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피해자 보호 못하는 강간죄 개정 위해 '쇼'라도 하겠다"

장은교 소통·젠더데스크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새로운 ‘쇼’를 궁리 중이라고 했다. 이번엔 강간죄 개정을 위해서다. 오는 12일 ‘비동의 강간죄’ 발의 1년을 맞아 여론을 환기할만한 아이디어를 고심하고 있다. 류 의원은 지난해 8월 ‘1호 법안’으로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형법 제32장의 제목을 ‘강간과 추행의 죄’에서 ‘성적 침해의 죄’로 바꾸고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으로’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등으로 세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법은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1년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류 의원은 “강간죄 개정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를 더 키우는 일”이라며 “ ‘쇼’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어떤 퍼포먼스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류 의원을 만나 강간죄 개정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 9월 정기국회에 때 강간죄 개정이 논의될 수 있도록 동료 의원들과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최유진PD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 9월 정기국회에 때 강간죄 개정이 논의될 수 있도록 동료 의원들과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최유진PD

- 지난해 강간죄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는 많은 주목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우선순위에서 좀 멀어진 건 맞는 것 같아요. 잊을만하면 고위 공직자의 성 비리도 발생했는데 정치권에서는 형사법적 해결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대표 발의자로서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이제 발의한 지 1년이 됐으니 다시 열심히 해야죠.”

- 최근에 국회의원 45명에게 친전(직접 쓴 편지)을 전달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지난해 총선 전에 후보들에게 여성인권단체연합(‘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강간죄 구성 요건을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에 찬성하는지 질문을 했어요. 후보 1430명 중 204명이 찬성한다고 답했고, 그중 45명이 당선됐어요. 그래서 그때 발의해주셨던 분들을 포함해서 다시 좀 여론을 환기해 보려고요.”

- 반응은 어땠나요.

“잘 왔다고 하면서 만난 자리에서 바로 서명을 해준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런 게 있었나 가물가물하시는 분도 있었고요. 평소에도 만나서 말씀을 드리면 바꿔야지 하고 공감을 많이 해 주시는데 확실히 지금은 우선순위에선 좀 밀려나 있는 것 같아요.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여론이거든요. 결국은 여론을 모아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법이 실제로 통과가 되려면 동료 의원 300분의 의견이 중요하니까 한분씩 잘 말씀드리고 설득해야죠.”

- 지난해 처음 발의할 때 의원회관 곳곳에 대자보를 붙였죠. 수신인을 ‘보좌관 여러분께’라고 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저조차도 그걸 다 검토하지 못해요. 결국은 보좌관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필터링을 하시거든요. 이 법안이 보좌진분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의원들에게도 닿을 수가 없겠구나 생각을 했죠. 그때 친전은 300곳에 다 돌렸는데, 우선 저 포함 13명의 서명을 받아서 발의했어요. (의원 발의는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할 수 있다.) 그 직전에 ‘원피스 사건(류 의원이 본회의장에 원피스를 입고 출석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거든요. 제가 집중도가 높은 상황에서 발의해서 법안 발의도 좀 더 주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8월 강간죄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 국회 의원회관에 발의 취지를 알리는 대자보를 붙였다. 류호정 의원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8월 강간죄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 국회 의원회관에 발의 취지를 알리는 대자보를 붙였다. 류호정 의원실

■“계약서 쓰란 말이냐고요? 안 써도 됩니다. 저도 그러기 싫습니다”

