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브라

장은교 기자

한국 여성 31명이 들려준 ‘나의 탈브라 이야기’

[커버스토리]굿바이, 브라

김지우씨(26·가명)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다. 매일 입지 않은 것은 3년, ‘간헐적 탈(脫)브라’를 한 것은 5년쯤 됐다. 처음엔 건강 때문이었다.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피부온도조절이 잘 안되고 땀이 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브래지어를 하면 속옷 모양 그대로 몸에 습진과 상처가 생겼다. 병 때문에 취업을 포기해야 할 만큼 심각했지만, 병원에서도 탈브라는 선택지로 두지 않았다. 의사는 “그 정도는 입으셔야…, 참으셔야…”라며 땀이 잘 흡수되는 면 재질의 옷을 입으라고만 했다.

지우씨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브래지어를 벗었다. 처음엔 집에서, 나중엔 외출할 때도 용기를 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나간 첫날은 모두가 자신만 쳐다보는 것 같아, 가방으로 가슴을 가리거나 더위에도 카디건을 껴입고 어깨를 잔뜩 구부렸다. 니플패치(유두를 가려주는 반창고)를 붙여보기도 했지만, 접착제 때문에 습진이 올라왔다. 탈브라 이후, 상처도 가려움도 사라졌다.

지우씨는 문득 궁금해졌다. 브래지어를 왜 꼭 해야 하는 것일까. 왜 여성의 가슴이 거의 드러난 드레스는 박수를 받고, 유두가 드러나면 ‘노출사고’이자 ‘음란물’이 되는가. 남성의 유두와 달리 여성의 유두는 왜 반드시 가려야 하는가. 왜 여성의 가슴은 남성의 가슴과 다르게 ‘취급’되는가. 왜 여성에겐 브래지어를 입고 벗을 선택권이 없는가.

경향신문은 6월3일부터 14일까지 탈브라를 선택한 여성 31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대면·전화·e메일로 진행됐고, 일부는 실명 대신 닉네임을 사용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한국에서부터 덴마크와 네덜란드에 사는 유학생, 교민까지. 이들은 각자의 고민과 경험을 통해 탈브라를 실행하고 있다. ‘매일 탈브라’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주말 탈브라’ ‘겨울 탈브라’처럼 간헐적 탈브라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타의에 의해 탈브라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여성의 가슴을 가리라고 하는 사회, 가린 것(브래지어)도 가리라고 하는 사회, 방송인 전현무씨의 튀어나온 유두는 예능프로그램의 개인기가 되고, 설리씨의 노브라는 자극적인 실시간 검색어가 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탈브라를 ‘감행’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부러운 것이었다가…부끄러운 것이었다가…음란한 것이었다가
결국 족쇄가 됐다

여성 비주얼아티스트 그룹 ‘불화자(不和姉·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는 지난 달 24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전시 ‘아무生대잔치’의 클로징 파티에서 오랫동안 별러온 이벤트를 벌였다. 브래지어 커팅식이었다. 4명의 아티스트가 각각 옷 위에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가, 가위로 와이어와 캡을 잘라냈다. 20여명의 관객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소외된 생명들의 삶을 다루는 이 예술가그룹은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묘한 웃음을 퍼뜨린다. “안녕하세요. 불화자(부라자)팀입니다,” 팀 로고도 성난 브래지어(사진) 모습이다. 불화자팀의 한솔비 작가(25)는 “미술사에서 여성은 벗어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누드모델 등)로만 소비됐는데, 우리는 여성이 주체가 된 미술을 하고 있다”며 “공적인 자리에서 ‘부라자’라고 말하고, 속옷을 자르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재미도 의미도 있는 작업이었다”라고 말했다. 불화자팀의 작가들은 ‘매일 탈(脫)브라’ 또는 ‘간헐적 탈브라’를 실행하고 있다.

몸을 짓누르던 코르셋 대신 브래지어가 발명된 것은 1914년. 지난 100여 년 동안 여성에게 브래지어는 부러운 것이었다가 부끄러운 것이었다가 음란한 것이었다가 결국 족쇄가 됐다. 브라를 처음 만나고 브라와 함께 살다 탈브라를 결정하기까지 한국 여성 31명이 들려준 ‘나의 탈브라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부러웠던, 부끄러웠던 첫 브라

어릴 땐 안경 쓰는 것도 부러웠던 것처럼 처음엔 브래지어를 한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고, ‘진짜 여자’가 되는 것 같았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처음으로 면으로 된 브래지어를 사주셨어요. 설레고 신났는데 그런 마음은 잠깐이었어요. 이 답답한 걸 계속 하고 있어야 한다고?

