는 중요한 시기인데, 부모와 국적·문화가 다른 도우미에게 자란다면 상호 충돌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 (또또파파님)

·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아이의 인생 자체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돈 조금 아끼겠다고 문화, 언어에서 차이가 나는 외국인을 고용하고 싶지는 않아요. (청년고등어조봉학님)

·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 그리고 이해와 실행까지의 시간적인 요소들… 내국인을 쓰면 소통과 불신의 문제를 푸는 게 한결 수월할 것 같다. (veronica88님)

· 대화가 통하지 않아 마찰이 있을 시 해결이 어렵다는 점. (훌랄라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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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의 법과 국제적 기준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이에요. 많은 부모들이 자녀 돌봄에서 ‘저비용’만을 앞세우는 건 아닙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1. 가사의 이해

오세훈 시장과 조정훈 의원은 외국인을 끌어들여서라도 가사노동과 양육 부담을 줄이면 출생률 반전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시행이 곧 출생률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은 건 홍콩·싱가포르 등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나아가, 무엇보다 가사노동을 그냥 ‘남에게 떠넘기면 되는 일’이라고 보는 단순한 시각이 문제적이라는 지적이 나와요.

임아영 기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의 문제점을 짚은 칼럼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가 ‘가사의 분배’를 관찰하고 기록한 경험을 소개했어요.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집안일 백과사전’이라는 활동지를 내밀었다. “집에서 누군가 해야만 하는 집안일들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주로 누가 하고 있을까요?” 장보기, 빨래 널기부터 식사 준비, 설거지하기 등 15가지 집안일이 정리된 활동지였다. 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중복 답변 결과 엄마 5가지, 아빠 5가지, 할아버지 6가지였다.

엄마가 5가지, 아빠가 5가지 가사를 수행하는 모습은 언뜻 아주 평등하고 상호협조적으로 가사노동이 분배되는 가정으로 보입니다. 현실은 조금 다를 수 있어요. 임 기자는 자신이 맡은 가사노동이 배우자보다 다소 많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Dan Go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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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은 떠올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학교의 활동지가 제시한 장보기, 빨래 널기, 식사 준비, 설거지하기 등은 모두 과업의 시작과 끝이 분명해 ‘눈에 보이는’ 가사노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가사노동을 해본 사람은 거의 누구나 체감합니다. 눈에 안 보이는 가사노동이 얼마나 많은지를.

예컨대, 아이의 학교나 학원은 시시때때로 부모 상담을 요구해요. 누군가는 직접 방문하거나, 적어도 통화하며 문제 해결에 신경을 쏟아야 합니다.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거나, 재테크 계획을 짜고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일도 꽤 큰 집중력을 요구하죠. 하지만 청소기를 돌리거나 그릇을 닦는 일처럼 눈에 띄게 몸을 쓰는 일은 아니에요.

하다못해, ‘새하얀 셔츠’처럼 상황과 격식에 맞는 옷차림을 매일 같이 갖추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동과 나름의 치밀한 시간 계획(“오늘 빨면 언제 말리고 다려입을 수 있을까?”, “내일 세탁소에 맡기면 모레는 찾을 수 있을까? 아, 세탁소가 내일 문을 열던가?” 같은 생각들)이 필요해요.

이걸 경험해 보지 않은 세대, 특히 남성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주 많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빨래 널기처럼 빤히 보이는 가사노동조차 여전히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죠. 여기에 가사노동의 보이지 않는 측면과 이에 수반되는 정서(책임감, 인내심 혹은 구성원에 대한 사랑)까지 이해한다면, 자녀 양육과 관련한 가사노동을 ‘남에게 털면 그만’이라는 발상에 그칠 수 있을까요?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칼럼 <돌봄정책 결정자의 자격>에서 이렇게 질문했어요.

‘돌봄’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과연 이 방법 이외엔 없는가? 돌봄은 하기도 싫고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으로 싼값으로 일할 누군가가 있다면 지구 저편에서라도 데려와 책임을 전가해 버리면 되는 것인가? 왜 돌봄은 여성과 어머니의 책임으로만 주어지는가? 이런 질문들과 관련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수입은 도덕적 정당성도, 경제적 합리성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 여성들의 생각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수입하겠다는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한 이들은 과연 돌봄노동으로 얼마나 땀을 흘려 보았을까? 아이의 기저귀를 빨고, 가족의 식탁을 차리고, 노인의 일상을 돕는 경험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그런 노동이 얼마나 많은 책임감과 인내를 요구하고,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느껴본 적이 있을까? 타인의 욕구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종속성,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안녕을 지킴으로써 소통하고 교감하는 관계지향성을 얼마나 깊게 경험해 보았을까?



