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공자가 41년만에 펴 낸 시집 <봄바람은 홍익을 품었네>

글·사진 박용근 기자
광주민주화 운동 41주년을 맞아 시집을 낸 이승희씨가 19일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광주민주화 운동 41주년을 맞아 시집을 낸 이승희씨가 19일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이승희씨(61·월간전북 기자)가 민중항쟁 이후 41년간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한 권의 시집에 담아냈다. 22일 전주기접놀이전수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시집 <봄바람은 홍익(弘益)을 품었네(더이룸)>는 그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100여편의 육필시가 실려 있다.

이 시들은 1980년 5월 민중항쟁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이 투영돼 있다. 5.18 민중항쟁의 아픔과 이를 통해 이뤄 냈던 시민공동체 대한 희망, 민주화 여정을 밟아 나가는 국가에 대한 애정이 주 내용이다. 그는 시문학계에 등단한 시인은 아니다. 그의 시들이 투박하지만 절절히 느껴지는 이유다.

“보리밭 서럽게 익었지/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나는 김제 부량 당숙댁에서 잽혔네/보리 베고 들어와 낮잠 자던 나는/파자마 차림으로 일어나 도망 갈 궁리를 하였네/(중략) 부량벌판 보리밭 서럽게 피었지/동진강은 부안 보리밭과 김제 보리밭 사이로/고요히 흐르고 있었네”

시집에 수록된 ‘보리밭’ 일부다. 1980년 6월9일 전북 부량 친지집에 도피해 있던 그는 급파된 형사대에 의해 체포됐다. 당시 피끓는 심경을 글로 남겼다.

전북대에 재학중이던 그는 1980년 전주지역에 광주학살의 진실과 전두환 군부의 음모를 최초로 알린 사람중 한 명이었다. 5월 24일 전주시내에 처음으로 살포된‘전주시민에게 드리는 글’ 제하의 유인물 최초 작성자가 이씨였다. 이 유인물은 전북대 최순희씨(독어독문학과 78학번, 1992년 작고) 등과 인쇄작업에 들어갔고 새벽 4시쯤 전북대 학생회관 농성장에서 규합된 학생 50여명에 의해 전주시내 곳곳에 2000여장이 배포됐다.

그는 하루 앞서 광주를 탈출해 전주에 온 김현장씨(르포 무등산 타잔 작가)와‘전두환의 광주 살육작전’이라는 유인물을 담은 두 개의 대형 가방을 한상렬 목사(통일운동가) 집으로 운반했고, 이 중 일부는 최순희, 박영식씨 등과 함께 중앙시장 등 전주지역에 뿌렸다.

이 일로 그는 전국 지명수배됐다. 6월 9일 체포된 이 씨는 계엄법 위반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그는 광주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복역한 뒤 1981년 4월17일 공주교도소에서 석방됐다. 그의 삶은 출소 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전북대 졸업장은 10년이 흐른 지난 1987년에 받았다. 대기업행을 접고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내일신문 창간위원,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북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 씨는 매일 화를 끓이며 모악산을 오르던 중 기(氣)수련에 눈을 뜬 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씨는 “1980년 5월 민중항쟁에서 보고 느낀 공동체에 대한 희망과 사랑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이롭게 하는 시대정신으로 승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아 뒀던 시를 책으로 냈다”고 소회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세대교체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교체”라며 “패권주의, 황금만능주의, 뜬구름같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널리 인간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정신(弘益精神)으로의 시대정신 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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