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우리의 애도에 응답하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춤추는 '성노동자'들

이두리 기자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에서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의 왹비(활동명)씨가 발언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에서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의 왹비(활동명)씨가 발언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왜 아직 목숨의 위협을 받아도 경찰에 신고할 엄두조차 못 내는 존재가 있습니까?”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 ‘창녀’들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성노동자의 죽음과 존재를 가시화하자는 의미의 ‘창녀 행진(slut walk)’이다. 이날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이하 차차)’가 개최한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에 참가한 40여명은 집회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가시나’ ‘숙녀가 못 돼’ 등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용산구 한강진역부터 녹사평역까지 왕복 약 4km를 행진했다. “우리가 여기 살아있음을 알리는 몸짓을 합시다. 죽은이들의 몫까지 춤춥시다!” 집회 트럭에 오른 성노동자 당사자인 왹비(활동명)씨가 외쳤다.

“‘창녀’가 ‘더러운/음란한 여성’을 가리키는 멸칭으로 쓰이잖아요. 그런데 왜 ‘더러운 여성’으로 살면 안 되냐는 거예요. 창녀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창녀를 향한 ‘시선’이 문제라는 걸 나타내고 싶었어요.” ‘차차’의 유자(활동명) 활동가는 이날 ‘창녀’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7일은 ‘국제 성노동자 폭력 종식의 날’이었다. 수십 명의 성노동자 여성을 살해한 미국의 연쇄살인범 게리 리지웨이의 유죄 판결을 계기로 2003년 도입된 기념일이지만, 그로부터 2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성노동자 여성들은 여전히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

지난 8월 서울 송파구에서 강윤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두 명은 모두 노래방 도우미였다. 지난 6월에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19세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없어져도 된다”고 진술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애틀랜타의 한 마사지숍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성노동자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경찰에서 마사지숍을 “제거하고 싶은 유혹”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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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업주와 성구매자뿐 아니라 성노동자까지 처벌하도록 돼있다. ‘위력에 의해’, 즉 비자발적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은 ‘성매매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보호되지만 생계를 위해 성노동을 ‘선택’한 자는 단속 대상이다.

이날 집회에서 왹비씨는 “성노동자의 죽음은 원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조용히 사라진다”고 말했다. “성노동을 선택한 사람을 짓밟을 권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 한 개인이 성노동을 선택하는 과정은 자발적이었고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노동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나? 창녀에게만 자발과 비자발을 나눠서 말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왹비씨는 발언대에 올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지난 16일 ‘차차’가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의 일환으로 개최한 웹 세미나 ‘삶─성노동자─죽음’에서 발언한 성노동 당사자 데파코트(활동명)씨는 “성노동을 노동이라고 명명할 때 성노동자의 권리, 성산업 현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존재는 불법이기에 강간을 당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다. 내가 경찰 단속에 걸려 구치소에 구금돼도 업주는 나를 대체할 다른 성노동자를 구할 것”이라며 “성노동자도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어야 하고,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의 ‘창녀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사회는 우리의 애도에 응답하라”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의 ‘창녀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사회는 우리의 애도에 응답하라”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이날 집회에는 비거니즘,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인권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연대발언을 한 비거니즘·페미니즘 팟캐스트 ‘흉폭한 채식주의자’의 나무(활동명)씨는 “수치로 매겨져 애도되지 않는 동물의 죽음과 성노동자의 죽음이 같은 맥락에 있다”고 했다. “고기를 먹을 때 그 고기가 원래 살아있는, 구체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듯이 성구매자도 성노동자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죠. 그런 권력 구조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유자 활동가는 “현행 성매매특별법은 업주와 성구매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성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돈과 일자리가 가장 간절한 성노동자가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라며 “성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을 구원의 대상 혹은 처벌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 산업에서 무조건 나오라고 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성노동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버텨내고 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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