2. 돌봄의 가격

가사노동에 대한 몰이해는 곧 저평가로 이어집니다. 가사노동자 노동조합인 가사·돌봄유니온의 최영미 위원장은 이렇게 진단해요.

“조정훈 의원이 말하는 가사도우미를 보면 집안에서 살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환자가 있으면 환자도 돌보는 가정 내 전천후 돌봄노동자다. 그렇게 하는데 임금이 100만원이 안 된다는 건 이 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사노동 자체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시장이 열리면 어떻게 될까요? 국내 가사노동자도 저임금의 압박에 한층 더 시달리게 되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어요. 지금(2021년 기준)도 돌봄노동자 평균 시급은 1만183원으로 타 직종(1만6437원)보다 6254원 낮고, 최저임금의 120% 미만을 받는 취업자도 52.5%에 달한다고 해요.

“돌봄노동시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저임금 개선 없이 외국인 노동력으로 인력부족을 충당하는 방식은, 돌봄노동시장 전체의 임금과 노동여건을 개선하는 데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고 경고하는 배경이에요. “돌봄노동이 저임금인 상태에서는 새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도 다른 산업으로 빠질 것 같아요”(김군김군님)라는 점선면 독자님의 우려는 실제 전문가들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Volha Flaxe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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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화된 저임금은 돌봄의 질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어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머릿속에 스치는 우려(”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과연 내 아이를 잘 돌볼까?”)는 이미 현실입니다. 임아영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의 노동 조건이 좋아져야, 그 직업에 대한 대우가 좋아져야 돌봄의 체계가 좋아지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만 임금을 깎는 건) 굉장히 부정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서울시가 사회서비스원을 없애려 하며 보이는 시각과 똑같아요. 국가가 (돌봄의) 어떤 체계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시장에 넘겨서 싸게 하자’라는 거죠.”

3. 정부의 원죄

가사노동에 대한 몰이해와 이어지는 노동 저평가. 여성(어머니 혹은 며느리)이 가사노동을 무료로 제공했던 역사는 아직 우리 사회를 강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공짜라고 여겼던 가사노동을 가정 밖의 노동시장에 맡긴 결과가 최저임금 수준의 가사노동자 소득이죠. 오세훈 시장과 조정훈 의원은 그마저도 깎자고 합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슈에 의견을 주신 점선면 독자님 모두 ‘월 200만원 외국인 가사노동자’만으로는 ‘출산 결심이나 돌봄 문제에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답변하셨어요. 딱 한 분, pete님만이 ‘아이를 낳거나 돌봄을 맡길 것 같다’고 답하셨는데, 그럼에도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방향에 대해선 “낮은 비용은 (질 좋은) 돌봄을 보장 못 할 듯합니다”라고 덧붙이셨습니다.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 충격 이후 내민 회심의 정책 카드에 돌아온 건 거센 반대나 분노도 아닌, 그저 냉소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평등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말하기조차 인색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후퇴시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던 정부. 이 발화의 ‘원죄’에 대해서 짚지 않을 수 없어요. 홍혜은 저술가는 주변에서 접한 냉랭한 시선을 칼럼 <할 말이 없다>에서 이렇게 전했어요.

“국가에 요구를 안 하게 되는 게 왜인지 생각해봤어요. 집에서 아빠한테 말 안 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어차피 안 통할 거니까요.”

그러면서 가사노동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이, 성평등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죽어도’ 말하지 않는 정부를 꼬집습니다.

“회사에선 여자가 육아휴직을 하니 여자를 안 뽑는다는데, 문제는 여자가 아니다. 남자가 집에서 사라지는 거다. 육아휴직으로 안 되는 문제가 산더미다. ‘애’가 ‘시민’으로 자라는 데는 연속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야근처럼 ‘땡겨서’ 끝낼 수 없다는 것. 사람은 집에서도 할 일이 있는데, 누군가 그걸 처리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없어진다는 것.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인은 일만 하다 병들고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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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기자는 “유달리 ‘가사도우미’ 정책에 대해서는 화가 난다”며 그 이유에 대해 “부모들은 오랫동안 부모가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줘야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지만 정치권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생 해법’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돌봄과 노동시간이 다 맞물려 돌아가는 이슈인데, 이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을 이야기한 다음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꺼냈어요. 정부는 경영계의 요구만 받아서 노동시간을 줄일 의지, 부부에게 아이를 돌볼 시간을 줄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만원이면 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셈이잖아요. 정치권이 근본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전혀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느끼는 거죠.”

