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비자라며 모멸감 준 것도, 도움 준 것도 한국…베풀며 살 것”

허진무 기자

이란 출신 김민혁군 부자, 5년 만에 모두 ‘난민’ 인정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군이 5년간의 행정소송 끝에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아버지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난민인정증명서를 들고 포옹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군이 5년간의 행정소송 끝에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아버지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난민인정증명서를 들고 포옹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친구들의 ‘청원’으로 시작
민혁군은 인정받았지만
아빠에겐 ‘체류자’ 지위
일자리 면접 번번이 퇴짜

“무슨 짓을 해야 믿어줄까
했는데 이제 응어리 풀려”

“귀하는 난민법 제18조 제1항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되었음을 증명합니다.”

이란 출신 난민 A씨(65)는 지난 5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인정증명서를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다. 앞서 난민으로 인정된 아들 김민혁군(18·가명)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한마디를 듣는 데 5년이 걸렸다.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김군 부자를 만났다. A씨는 “몸에 붙은 불을 소화기로 끈 느낌이었다. 무슨 짓을 해야 나를 믿어줄까 생각했다. 가슴속 응어리가 풀린 것처럼 정말 시원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A씨와 아들 김군은 2010년 한국에 건너와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들은 2016년 5월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에 돌아가면 위해를 당할 수 있다며 난민 신청을 했다. 김군은 2018년 10월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A씨는 심사에서 두 차례 떨어졌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7일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군은 항소 기한인 2주 동안 매일 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법무부가 항소했는지 확인했다. “난민 인정이 현실인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친구들한테 ‘이번에도 아버지를 안 받아주면 내가 이란에 입국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라이브캠(생중계 영상)을 찍어야겠다’고 했는데….”

이들의 난민 인정에는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다. 2018년 7월 김군의 중학교 친구들이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민혁이가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달라’는 글(경향신문 2018년 7월13일자 보도)을 올리고 시위에 나서며 이들의 사연이 알려졌다. 김군의 옆반 담임 교사였던 오현록씨(55)도 끝까지 도왔다. 김군은 “친구들도 고등학교 3학년인데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며 “아버지가 난민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 ‘이제 수능 공부해야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A씨는 “누군가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이 없었는데 오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2019년 8월 A씨가 김군을 양육해야 하는 사정을 고려해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부여했다.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받으면 경제활동이 가능한 자격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러 일자리에 면접을 봤지만 A씨의 G-1(기타) 비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김군이 받는 기초생활보장 급여와 라이온스클럽 장학금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주민들 사이에선 ‘G 비자 노 퓨처(G 비자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죠. 공사현장에 가서 G-1 비자를 보여줬더니 ‘아, 깡통비자?’라며 쫓아냈어요. 다들 어떤 비자인지만 따져서 ‘인도적 체류자’의 일자리가 거의 없었어요.”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모멸감과 좌절감을 견뎌야 했다. 지난해 A씨가 비자를 연장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서류를 내자 창구 직원은 ‘손 치우세요’라고 쏘아붙였다. 직원이 A씨에게 추가 서류를 요구하며 ‘다시 방문하라’고 정해준 날짜는 공휴일이라 사무소가 문을 닫았다. 김군의 삶은 한국인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 김군은 지난주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대학 수시모집에 지원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준비 중이다. 국어와 영어는 잘하지만 수학 성적이 부족해 걱정이다. 가끔은 친구들과 볼링을 치며 입시 스트레스를 푼다. 김군은 패션모델이나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이미 고교패션콘텐스트, 고교패션컬렉션, 강남페스티벌패션쇼에서 무대를 걸었다. 지난해에는 난민 심사를 다룬 단편영화 <슈퍼스타>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A씨도 조만간 일자리를 구해 아들과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A씨는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 제가 얼굴을 모르는 분까지도, 한 분 한 분께 모두 감사하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만큼 앞으로 베풀면서 살려고 해요. 한국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니까…. 난민 심사에서 떨어진 분들께도 진실한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꼭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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