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이 엄마 때문이라고? 무지와 차별, 투쟁 담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이혜인 기자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존 돈반·캐런 주커 지음, 강병철 옮김|꿈꿀자유 |864쪽|4만원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1930년대부터 2010년대 까지 약 80여년 동안 사회가 ‘자폐’라는 의학적 개념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일들을 다뤘다. 1940년대만 해도 자폐는 ‘냉담한 부모’ 탓으로 여겨진 것에서 보여지듯이 자폐의 역사는 곧 무지와 차별의 역사였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1930년대부터 2010년대 까지 약 80여년 동안 사회가 ‘자폐’라는 의학적 개념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일들을 다뤘다. 1940년대만 해도 자폐는 ‘냉담한 부모’ 탓으로 여겨진 것에서 보여지듯이 자폐의 역사는 곧 무지와 차별의 역사였다.

약 500년 전, 러시아에 바질이라는 구두공이 살았다. 그는 한겨울에도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끊임없이 지껄였다고 한다. 바질은 음식을 먹는 것을 포함해 일상을 영위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성스럽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에는 바질과 같은 “신성한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들은 ‘사회적 선입견에 구속되지 않았으며’, 고립된 상태로 사는 데 만족했다. 몇몇은 의식에 가까운 틀에 박힌 행동을 반복했다.(…)신성한 바보들 중 일부는 말을 못했지만 일부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으며, 수수께끼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1974년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미시간대학의 학자 두 명은 “신성한 바보들”과 관련된 이야기 35편을 연구한 후에 그들이 어리석거나 성스러운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들이 500년 후에 태어났다면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연구자 중 한 명인 듀이는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아들을 두고 있었기에, 고대 방랑자들의 행동을 바보·백치·광인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자폐증이 하나의 발달장애로 규정돼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43년이다. 당시 레오 카너라는 소아 정신과 의사는 아이 11명을 관찰해 두 가지 특징을 파악한다. “어린이들은 극단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극단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동일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는 것이다. 카너가 생각했던 자폐증은 지금의 자폐증보다 훨씬 좁은 범주지만, 문제아라거나 정신이상자로 여겨지던 자폐가 의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193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80여년 동안 자폐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한 사회가 자폐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총망라해 담은 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존 돈반, 캐런 주커가 함께 썼다. 돈반은 자폐증이 심한 오빠를 둔 아내로 인해 자폐증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게 됐다. 주커는 큰아들이 자폐증 진단을 받은 후 자폐증의 실상을 알리는 보도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저자들은 자폐 아동 부모와 의사들의 체험담, 과학 문헌과 다큐멘터리, 신문 기사, 문서보관소 속 기록을 비롯해 자폐를 겪고 있거나 자폐를 연구한 사람들, 자폐 자녀의 부모 등 200여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한 편의 방대한 르포르타주를 써냈다. 우리가 자폐에 대해 알아가기까지 벌인 일련의 소동이 매우 꼼꼼하고 생생하게 담겨있다. 자폐의 원인을 무조건 냉담한 엄마 탓으로 돌리거나, 자폐 아동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기도 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들도 소개했다.

자폐의 역사는 무지와 차별의 역사다. 책 1부에서 다뤄진 1930~1960년대는 우생학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판치던 시대였다. 1933년에 26세이던 메리는 결혼 3년여 만에 아들 도널드를 낳는다. 도널드는 커가면서 자폐의 특성을 보인다. “주변과 연결되는 순간이 점점 드물어”지고, “미소는 뜸해지고 조금씩 뭔지 모를 불편함”을 보였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정해놓은 수많은 규칙을 하나라도 어기면 격렬하게 화를 냈다”고 한다. 병원을 찾은 메리에게 의사는 “엄마가 아이를 과도하게 자극했네요”라고 말하며 도널드가 부모와 떨어져있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 도널드는 수년간 결핵예방요양원에서 생활해야 했다.