중학교 때 매일 아침 담임이 브래지어 검사를 했어요. ‘남자쌤’이었는데 손바닥으로 등을 한번씩 훑고 지나갔죠. 브라를 안했거나, 짙은 색 브라를 입으면 벌점을 받거나 청소를 했어요. 남자애들은 브라자국을 보겠다고 물총을 쏘거나 뒤에서 브라 끈을 잡아당겼죠. 뒤에서 보면 교복 안에 브래지어 끈 두 개, 내의 끈 두 개가 보인다고 남자애들이 ‘1111’이라고 놀렸어요. 그때부터였어요. ‘브라는 부끄러운 것’ ‘브라를 하지 않으면 혼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브라를 해야 하는데, 한 걸 들키면 안 되는 거죠.

초등 5학년 때 엄마가 사준 선물
처음엔 신났는데 그건 잠깐이었죠
중학교 때는 브래지어 검사했는데
짙은 색은 벌점…드러나면 안돼?

풀었더니 소화불량이 사라졌는데
착용 안 하면 엄마·오빠에 혼나고
유방암 수술한 사람도 해야 하고
그렇다면 브라는 누굴 위한 걸까?

중학교부터는 완전히 공적인 규제의 영역이 된 거에요. 브라를 안하는 게 수치스럽고 처벌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어요. 여성의 2차성징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감추라고 배우잖아요. 생리도 그렇고 브래지어도 그렇고요. 흰색 브래지어 끈도 교복 밖으로 보이면 여자선생님이 다가와서 “끈 보여…”라고 조심스럽게 알려줬어요. 엄마랑 마트에 가서 브래지어를 사면 다른 물건들 맨 아래에 안보이게 담았어요.

여자 친구들끼리도 가슴이 큰 친구를 부러워했던 것 같아요. 누군 A컵, 누군 B컵이라고 시험 성적마냥 떠들어댔어요. ‘가슴 커지는 법’을 검색해보기도 했어요. 가슴이 작으면 남자애들이 ‘절벽’이라고 놀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이상한 일이에요. 남자들도 성기 사이즈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커 보이려고 뽕을 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TV에서 본 브래지어 광고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여성의 가슴은 크고 가운데로 모아지고 쳐지면 안 된다고. 허리와 팔다리는 가늘어도 가슴만은 커보여야 한다고. 좋은 브래지어는 크고 모아진 가슴을 만들어주는 브래지어라고. 반복적으로 세뇌당한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이미 와이어 브라를 한 친구들도 많았어요.

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불화자’ 팀 로고.

세상과 불화하는 자매들 ‘불화자’ 팀 로고.

■브라와의 불화

브라를 하고 있다가 와이어가 튀어나와서 가슴이 찔린 적이 있어요. 그때는 풀어버릴 생각은 못하고, 와이어를 다시 안쪽으로 밀어넣고 있다가 집에 가서 풀었어요. 브래지어 가운데 부분이 명치랑 연결되잖아요. 늘 소화불량이었어요. 답답하고, 아프고. 그런데 어느 날 너무 소화가 안돼서 답답해하다가 집에 가서 브라를 벗으니까 갑자기 속이 확 뚫리는 거예요. 특히 여름엔 브라 자국대로 몸에 땀띠가 올라오기도 하고 간지러웠어요. 빨갛게 자국이 남았죠.

우리 몸은 다양하잖아요. 가슴이 벌어진 사람도 있고, 양쪽 크기가 다른 사람도 있고요. 척추측만증이라는 병이 있는데 한쪽 등에 살이 많아서 툭 튀어나와 보여요.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브라를 하면 너무 조여서 아프죠. 그런데 한국의 브래지어들은 그런 몸의 다양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잖아요. 가슴이 작은 사람은 작은 대로, 큰 사람은 큰대로 자기 몸에 잘 맞는 브래지어를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결국 해외직구 사이트를 알아봐요.

