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면접 조작, 통역관만의 문제일까

이하늬 기자
지난해 8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 압둘라흐만 자이드가 힘든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지난해 8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 압둘라흐만 자이드가 힘든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2011년 수단공화국에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아랍의 봄’ 물결이 일었다. 마카(가명)는 2011년 6월 5일, 대학 내에서 일어난 비리를 언론에 폭로했다. 대학교수들이 집권여당에 가입한 학생들에게 기말고사 문제를 유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마카는 반정부 인물로 찍혔다.

그리고 2014년 1월 경찰에 체포됐다. 재판부는 마카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마카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마카는 한 달 동안 구타와 고문, 살해협박을 받았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늘 쫓기며 지냈다. 2015년 10월, 마카는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2016년 1월, 마카는 서울출입국사무소에 난민인정신청을 했다. 면접은 난민인정신청 심사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사 절차다. 이 면접에서 작성된 조서를 기준으로 법무부나 지방 출입국이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마카는 면접 도중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통역관의 아랍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통역관 역시 마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마카가 이에 대해 문의하자 통역관은 “면접이 끝나고 말해주겠다”고만 답했다고 마카는 주장했다.

면접이 끝날 무렵, 통역관은 조서를 내밀며 제일 아래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마카는 “아직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사인을 하기 싫다”고 말했으나 통역관은 서명을 하면 설명을 해주겠다고 답했다. 서명을 한 다음, 설명을 요구하자 통역관은 시간이 다 돼서 설명을 해줄 수 없다면서 가버렸다. 면접이 그렇게 끝났다.

면접 끝나고 설명해주겠다더니…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1차 신청에서 마카는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마카는 한국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의신청을 준비했다. 이의신청을 하려면 출입국관리소에서 자료를 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관련 자료는 모두 한국어다. 변호사는 조서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진술이 조작돼 있었다.

해당 조서에 따르면 난민신청 사유를 묻는 질문에 마카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일을 해 돈을 벌기 위해 난민신청을 했다”고 대답한 것으로 돼 있다. 언제 귀국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국에서 일을 해 돈을 많이 벌면 수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쓰여 있다. 마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마카뿐이 아니었다. 난민인권센터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2016년과 2017년, 아랍어권 난민신청자들로부터 면접조서에 자신이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문의를 받았다. 관련 사례를 모아보니 면접조사는 거의 복사한 듯했다. 그리고 조서 아래에는 모두 장모 통역관의 서명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6월 장 통역관이 통역한 면접조서에서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난민신청을 했다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돈을 많이 벌면 자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 유사하게 기재돼 있다며 마카의 난민 불인정을 취소했다.

이집트 시민혁명에 참가했다가 본국을 떠난 사브리(33) 역시 장 통역관을 통해 면접을 치렀다. 시민혁명 이후 무바라크 정권이 퇴진하고, 사브리는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시민단체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1년 뒤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사브리의 입장도 뒤바뀌었다. 이집트를 이끄는 시민단체의 일원이다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수배 대상이 돼 있었다. 2013년 7월의 일이다. 사브리는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가 2016년 7월 한국에 왔다. 그 역시 면접이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면접을 진행한 공무원은 사브리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지를 확인한 후부터 “제대로 행동하라”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라” “어떤 증거도 인정하지 않는다” “입 다물어라”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장 통역관은 사브리에게 “스스로를 동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브리는 맥락을 알 수 없어 답하지 않았다.

사브리 역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2017년 7월, 두 번째 난민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때 첫 번째 면접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면접관이 첫 번째 신청 당시 조서를 설명해줬는데 자신이 처한 상황과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브리는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작된 조서에는 사브리가 작성한 난민신청서의 사유는 자신이 겪은 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며, 그렇다면 “난민을 신청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브리가 “한국에서 무비자로 쉽게 입국이 가능해 (한국에) 와서 난민신청을 하고 싶었다”고 답한 것으로 돼 있었다.

본국에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 하지만 현재 이집트에는 일자리가 없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고 체류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면서 “해외에서 일하는 형도 한국에 불러 체류하며 일을 하고 싶다”고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사브리의 쌍둥이 형제는 당시 이집트 감옥에 수감 중이었다.

조작된 난민 면접 조서/ 난민인권센터

조작된 난민 면접 조서/ 난민인권센터

“부실함 넘어 고의로 보여져”

난민법은 제14조를 보면 ‘면접과정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통역인으로 하여금 통역하게 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난민법 시행령 제8조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난민 전문 통역인’이라 한다)으로 하여금 면접과정에서 통역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장 통역관은 아랍어를 부전공한 대학원생이었다. 그를 거친 난민신청자들은 “통역관이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자리에 있던 공무원 역시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였다고 기억했다. 심지어 면접를 진행한 공무원이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 이도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이 법무부가 확인한 건만 57건에 이른다는 점이다. 난민인권센터가 파악한 결과 연루된 공무원은 3명이며, 이 중 최소 18건에 장 통역관이 통역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이 이번 사건을 통역관, 공무원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서울출입국사무소, 나아가 법무부까지 조작을 묵인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난민인권센터의 김연주 변호사는 “윗선의 묵인 없이 통역관 한 명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의 조서를 조작할 수 없을뿐더러 설사 통역관의 조작이 있었다 해도 심사관이나 법무부가 제대로 살펴봤다면 복사한 듯이 똑같은 면접조서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며 “부실함을 넘어 고의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실 심사’라고 하면 면접을 진행한 공무원과 통역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게 되는데, 통역관 한 명이 이를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을뿐더러 연루된 공무원도 한 명이 아니라 3명이라면 ‘조작’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루된 공무원 3명과 통역관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를 겪은 난민 인정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사건을 대리한 권영실 변호사는 “담당공무원과 통역관에 대한 형사고발보다는 난민법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징계처분할 예정”이라는 입장만 내놓은 상황이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는 오는 7월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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