당시에는 의료진이 앞장서서 장애 아동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권장했다. 1946년 출간된 <상식적 육아서>에서 벤저민 스폭 박사는 “ ‘몽골증(다운증후군을 왜곡해 부른 말)’을 가진 아이는 최대한 빨리 수용시설에 보내라”라며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는 제대로 발달하지도 않을 아기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대신 사랑과 애정이 필요한 다른 자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1942년 ‘미국정신의학저널’에는 정신장애 어린이의 안락사를 옹호하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정신적 능력이 다소 모자란 사람을 사회악으로 간주하고, 그런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방법조차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자폐증’이라는 개념이 생긴 후에도 자폐 아동과 가족을 차별적으로 보는 시각은 오히려 더 심해진다. 1940년대부터 ‘냉장고 엄마’라는 말이 생겨나 1960년대 후반에는 하나의 사회적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 1948년 타임지는 ‘의학-얼어붙은 아이들’이라는 기사에서 ‘유아 조현병 환자들’의 부모는 “ ‘자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항상 ‘냉담’하고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묘사한다. 또 냉담한 부모들의 손에 아이들을 맡겨놓는 것은 “성에제거장치가 없는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브루노 베텔하임을 비롯해 자폐 전문가로 알려져있던 몇몇 사람들은 자폐를 프로이트적으로 분석하면서 “자녀의 자폐증은 엄마의 잘못이다”라고 주장한다.

수십년간 자폐 아동은 제대로 된 행동치료 대신 실험적인 처치들에 시달려야 했다.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에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이던 로레타 벤더 박사 등은 자폐 아동에게 환각제인 LSD를 투여했다. 그는 약 10년간 아동 89명을 대상으로 LSD를 투여하며 자폐 증세 호전을 관찰했다. 이 시기 비슷한 연구들이 UCLA를 비롯해 전국에서 시행됐다. 1965년에는 이바 로바스라는 UCLA 심리학자가 건전지로 작동하는 소몰이용 작대기로 정도가 심한 자폐 아동들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처벌과 강화를 통해 자폐 아동들이 규범을 익히고, 사회화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로바스는 자폐 아동을 교육·훈련하는 응용행동분석(ABA) 초기 이론을 정립했으나, 그가 행한 전기충격치료는 “마취 주사를 맞지 않고 드릴로 치과 치료를 받는 것” 같은 고통을 아동들에게 줬다.

자폐증이 엄마 때문이라고? 무지와 차별, 투쟁 담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자폐인의 가족을 오히려 소외시키고 비난하던 자폐의 역사를 반전시킨 것은 부모들이다. 자폐의 역사 후반부는 부모들의 투쟁의 역사다. 아들 조의 자폐 증세에 대해 공부하던 엄마 루스 설리번은 분노를 느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자식을 거부하고, 차갑게 대하고,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바람에 조가 자폐아가 되었다고?” 루스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는 대신 부모들이 뭉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자폐 아동 엄마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고 자녀들이 시설에 가지 않고 공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캠페인을 벌인다. 같은 해인 1964년, 심리학자이자 자폐 부모인 버나드 림랜드는 <유아자폐증>이라는 책을 출간해 ‘냉장고 엄마’ 이론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이들이 주축이 돼 미국 최초로 자폐 어린이 권리옹호 단체인 전미 자폐어린이협회가 설립된다. 이후 십수년간 부모들이 직접 수행한 연구와 투쟁이 쌓이며 자폐 아동들이 시설에 가지 않게 되고, 공교육의 틀 안에서 행동치료를 지원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게 된다.

“의사, 사회복지사, 교육자, 변호사, 연구자, 작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자폐는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불치병’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하나의 증상으로 설명되고 있다. 현재는 아스퍼거 장애를 포함해 증상과 정도가 다양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개념으로까지 발전했다. 자폐라는 소재를 앞세웠지만, 책은 자폐와 같은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그에 맞서 세상을 바꿔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애는 교정대상이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형태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질병 서사는 더 많이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어딘지 다른 사람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세상에 오롯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껏 응원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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