점선면 독자님들도 저렴한 외국인 가사노동자만 운운하며 구조적 문제를 뭉갤 게 아니라, 이 문제를 풀 구체적인 해법을 주문했습니다.

· “저출생은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사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단 부모 양측이 출산 및 육아휴직을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보장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더라도 휴직과 고용 안정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국가는 외국인 여성의 임금을 후려치며 자국 아동들을 위탁하여 키울 생각 말고 국가가 나서서 부모와 함께 아이들을 ‘잘’ 길러내야 합니다.”(둥님)

· “가사도우미를 쓰는 이유는 맞벌이, 장시간 근로로 인해 육아를 부모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아이는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사도우미를 최저임금 이하로 이용할 수 있게 동남아에서 인력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급여의 변화가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옳은 방향이라 생각합니다.”(또또파파님)

· “아이를 돌보면서 소득도 생기고, 개인의 자기계발이 가능한 환경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근무시간을 9시~18시가 아닌 10시~17시 퇴근으로, 보수나 근로조건 등이 보장이 되도록 작은 것부터 바꿔주었으면 해요.”(익명의 독자님)


결국, 정부를 향해 요구하는 건 성평등과 노동시간 단축을 조화시키는 ‘큰 길’을 설계해 달라는 거예요. “어떤 여성은 일이 하고 싶고, 어떤 남성은 돌봄을 하고 싶을 수 있는데, 지금 우리는 이 두 욕구를 다 억압하는 사회”(임아영 기자)를 바꾸는 일입니다.

신경아 교수는 이 욕구를 모두 발현 가능한 사회로 만들어 출생률 반등에 성공한 것이 유럽의 ‘젠더혁명(gender revolu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남성 혼자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졌다. 여성도 함께 경제적 부양자가 되는 동시에 여성이 전담하던 양육을 국가와 공동체, 그리고 남성이 분담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 성평등 정책의 목표다.

새 정부가 성평등 정책이라는 큰길을 외면하고 잡다한 미시적인 정책들로 우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자녀를 키우는 가족에게 일 년에 몇번쯤 방문하는 가사도우미의 조력이면 충분할까? 육아재택근무가 확대되면 그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근무 평가에서, 회사의 주요 업무에서 재택근무자는 동등한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여성과 남성이 함께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방안은 왜 멀리하나?”


정부는 이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같은 정책은 ‘해법’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는 지적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직접 수고와 관심을 기울여 자녀를 키우고 싶어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존중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책을 구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점선면은 이 상황을 ‘돌려막기’라고 날카롭게 꼬집어 주신 독자 혜림님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게요.

“자녀를 돌볼 시간을 부모에게 보장하려면 부모의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야 하고,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려면 기혼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돌볼 돈이 없다면 충분한 임금이 보장되어야 하며, 돌봄의 질이 문제가 된다면 가사노동자와 돌봄노동자의 노동 현장을 점검하고 개선해야 하는 거죠.

부모와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도 모자랄 판에, ‘값싸게 일해줄 사람’을 국가 차원에서 고용해주겠다는 것은 그저 노동권 침해를 다른 약자의 노동권 침해로 돌려막겠다는 것 아닙니까.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부모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자라날 아이는 행복할까요?”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정부가 성평등과 노동시간 단축 등 구조적 문제에 집중해 돌봄의 질을 높일 구상은 하지 않고, 자꾸 본질을 회피하려 한다는 점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 논란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세 줄 점선면

▶ 정부가 ‘저출생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에요.

▶ 가사노동에 대한 몰이해·저평가가 돌봄영역에서 고질적인 저임금 문제로 이어지고, 돌봄의 질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어요.

▶ ‘자녀 돌봄’을 직접 살뜰하게 맡고 싶은 부모의 욕구를 존중해, 성평등과 노동시간 단축을 조화시켜달라는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열어야 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외국인이 출생률을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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