- 뜨거운 찬사와 함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강간죄 개정에 대해선 오해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상대방의 동의 없이’라는 문구때문에 ‘그럼 계약서라도 쓰란 말이냐’라고 하거든요. 계약서 안 써도 됩니다. 저도 그러기 싫습니다.(웃음) ‘동의 없이’ ‘의사에 반하여’라는 부분은 이미 우리 법률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거든요. 성범죄 처벌을 통해서 보호해야 하는 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잖아요. 강간죄가 처음(1953년) 만들어지고 이후에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면서 1995년에 형법 제32장의 제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어요. 다시 26년이 지나는 동안 성범죄에 대한 인식도 변했고 다양한 형태의 성범죄가 출연했어요. 그에 맞게 법을 바꾸자는 거죠. 지금처럼 폭행과 협박을 기준으로만 강간죄를 판단하면 더 이상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강간죄를 개정하면 무고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사실 무고죄는 성폭력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만일 무고가 문제라면 무고죄를 개정해야지 그런 이유로 강간죄 개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실제 개정을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논란이 되든 어쨌든 오해를 풀고 뭘 좀 논의를 하려면 일단 법안이 상정돼야 하는데, 어떤 법안을 상정해서 논의할지는 교섭단체 소속 양당 간사가 정하잖아요. 그러니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의 우선 관심 순위에 들지 않으면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게 현실이란 말이에요. 정의당 의원 중엔 법사위원도 없어요. 그래서 논의 테이블로 밀어넣는 것조차 쉽지 않죠.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쇼’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어떤 퍼포먼스라도 해서 국민적 여론을 모으고 모인 여론을 다시 국회로 보내서 논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류 의원은 타투합법화, 채용비리 근절 등의 입법운동 과정에서 등이 파인 드레스와 영화 ‘킬빌’ 복장으로 기자회견에 나와 주목을 받았다.) 입법 과제들은 하나하나가 다 절박하고 급한 일들이잖아요. 피해 당사자분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리려면 처절하게 자신의 한 몸을 불태워야 하거든요. 농성하고 단식하고…그래도 사람들이 눈살만 찌푸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저는 욕을 먹더라도 훨씬 더 많은 분들에게 현안을 알릴 수 있거든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알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 있나요.

“산업재해의 경우 피해사례들이 많이 소개됐잖아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는 마냥 그렇게 알릴 수는 없어요. 굉장히 예민한 부분도 있고 트라우마의 문제도 있고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우리가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때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강간죄 개정은 수십 년 동안 여러분들이 노력해온 문제고 20대 국회에서도 10개나 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됐잖아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정말 어렵게 통과됐고요. 다들 안 될 거다 했지만 결국 된 것처럼 강간죄 개정도 잘 될거라고 생각해요.

- 강간죄 개정은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문제라는 편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인권단체에서 입법발의를 부탁했다가 어떤 남성 의원들로부터‘여성 의원들한테 가봐’라는 말도 들었다고 해요.

“상대적으로 (남성 의원들이) 좀 한걸음 떨어져서 생각하려는 게 있긴 하죠.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가 꼭 여성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남성들이 더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국회의원들은 결국 시민을 대변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건데, 좀 더 책임있는 자세로 이 법안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고 함께 해달라고 노력할 생각이에요.”

■쏟아지는 혐오에 잠겨 익사하지 않도록

- 최근 안산 선수의 숏컷을 두고 불거진 소란을 두고 “페미같은 모습은 없다”고 했죠. 이런 소란을 ‘젠더갈등’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의 백래시가 과대대표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요.

“안산 선수 SNS나 기사를 보면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려있어요. 그걸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런 악플들로 또 많은 사람들을 잃기도 했잖아요. 지금 메타버스 등 가상현실이 코앞에 와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없는데, 익명의 방패에 숨어서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눈앞에 대고 할 수 없는 얘기는 온라인에서도 하면 안 되는 거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좀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을 타깃으로 사이버불링(온라인상에서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것을 지켜보는 또 다른 여성들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피스 가지고 뭐라고 하니까‘ 내 옷이 이상한가?’ 생각하고 머리 짧은 걸로 뭐라고 하니까 ‘머리가 짧으면 안 되나?’ 생각하게 되고. 말도 안 되는 논란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잘못된 건데 평범한 여성들이 자기검열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당신은 이상하지 않다, 틀리지 않았다,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늘 ‘최연소’ ‘여성’ 등의 수식어로 소개되면서 과도한 관심과 비난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젊은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쏟아지는 악의에 익숙해져서 살아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가 그런 악의에 잠겨서 익사할 순 없잖아요. 근거 없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로 인해 주목도 받고 의정활동 하나라도 알릴 수 있으니까요. 저는 모든 걸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굳은살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행동해야 바뀌는 건데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행진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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