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초법적 억압’에 반발

류인하 기자

인터넷 자율기구의 이유 있는 항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게시물 삭제권고에 대해 한국인터넷자율기구(KISO)가 거부 결정을 내리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의 자율적 운영기구인 KISO가 정부기관의 기준이 모호하고 일방적인 삭제 요구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정부기관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초법적 삭제요구 거부= KISO는 방통심의위의 게시물 삭제권고를 거부하면서 심의 결론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경찰이 지난달 말 포털에 천안함 관련 의혹을 담은 인터넷 게시물의 삭제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KISO는 “허위사실·불법·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근거나 소명이 없어 실정법에 어긋난다”며 “이 게시물은 개인적 의견을 제시한 단순 의혹제기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공공기관이 관행적으로 되풀이해온 일방적인 게시물 삭제요구에 대해 쌓였던 불만과 우려가 표출된 것이다. KISO는 포털에 대한 경찰의 공문 발송에 대해서도 게시물의 인터넷주소와 허위 근거, 공익을 해할 목적을 소명토록 하는 등 4가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오히려 정부를 대신해 KISO가 객관적인 운영 틀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행정청’에 해당한다”= KISO의 이번 대응은 행정청이나 다름없는 방통심의위가 모호한 규정과 근거로 게시물 삭제를 요구해온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기구이고 심의·의결 사항은 권고적 효력만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포털은 “방통심의위가 게시물의 삭제 등 시정요구를 할 경우 그대로 따라왔다”며 행정처분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왔다고 밝혔다. 경찰 등 공공기관의 일방적 공문 발송과 방통심의위의 권고조치가 도를 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판단이 이번 강경대응의 배경이 된 셈이다.

KISO의 이런 움직임에는 방통심의위를 ‘행정청’으로 판단한 법원의 판결도 뒷받침이 됐다. 행정법원은 지난 2월 국산 시멘트의 위험성을 알리는 58건의 인터넷 게시글을 올려 방통심의위로부터 삭제 권고를 받은 환경운동가 최모 목사가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방통심의위를 ‘행정청’으로 인정했다. 게시자가 방통심의위의 삭제요구를 받았을 경우 권리구제를 위해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성동진 KISO 사무차장은 “이번 정책·심의 결정은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방통심의위의 시정명령에 대해 법적구제 절차조차 없는 법 공백을 KISO가 메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헌조항 개정논의 속도 붙을 듯= KISO의 입장 표명으로 정보통신심의규정 개정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방통심의위 내부에서도 줄곧 심의규정의 독소조항을 삭제·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사실상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12월 심의규정 개정 공청회를 갖고 초안도 마련했지만 성과 없이 6개월 넘게 방치해 왔다. 이번 천안함 관련 게시물 삭제요청의 근거가 된 심의규정 제8조 3항 ‘아’목도 ‘기타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라는 모호한 표현과 기준으로 끊임없이 위헌 논란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방통심의위는 위헌논란이 있는 조항을 근거로 4건의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가 KISO의 반발에 부딪혔다. 방통심의위의 한 인사도 “천안함 관련 게시물을 위헌논란이 있는 정보통신심의규정 제8조 3항 ‘아’목으로 판단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어떤 글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인지 기준도 없이 심의위 회의만으로 삭제 여부를 검토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 내부에서는 포털의 자율규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이 되는 제11조 4항·5항도 법적 근거 없이 신설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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