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된 개강’···그럼 등록금도 깎아주나요?

김찬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학 개강이 연기되면서 등록금, 종강일정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줄어든 수업만큼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지만 대학들은 “보강을 한다”거나 “교육부가 지침을 주지는 않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5일 교육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 대학에 4주 이내 개강연기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지난 11일 기준 104개 대학이 개강연기에 동참했다. 하지만 늦춰진 개강 일정에 따른 대책을 두고 학생과 학교 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학은 “보강을 하기 때문에 학습권 침해는 없다”는 입장인 반면, 학생들은 “질적 변화가 생겼으니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추가 발생하자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언어교육원에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개강 연기 안내문이 붙어있다. 학부 중국인 유학생만 1천200여명에 달하는 건국대는 방학 중 국내로 돌아오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기숙사 전체 5개 동 가운데 1개 동을 별도로 배정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추가 발생하자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언어교육원에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개강 연기 안내문이 붙어있다. 학부 중국인 유학생만 1천200여명에 달하는 건국대는 방학 중 국내로 돌아오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기숙사 전체 5개 동 가운데 1개 동을 별도로 배정했다.  |연합뉴스

■대학 “등록금은 내릴 수 없다”

각 대학들은 “개강은 연기하겠다”면서도 ‘등록금 인하’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등록금 인하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며 “법으로 정한 수업시간을 채울텐데 등록금 인하를 할 이유가 있냐”고 말했다. 이는 원래 4개월로 계획된 수업을 과제물 대체 등으로 3개월 만에 끝낼 수 있다는 논리다. 수업의 질적인 부분은 고려되지 않았다. 서울대는 12일 개강을 2주 연기했다.

고려대는 지난 10일 학교 홈페이지에 “개강을 2주 연기하고 종강은 1주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이로인해 16주 수업에서 15주 수업으로 단축됐다. 고려대 관계자는 “보강 수업을 해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켜줄 것”이라고 밝혔다. ‘등록금 인하는 고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세부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연세대 역시 개강을 2주 연기하고, 종강은 1주 연기한다. 연세대 관계자는 “원래 학기 중에 자율학습 기간이 있다”며 “이 기간을 활용해 보강을 하든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등록금 인하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동국대의 경우 개강만 2주 연기한다. 이에따라 수업은 15주에서 13주로 줄어든다. 동국대 측은 “개강연기에 따른 2주분 수업은 종강 이전에 모두 시행하게 된다”며 “형태는 보충강의, 온라인 강의, 과제물 대체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등록금은 그대로다. 보강수업을 하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논리다.

모든 대학이 동국대처럼 입장이 분명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 관계자는 “먼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 알아보라”며 “그쪽에서 정해지는대로 대부분 대학들이 따라가게 된다”고 밝혔다.

대학들이 수업 ‘주차’가 아닌 ‘총 시간’을 말하는 것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4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학점당 15시간 이상만 수업하면 된다”고 규정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일주일만에 한 학기 수업을 끝낼 수도 있다.

■학생 “수업에 변화 생긴만큼 등록금 내려야”

교육부는 12일 오후 “개강을 연기한 대학은 주중 아침·야간, 주말, 공휴일을 이용해 수업시간을 편성하라”며 “대학이 온라인 강의와 같은 ‘원격수업’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ㄱ씨는 “학생들 각자 사정이 다른데 어떻게 학생들을 주말, 공휴일에 모으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과제물이나 온라인 강의 대체가 기존 수업과 동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ㄴ씨는 “등록금을 올릴 때는 경영논리를 적용하더니 등록금을 내려야 할 때는 ‘학습권 보장’을 방패로 들고 나온다”며 “기존과 상황이 변했으면 자본 논리에 따라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대학이 강조한 ‘자본논리’를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해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대외협렵국장은 “학교마다 개강연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고, 학생들도 각자 입장이 다르다”며 “등록금 인하 등을 포함해 교육부가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할 최선의 방법을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교육부는 “등록금이나 수업은 대학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별 학교가 수업을 충실하게 했는지 아닌지는 교육부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며 “당연히 대학에서 알아서 수업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보여주는 대학 운영논리

개강 일정 연기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갖는 의미를 보여준다. 그동안 대학은 ‘교육 서비스 수준만큼 돈을 받겠다’는 경영논리를 등록금의 근거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등록금 인하 요인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대학은 경향신문에 ‘학습권 침해’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대안이 기존 수업과 동일한 질적 서비스인지 어떻게 확인하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지 않았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등록금은 기존 15-16주차 수업을 토대로 계산된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맞다”면서도 “적절한 보강을 해서 학습권 침해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 진학은 사회진출 전 의무단계가 됐다. 동시에 서열화된 대학은 ‘학생의 성적대로 대학이 결정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수요자의 선택’이라는 자본주의 논리는 대학에서 작동되지 않는다. 학생은 교육 서비스의 수요자인데 공급자인 대학이 정하는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일부 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개강 연기는 상관없지만, 방학 연기만은 안된다”는 글을 올렸다. 대학은 등록금을 내리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기대 없음’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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