여성의 겉옷도 그렇잖아요. 66사이즈를 넘어가는 옷 찾기가 쉽지 않아요. 브래지어도 마찬가지죠. 적당히 커보이게, 누가 누가 더 가운데로 잘 모아주나. 이런 정형화된 가슴모양을 만들어주는 것 말고, 건강을 위한 기능은 거의 없어요. 성장기 때 안 맞는 브라를 잘못해서 가슴 모양이 이상해졌다고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남자들은 이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친한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이랑 얘기하는데, 브라 때문에 너무 답답하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여자들도 가슴 커 보이고 싶고 예쁜 속옷 입고 싶은 거 아니었어?”라고요. 이 갑갑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엄마 친구 분 중에 유방암수술을 해서 한쪽 가슴의 3분의 1을 절제하신 분이 있는데. 그분도 여전히 브래지어를 하고 다니세요. 덥고 불편하고 건강에도 안 좋을 것 같지만,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외출한다는 것이 남사스러우시대요. 병원에서도 브래지어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걸로 얘기하더래요. 수영할 때도 수영복 안의 브라 캡이 물에 젖으면 꼬이고 무거워지잖아요. 빨기도 힘들고요.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 브래지어는…?

■브라 없이 처음 나간 날

처음엔 어깨를 펴기도 힘들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제 가슴만 보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면, 앉아있는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제 가슴에 꽂히는 것 같았어요. 여름인데도 겉옷을 입고 다녔어요. 반팔티셔츠 안에 흰 내의를 겹쳐 입어서 더 덥기도 했어요. 앞에 사람이 다가오면 저도 모르게 팔짱을 끼거나, 가방으로 가리기도 하구요. 한동안은 어깨가 더 굽어서 아프기도 했어요. 전 더운 게 너무 힘들어서 여름에 시작했지만, 보통 탈브라 하는 친구들은 겨울에 많이 해요. 티가 덜 나니까요. 초기엔 어두운 색 옷이나 화려한 무늬가 있는 옷만 입었어요. ‘탈브라존’은 조금씩 넓혀갔어요. 동네 슈퍼, 커피숍까지 나갔다가 그 다음엔 버스와 지하철, 학교, 영화관까지 점점 용기를 냈어요. 웃기죠? 제가 제 가슴으로 돌아다니는데도 너무나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어요.

좋은 점이요? 전 제가 선천적으로 위가 약한 줄 알았어요. 근데 브라만 풀었는데도 소화불량이 사라졌어요. 차멀미도 덜해졌고요. 브라 자국을 따라 생기던 땀띠와 습진, 가려움도 사라졌어요. 일단 너무 편해요. 자유로워서 자유가 뭔지 잊었다고 해야 할까요.

불쾌한 경험도 당연히 많았죠. 한번은 동네 슈퍼에 나갔는데, 앞에 계시던 어르신들이 “말세네, 말세”라고 하시더라고요. 술 취한 남자들이 “꼭지 보인다”고 희롱하는 말도 들었어요.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제 가슴과 얼굴을 번갈아 뚫어져라 보는 사람도 있었고요. ‘시선강간’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일을 겪으면, 소심해져서 며칠간은 다시 스포츠브라나 브라렛(와이어나 패드가 없는 홑겹의 브라)을 입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한번 탈브라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블라우스 같은 걸 입어야 하는 자리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브래지어를 했는데, 그런 날엔 아침부터 짜증이 났어요.

사실 탈브라의 가장 큰 장벽은 가족이었어요. 엄마도 집에 오면 당장 브래지어를 벗으면서, 저를 얼마나 단속하고 혼냈는지 몰라요. 한번은 가족끼리 외식 하러 갔다가, 아빠 앞에서 등짝을 맞기도 했어요. 브래지어를 하면 제가 얼마나 아프고 불편한지도 말씀드리고, 남의 가슴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결론은 항상 같았어요. “그래도 세상이 안 그렇잖니.” 엄마 세대에선 여성의 몸은 감춰야 하는 것, 음란한 것이었기에 말이 잘 통하지 않았어요. 브라를 하지 않으면 ‘가슴 쳐진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브라가 가슴 처짐을 방지하는데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어요. 그리고 가슴이 쳐지면 왜 안 되는 걸까요.

얼마 전에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있었잖아요. 엄마가 그 사건을 얘기하면서 피해여성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거예요. 짧은 바지를 입었다고요. 엄마가 저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왜…언제까지 가해자 때문에 피해자가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생각지도 못하게 저를 단속했던 사람 중엔 남동생도 있었어요. 한번은 남동생 친구가 집에 왔는데, 동생이 저를 부르더니 그러더라고요. “집에 남자가 왔는데, 그러고 있을 거야?” 자기는 덥다고 웃웃을 다 벗고 있으면서요.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제 언니는, 올해 초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탈브라를 포기하게 됐어요. 저는 그저 불편해서 시작했지만, 언니는 2016년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탈브라를 결심했어요. 중국에서부터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3년 가까이 잘 했는데, 직장에 들어가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래요. 회사에서 어떤 여성 직원 분이 “어머, 너 안 했지? 다 티나!”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얘기하니까 다른 직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어서 “진짜? 진짜”하며 구경거리로 삼더래요. 혹시라도 남성 직원들이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 입에 오르내릴지, 성적으로 문란한 대상으로 보거나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게 될까봐 확 두려움을 느꼈대요. 슬프죠. 언니는 이제 ‘주말 탈브라’만 하고 있어요.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전현무는 되고, 설리는 안 되는 것? YOU DO!

