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어지는 운구차 행렬…슬퍼할 시간도 짧은 ‘거리 두기’ 사별

유선희 기자
23일 오후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1층에서 유족이 고인의 관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23일 오후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1층에서 유족이 고인의 관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목놓아 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마저도 ‘거리 두기’로 인해 고인과 닿을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가족을 떠나보내는 유족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며 흐느꼈다.

코로나19 사망자를 실은 운구 구급차는 매일 쉼 없이 도로를 달린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의 급증과 함께 사망자도 세자릿수로 증가하면서 운구 구급차량 기사들도 그만큼 바빠졌다. 지난 23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는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차량들이 속속 주차장에 모였다. 운구 차량 기사 권진오씨는 “요즘은 거의 24시간 일한다고 보면 된다. 오늘은 새벽 2시에 사망한 분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며 “최근에는 재택치료 중에 사망한 분들 소식을 많이 접하는데, 유족들이 입관을 못 보니까 다른 주검보다 더 경건하게 진행하려고 한다”고 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서울시립승화원 주차장에는 코로나19 사망자 운구 구급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유선희 기자

오후 5시가 되자 서울시립승화원 주차장에는 코로나19 사망자 운구 구급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유선희 기자

초점을 잃은 눈으로 운구 구급차량을 가만히 보던 장진혁씨(65)는 “허망하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장씨의 어머니(92)는 지난 22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불과 닷새 전인 지난 17일 호흡이 가빠져 집이 있는 경기도 안양에서 급하게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으로 옮겼다. 어머니는 입원 내내 산소마스크를 쓰고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입원치료 지역과 멀리 떨어지면 안된다는 방역지침에 따라 서울시립승화원에 왔다고 했다.

장씨는 “집 근처인 안양에도 못 가고 빈소도 못 차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장례식도 생략한다고 봐야한다. 장례문화라는게 지인과 친구들이 서로 조문하고 위로하고 위로받는건데 그게 일절 없으니 아쉽다”고 했다. 고인의 남편이자 장씨의 아버지도 코로나19에 확진돼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이날 함께 오지도 못했다.

화장 절차는 오후 5시16분부터 승화원 1층에서 진행됐다. 방호복을 착용한 화장터 관계자 등 6명은 관을 가지고 왔다. 고인의 명패를 유족에게 보인 뒤 “고별의 시간을 갖겠다”는 관계자 말에 맞춰 유족들은 고인의 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화장터 관계자들은 관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했다.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 채 안됐다. 고인의 관과 유족 간 거리는 약 3m, 대여섯 발자국만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더 이상 다가갈 수는 없었다.

유족들은 그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한 어르신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앞쪽으로 가더니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 버튼을 눌렀다. 유족들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찰나의 모든 장면을 휴대전화에 담았다. 이곳에서 코로나19 화장장은 오후 5시 이후 치러지는데, 이날 저녁에만 17명의 고인이 화장장을 치렀다.

유족들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고자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유선희 기자

유족들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고자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유선희 기자

유족 이현희씨(44)는 환자병실 내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통해서 아버지(72)의 임종을 지켰다고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지 6일 만에 숨졌다. 이씨는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은 물론 고인이 된 이후에도 얼굴을 제대로 뵙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이게 현실인가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이씨는 시신을 안치하지 않았음에도 별도로 장례식장을 마련했다고 했다. 이씨의 부인과 어머니는 조문객을 맞느라 이날 함께 오지 못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병실에서 홀로 돌아가셨는데 가실 때도 혼자 가신 것 같아 너무 쓸쓸해보인다. 마지막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 영상을 찍었다”면서 “밥이라도 같이 더 먹을 걸,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고인의 유족 김효중씨는(60) “인천에 사시는 90대 어머니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이 없어 3일 정도 헤매다 지난 13일에야 서울 성북구의 한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오늘 새벽 돌아가셨다”며 “워낙 연로한 데다 기저질환도 있어 견디지 못하신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코로나19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장례문화까지 바꾸고 있었다. 방역당국은 ‘선 화장 후 장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장례 후 화장’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만들겠다는 방침도 밝혔지만 아직까지 검토 중이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장례업계에서 감염 위험에 따른 안전대책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반발이 있고 영업손실에 대한 우려도 있어 아직 검토를 진행 중이다”며 “일반적인 장례 절차대로 진행할 경우 문제가 없는지를 시뮬레이션 할 계획으로, 이후 세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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