탈브라를 하는 사람들 중에 니플패치(유두를 가리는 반창고)를 이용하는 여성들이 많아요. 트위터에서 탈브라를 위한 팁을 공유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패치가 땀이 덜 차고 덜 아프다고 추천해주기도 하죠. 제가 여러 가지를 써봤는데요. 어떤 패치도 오래 하고 있으면 땀이 고여요. 접착제 성분이라 피부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고요. 탈브라 여성들이 보통 스포츠브라, 브라렛, 브라캡이 달린 내의, 니플패치 등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요. 탈브라의 성공 여부가 유두를 잘 가리느냐, 아니냐로 판가름되기도 해요.

전 요즘 니플패치도 안 쓰고 있어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모두가 가슴 어딘가에 유두가 있는 것을 다 아는데…왜 꼭 여성의 유두만 가려야 하는 걸까요. 투명 끈까지 만들어서 브래지어 끈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셔츠 안에 유두를 가리는 캡을 넣어서 피부를 이중 삼중으로 갑갑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전현무·유재석은 유머로 통하고
설리의 사진은 비난받아야 할까?

안녕하세요, 우린 불화자입니다
파티서 브라를 잘라, 버렸지요

방송인 전현무씨는 자신의 유두가 돌출돼서 잘 보이는 것을 개인기로 삼고 자유롭게 얘기하잖아요. 유재석씨도 유두 위치가 남다르다는 것을 웃기는 대화 소재로 삼았죠. 그런데 왜 설리씨(가수 겸 배우)는 유두가 옷 위로 드러난 사진을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공격을 받아야 할까요. ‘설리 노브라’가 실시간 검색어가 되고, ‘아집’이라고 표현한 기사도 봤어요. 저는 설리씨가 여성들을 대신해서 니플프리 운동을 해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고맙고 응원하고 싶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떤 여성이 올린 글을 봤어요. 시댁 식구들이 거실에서 수유를 하라고 했대요. 시아버지도 있는 자리에서요. 여자 가슴은 반드시 가려야 하는 거라더니, 엄마는 여성이 아닌가요? 왜 수유하는 사람의 생각은 배려하지 않는 거죠?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여성의 유두는 노출하면 안 되는데 예외가 있어요. 유방절제수술을 받았거나, 수유중인 여성. 왜, 누구 맘대로 그렇게 정한 거죠?

손녀를 봐주는 할머니가 있는데요. 낮에 내내 브라를 하지 않고 있다가, 저녁 7시만 되면 브라를 껴입는데요. 사위 보기 민망하다는 거죠. 브래지어가 매너라고 생각하는 사회니까요.

옆집에 9살 된 딸을 키우는 분이 있어요. 그분은 임신과 출산, 2년간의 수유를 경험하면서 가슴 모양과 크기에 변화를 겪었대요. 그때마다 맞는 브라를 찾아 하는 것도 힘들고 불편해서 탈브라를 하기 시작했대요. 9살인 딸도 곧 브래지어를 강요받는 시기가 올 텐데, 그때도 역시 딸의 선택을 존중하겠대요.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유두가 손가락이랑 다른 게 뭘까요. 장갑을 끼지 않았다고 욕하진 않잖아요. 왜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가슴을 거의 드러낸 드레스는 박수를 받고, 유두가 노출되면 ‘사건사고’가 되는 거죠. 정말 기괴해요. 왜 여성의 유두만 야하게 보는지. 왜 나는 젖꼭지를 가려야 하며, 가린 것도 가려야하며. 그런 것들이 너무 이상한데도 그걸 모두가 다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해요. 미국 타임지가 브라에 대해 이렇게 평했어요. “브라 100년의 역사는 탈브라(taking off bras)의 역사”라고요.

탈브라는 벗든지 입든지 선택권은 자신에게…고정관념 벗기다

■나의 가슴은 음란하지 않다

아프고 답답해서 시작했지만, 탈브라는 제 마음까지 많이 바꿔줬어요. 브래지어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지’ ‘그럼 좀 어때’라는 심리적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여성의 가슴은 누군가의 성적대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제 가슴은 그냥 제 가슴이죠. 제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돼서 좋아요. 출산한 배우들 사진에 꼭 그런 제목이 붙잖아요. ‘애 엄마 맞아?’ 저도 전에는 늘씬한 배우들을 보면 부러워하며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스트레스를 받곤 했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걸 보면 씁쓸해요. 애 엄마의 몸은 어때야 한다는 걸까요. 아름다운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요. 저는 이제 ‘소위 아름다운’ 몸보다는 건강한 몸을 갖고 싶어요.

유럽에 사는 친구들 얘기를 듣고 부러웠던 적이 있어요. 물론 그곳도 성차별,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만 한국보다는 타인의 몸과 외모에 대한 간섭이 훨씬 적은 것 같더라고요. 제 친구는 한국에서부터 간헐적 탈브라를 하다가, 덴마크로 이민을 갔는데요. 한국처럼 탈브라가 무슨 사회현상이다 아니다 얘기하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래요. 브래지어를 입고 말고는 당연히 개인의 영역으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그랬어요. 브라를 입고 벗고가 사적인 영역인지 공적인 영역인지 구분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일이 한국에선 너무 많잖아요.

네덜란드에서 유학중인 친구는 특히 한국사회가 여성의 외모에 대해서 너무 많은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대요. 한국에 잠깐 왔을 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여성 직원들에게는 화장부터 하이힐까지 규제가 많더라는 거예요. 그 친구도 한국에서 탈브라를 할 때는 움츠러들고 가슴을 자꾸 가리곤 했는데, 네덜란드에는 자연스럽게 탈브라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보니 비로소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대요.

그만큼 연대와 지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뭔가 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했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행히 주위에 탈브라를 간헐적(주말, 겨울, 집 근처)이라도 실행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제가 처음 망설일 때도 한 친구가 “너도 해. 진짜 편해. 뭐 어떠냐?”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제 남자친구의 반응도 마음에 들었어요. 저의 탈브라 선택에 대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호들갑스럽게 지지한다고 했다면 오히려 좀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탈(脫)브라’를 실행 중인 신민주씨와 양지혜씨가 ‘브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강윤중 기자

‘탈(脫)브라’를 실행 중인 신민주씨와 양지혜씨가 ‘브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강윤중 기자

■탈브라든 유브라든 강요하지 마

“너 페미니스트야?” 탈브라를 한다고 하면, 요즘 이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 머리만 짧게 잘라도 ‘너 탈코(탈코르셋)하냐?’라는 말을 듣는 분위기잖아요. 네. 저 페미니스트에요. 여성과 남성이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라는,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것도 본인이 의지에 반해 강요되지 않는 세상을 지지해요.

그렇지만 탈브라도 유(有)브라도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슴이 큰 여성들은 적절한 브래지어를 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하대요. 운동할 때는 저도 스포츠브라를 착용해요. 중요한 건 브라를 입을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거죠. 브래지어를 하는 것이 좋으면 하는 거죠. 한국에서도 점점 편하고 내 몸에 맞는 속옷을 찾으려는 이들이 많아졌잖아요.

세상은 바뀔 수 있고,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2017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여성의 가슴 노출만 처벌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왔어요. 여성이 가슴을 노출하는 의도와 상관없이, 여성의 가슴 자체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거죠.

한국의 현행법도 여성이 가슴을 노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조항은 사실 없어요. 경범죄 3조 33항은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ㆍ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을 처벌하도록 돼있어요. 여성의 가슴 노출을 보고 누군가 부끄러움과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건 여성의 문제일까요 그 시각의 문제일까요.

한국 경찰은 지난해 6월 페이스북코리아 본사 앞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이 실행한 상의노출시위 참가자들에 대해 경범죄와 공연음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어느 조항으로도 처벌하긴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지난 5월 속옷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이 19년 만에 TV 패션쇼를 폐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묘한 승리감도 느껴졌어요. ‘엔젤’이라고 불리는 8등신 모델들이 등장하는 그 유명한 쇼 아시죠. 섹시함과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을 정형화시키는 상징같았던 쇼를 더이상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니, 정말 세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가슴은 가슴일 뿐이고, 브라는 브라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어요. 브래지어의 유무가 여성이냐 아니냐, 매너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 탈브라를 좀 더 많은 여성들이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수근거린다 해도 많은 여성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마음으로 이 이상한 세상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일 수 있기를…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 소중한 사람들이니까요.

-탈브라 이야기를 들려준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는 닉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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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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